레클리스: 다시 없을 영웅의 기록
빙혈 2025/06/1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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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클리스 : 다시없을 영웅의 기록
- 김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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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 - 2025-01-24
: 592
인간 역사를 통틀어 동물이 문명에 끼친 혜택은 지대합니다. 한반도만 해도, 소가 없었더라면 그 오랜 세월 동안 농사를 짓는 게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말을 그렇게 많이 키우지는 않아서 우리 조상들에게 일상적으로 친숙한 동물은 아니었고 기껏해야 역참 등에서 가끔 접하는 정도였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읽은 계몽사 어린이문고 박경수 선생판 <임꺽정>을 보면 어린 임꺽정이 말고기를 소고기로 속여 관에 납품했다는 말이 나오긴 하는데(다른 작가들의 <임꺽정>엔 이 에피소드가 없습니다), 이는 폐(廢)역마의 처리에 관한 이슈였기 때문이지 말이 흔해서 소고기보다 싸게 유통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육(牛肉)은 우육대로 귀했으나, 말 역시 흔한 동물이 아니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러나 유럽, 미국은 본래부터 귀족, 신사층의 승마 문화가 깊은 뿌리를 내린 상황이었습니다. 이게 그저 사치스러운 생활 양식의 과시 같은 게 아니라, 말을 타고 전투에 임하며 장원의 방위에 요긴히 활용하던 오랜 시스템의 일부였습니다. 농민, 농노들도 농사에 말을 많이 사용했고, 우리가 소에 대해 느끼는 친숙함 이상으로 저들에게는 말이 생업에서 군사 분야에서 동료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이 논픽션(소설이지만, 저는 논픽션으로 보고 싶습니다)의 주인공 레클리스가 한국전 등 참전의 공로로 하사 계급(staff sergeant)을 받은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말은 어려서부터 군사, 경주, 농사나 운송 등 어떤 용도로 쓰느냐에 따라 신체 구조가 달라지는데, 이 책의 주인공 레클리스는 원래 경주마였다가 군마(軍馬)로 전용된 좀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이 책 뒤표지를 보면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영웅의 질주"라는 구절이 있는데, 영어로 reckless가 "무모한"이란 뚯입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또래집단에서도 앞뒤 안가리고 용감하게 먼저 총대를 메는 애가 인기가 원래 좋습니다. 말한테도 갑자기 벼랑 끝이나 위험 지대를 질주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아니 얘도 생명체인데 또 눈에 빤히 죽을 가능성이 보이는데 그걸 무턱대고 따르겠습니까? 열이면 아홉이 반항합니다. 그러나 레클리스는 신체 능력이 뛰어나고(따라서 위험한 지시라도 자기가 따져 보고 이 정도면 해내겠다 싶을 때가 많음), 인간과 긴 시간 동안 유대를 맺어 와서 웬만하면 사람을 믿고 사람이 위험을 무릅쓴다 싶으면 자신도 기꺼이 동참하는 것입니다.
레클리스는 취향도 수준(?)이 높습니다. p102를 보면 스크램블드 에그 한 접시(접시째 주었다는 뜻 같습니다)를 일병 빌리 존스가 주자 그걸 바로 먹어치우고는, 일병 존스가 들고 있던 커피 한 잔에까지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엽습니까? 얘는 완전히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긴 동료를 배신하고 부당한 이익에 혹해 적진과 내통하고 정보를 팔아넘기는 부역자 짓을 하는 인간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어떤 식이로든 보답을 하려 들며 기꺼이 자기 희생에 나서는 이런 동물이 사람에 비해 못할 바가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원래 레클리스가 경주마 출신이라고 했는데, 그게 괜한 경력이 아니라서 얘는 결정적일 때 그 경주마로서의 본능, 체득한 기술을 발휘합니다. 그냥 무모한 용기만으로 유명해진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지금 얘, 얘 하면서 자꾸 무슨 애 부르듯이 레클리스를 호칭하는데 사실 이것도 경솔한 태도입니다. 레클리스는 세상을 떠난지 오래되었고, 우리들의 부친, 조부, 증조부들과 함께 적에 맞서 싸우며 현재의 우리들이 누리는 부와 평화를 지켜 중 존재입니다. 그 호칭도 함부로할 수 없는 전쟁영웅이라는 뜻입니다. p134를 보면 120고지에 배치되었을 때 경사가 거의 45도였는데도 마치 전성기 경주마가 코너링하듯이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다는 것입니다. 딱딱한 캔디를 좋아하셨다는 하사님의 취향도 다시 환기됩니다.
군마 레클리스의 일대기를 읽으며 사람 사는 세상을 지켜내는 진정한 미덕과 근원이 무엇인지, 우리가 누리는 얀녕과 행복이 과거 누구의 덕으로 이어내려오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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