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이야기의 효용 자체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세계를 상상 속에서 경험하는 것. 내가 직접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삶의 이야기일 뿐이다.' (423쪽. 작가의 말에서)
다른 삶의 이야기, 그것이 소설이다. 따라서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않은 일들을 간접적으로 겪게 된다. 다양한 경험. 다양한 세계와의 만남. 그리고 거기서 다시 현실의 나로 돌아오는 경험. 그것이 소설이 주는 경험이다. 재미다.
소설이 재미 없으면 읽으려 하지 않는다. 문학 연구자가 아니면 누가 재미 없는 소설을 읽으려 하겠는가. 하여 읽히는 소설은 재미 있는 소설이다. 이 재미를 통해서 다른 세계,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이때 재미도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자신이 알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만나는 재미, 그리고 자신이 알던 세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만나는 재미가 소설이 주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은 환상 문학 단편선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있다. 제목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인데, 이런 제목을 가진 소설은 없다. 요즘 나오는 소설집이나 시집들을 보면 제목이 된 소설이나 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읽으면서 도대체 이 제목은 어디에서 왔는지 찾는 재미도 있다.
이 소설집은 'Nessun sapra'라는 소설에서 제목을 따왔다. 영어 제목도 아니고, 어떤 말인지 알 수 없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소설인데, 읽다가 끝에 가서야 이 뜻을 알게 된다. 이 문장이 '이무도 모를 것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많은 소설이 실려 있는데, '완전한 행복'이라는 소설에서 용서의 의미를 생각하는 구절을 만났다.
'잘못이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하여 용서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용서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선이나 자비가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정의였다.' ('완전한 행복'에서. 416쪽)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과연 그것이 혁명일까?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라고 했다는 아나키스트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행복한 사회, 우리가 행복한 사회여야 한다.
한데 혁명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핍박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면서 자신은 혁명을 위해, 즉 대의를 위해 행동했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의를 위해서 희생당하는 사람은 있어야만 한다는 사고. 그러면서 자신은 당당하다고 외치는 사람. 혁명에서도 그러한데, 혁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짓눌렀음에도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과연 용서란 무엇일까?
이 소설은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의 말이 조금은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것이 바로 소설이 주는 경험, 재미 아니겠는가. 나 대신 누군가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주는 일. 그런 사람, 환경, 사회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 바로 소설가.
'어쩌다 보니까 나는 본의 아니게 복수 전문 작가가 된 것 같은데 많은 경우 화가 나서 글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작가의 말에서. 421쪽)
'전쟁이 빨리 끝나고 나쁜 놈들이 얼른 몽땅 죽어서 전부 늑대에게 뜯어 먹히기를 소망한다.'(작가의 말에서. 425쪽. 참고로 늑대에게 뜯어먹히는 인간이 등장하는 소설은 '완전한 행복'이다. )
하하, 복수라? 소설 속에서 복수를 하는 인물들이 제법 나온다. 이 소설집에 실린 첫번째 소설 '나무'가 그렇다. 장난이 죽음으로, 복수로 치닫는 과정을 쓴 소설. 그렇다. 작은 일이 죽음으로까지 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용서'를 생각한다. 용서를 빌 여지도 주지 않고 처벌을 한 경우가 이 소설이라면, 아예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용서를 빌 마음도 없는 소설이 '완전한 행복'이다.
용서할 수 있을 때 용서하지 않는 것도 비극을 초래하지만,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는 존재를 용서했을 때도 비극이 일어나니, '용서'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을 했던 인물, 그러나 용서받았다고, 적어도 법적으로는 사면을 받았으니, 그런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 있다. 바로 '산'이다. 이제 채 20년도 안 된 과거지만, 현재형이기도 한, 산을 깎고, 강을 막고 파헤쳐 자연을 훼손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정부.
그런 일이 어떤 일을 초래하는지, 그것은 전쟁과도 같은 역할을 함을 '산'이라는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 소설집 [아무도 모를 것이다]는 그간 발표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읽는 재미를 느끼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고 있다. 좋다. 단편선2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