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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나, 블루칼라 여자
  • 박정연
  • 16,200원 (10%900)
  • 2024-03-05
  • : 1,949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직업에 귀천을 따졌기 때문에 이 말이 나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문제가 없다면 말도 없었을 테니까.


문제가 없었기에, 문제 삼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할 수 있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제로 귀천이 존재한다고 해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러니 말로만 또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종 직업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이 말이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직업에는 귀천이 없어야 한다.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인 일이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누구냐에 따라 귀천을 따진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와 직업에 성별이 없다를 연결시킨다면, 직업에도 성별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예전 책들을 보면 특정 직업을 상징하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늘 특정 성별이 선택되곤 했으니까. 그만큼 직업에도 성별을 따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성별을 따지는 것이 인권을 위배하는 행위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으니 당연히 직업에도 성별을 따지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성별이 할 수 없는 직업은 없다고 여기는 사회라고 봐야 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여전히 특정 성별에게는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 또한 알게 모르게 그 직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그것이 점점 약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하다.


이제는 그런 압박을 없애야 한다. 어떤 직업이든 못할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냐 없냐로 따져야지 성별로 따져서는 안 된다. 또한 직업에 귀천을 따져서도 안 된다. 귀천을 따지지 않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특정 성별,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하기 힘들었다고 여기던 일들을 한 여성들이 있다. 열 명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들이 택한 직업을 보면, 화물 노동자, 플랜트 용접 노동자, 먹매김 노동자, 형틀 목수, 건설현장 자재정리·세대 청소 노동자, 레미콘 운전 노동자, 철도차량정비원,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주택 수리 기사, 빌더 목수가 있다.


여전히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이 적지만 이제 이 직업들은 여성들이 할 수 없는 직업은 아니다. 당연히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이들이 그 직업에 종사하기 시작했을 때 겪은 일들이 마음에 걸렸다. 성차별도 차별이지만, 우선 화장실 문제. 바깥에서 일을 하는데 화장실이 없을 때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생각해 보라. 이것 자체가 가장 큰 성차별 아닌가. 화장실 문제가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성차별 문제 역시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노조를 중심으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 등이 이루어지면서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는데, 건설 현장에서 노조가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노조를 무슨 '건폭'이라고 폭력배 취급한 사람이 있었으니... 노조에 속한 건설 노동자들의 생활이 많이 힘들어졌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지도자인 양 하는 시대는 갔으니, 이제 노조를 범죄시하는 그런 시각들은 사라질 거라 믿는다.


처음에 시작한 아들이 어려움을 겪고,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당당하라'다. 주눅들 필요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참여하라고. 못한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부딪쳐 보라고. 그리고 남들이 무시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또한 직업에 성별도 없다. 그냥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뿐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빌더 목수의 말로 맺는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엄청 멋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막노동'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진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요.' (빌더 목수 이아진 편에서.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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