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2025년6월16일/패턴은 신이다.
세상은 소음과 바쁨 속에서 묻혀 있다. 그 안에는 무늬처럼 반복되는 질서가 있다.
그건
눈에 띄지 않고, 말로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이는 그것을 속도에서, 어떤 이는 기름 튄 냄새 속에서, 어떤
이는 탄산의 첫 느낌 속에서, 어떤 이는 사람들의 고독한 눈빛 속에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들이 느낀 그 순간, 그것은 바로 신의 손끝, 패턴을 찾은
‘찰나’ 였다.
그 날도 그는 밀크셰이크 기계를 팔러 나섰다.
다섯
번의 거절, 텅 빈 주차장, 팔꿈치의 통증. 그런데 맥도날드라는 가게 안에서, 뭔가 이상한 걸 봤다. 사람들이 줄을 서고, 주문을 하고,
30초도 안 되어 음식이 나오는 흐름.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정확하고 리듬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건
요리가 아니라 시스템, 조리법이 아니라 리듬. 그때 깨달았다.
그가
팔고 싶은 건 햄버거가 아니였다. 이 속도라는 이름의 무늬였다.
<레이 크록(1902~1984) , 맥도널드 창업자>
손에
들린 양은 솥과 닭 튀김 조리법. 60대에 퇴직금도 없이, 거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거절이 오히려 하나의 무늬처럼 느껴졌다.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그 반복은 신이 말하는 방식 같았다.
결국
그는 집념은 믿음이 되어 패턴을 끝까지 밀고 나가 KFC라는 문양을 세상에 새겼다. 그에게
집념은 하나의 문양이었다.
<할렌드 데이빗
샌더슨(1890~1980), KFC 창업자>
시음의
순간, 진한 갈색 액체, 날카로운 첫 맛, 혀끝에서 터지는 탄산.
그건
약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자유, 낭만, 일탈의 느낌을 반복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브랜드가 아니라 마법이었다. 탄산 속에 숨겨진 감정의 패턴을 그는 ‘코카콜라’ 라 이름 붙였다. 그는 탄산음료에서 자유의 여신을 만났다.
<아사 캔들러(1851~1929), 코카콜라 창업자>
밀라노
거리의 작은 카페, 말없는 사람들, 책을 읽고 창밖을 보는
눈빛들.
그 고독 속에는 안정감과 존엄함이 있었다.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세상 사이에 둔 작은 방어막. 공간, 시간, 고독 그리고 커피 한잔, 그
감정의 반복을 스타벅스라는 이름으로 새겼다. 그에게 고독은 공간의 패턴이었다.
<하워드 슐츠(1953~ ), 스타벅스 창업자>
AI는 0과 1의 언어로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예측하며, 실수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 AI를 신탁처럼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의 패턴은 그것과 다르다.
인간의
패턴 분석은 직관에서 시작된다.
감각에서, 몸의 떨림에서, 무의식의 흐름에서.
AI는 모방할 수는 있지만 느끼지는 못한다. 직관은 인간의 신성이다.
그들은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무늬를 본 자들이었다. 패턴은
속도였고, 집념이었고, 감정이었고, 공간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그 패턴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커피 한 모금에, 거절 한 번에, 시선 하나에 스며든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신의 언어를 보고 있다.
그것은
명확성과 예측의 언어다. 그러나 잊지 말자.
직관
없는 패턴은 죽은 문양일 뿐이다.
신의
언어는 글과 소리가 아니다. 언어가 아닌 상징이다.
패턴은... 신이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