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있어 무언가를 '처음' 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처음은 설렘이 있고 신선하다. 새롭게 출간된 《한국형 가치투자》를 읽으면서 처음 투자에 나섰던 나 자신의 모습을 새삼 돌아볼 수 있었다. 미숙하긴 하지만 열정과 설렘, 신선함이 가득했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대부분의 가치투자자, 투자자가 그렇지만 주린이 시절, 나도 다른 투자자들과 비슷하게 미국 대가들의 고전을 읽으면서 '삼성전자'를 샀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대가들의 노하우를 한국 시장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좀 더 친절하고 구체적이며 한국 실정에 맞는 투자서를 읽고 싶었다. 그러다 추천받은 책이 바로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었고, 책을 바탕으로 투자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책 덕분에 '삼성전자'를 벗어나 다양한 종목들을 스스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은 무척 의미있는 책이다. 주식에 있어서 첫걸음을 내딛게 해준 고마운 길잡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의 후속편이 《한국형 가치투자》 라는 이름으로 최근 새롭게 출간됐다.
《한국형 가치투자》는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 출간된 이후 21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대학생 투자자였던 저자들은 어느새 3조 원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의 대표가 됐다. 그래서인지 신간에서는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노련함과 성숙함이 돋보였다. 스마트 개미들이 많아지는 요즘 투자의 수준과 눈높이도 점점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시장의 분위기도 과거와는 다르다. 투자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종목 선정의 기준도 까다로워졌다. 그래서 사실 저자들이 정리한 가치투자의 거시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전교 1등이 정리한 모범 요약집과 같은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이 책의 진가는 미시적인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는 난이도가 높아진 시장에서 가치투자에 있어 어떤 부분들을 체크해야 하는지 세부적으로 디테일하게 알려준다.
종목 선정에서는 가치주의 주가를 촉진시킬 수 있는 '촉매'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얼핏 보면 주가를 부양한다는 점에서 '모멘텀'과 비슷하게 보이는데 차이점도 많았다. 우선 촉매는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하고 실적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 포인트다. 모멘텀의 경우, 실체가 없고 심리와 기대의 요소로 형성되는 비이성적 과열이지만 촉매는 실질가치와 실적에 바탕을 둔다. 포트폴리오 구축에서는 축구의 포지션을 예로 들어 성장주와 가치주, 배당주와 현금의 비율을 설명한 부분이 도움이 됐다. 종목별 물타기와 불타기, 그리고 갈아타기 등등의 전략도 설명하는데 '보유한 기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토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백미를 꼽으라면 심리를 고찰한 부분을 꼽고 싶다. 가치투자자는 주식을 매수한 뒤 필연적으로 물릴 가능성이 높다. 그뿐 아니라 강세장에서는 밸류가 높은 주도주를 가지지 못했기에 포모(FOMO)를 느낄 수 있고, 약세장에서는 적극 매수해야 하지만 떨어지는 칼날을 잡기가 두려워진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투자를 한 사람들이라면 여러 상황들을 나름의 심법으로 유연하게 대처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멘탈이 가루가 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 가치와 성장성을 믿고 들어간 주식이 생각 이상으로 떨어지면 온갖 스트레스를 겪는다. HTS, MTS를 쳐다보지 않거나, 기업을 분석하며 기다리거나, 대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는데 이 책의 심리 파트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단기투자와 장기투자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단기투자를 중점적으로 했는데 시드가 커지면서 '잃지 않는 투자', '안전한 투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상으로 볼 때 단기투자는 장기투자보다 목표 수익에 도달하기까지 기간이 짧은 반면 수익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단타 매매의 핵심은 회전율이다. 원하는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번 매매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높은 회전율로 이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매매를 여러 번 한다는 것은 실패의 확률도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칼 같은 손익비 계산과 손절을 지키지 못한다면 벌어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날릴 수 있다. 단기매매는 실적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감과 모멘텀이 사라진다면 주가가 한순간에 폭락할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다.
반면 장기투자는 종목 선정을 잘 했다는 가정을 둔다면 단기간에 변동성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큰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 단타가 감성의 영역이라면 장기투자는 이성의 영역이다. 단타의 기반은 허상이지만 장기투자의 기반은 실체다. 장기투자는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차분하게 분석하여 들어가는 투자이기 때문에 확신만 선다면 비교적 큰 금액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주변의 가치투자 고수분들은 '큰돈은 장기투자가 벌어다 주는 것이다.'라고 조언해 주시는데, 이제서야 그 의미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두 투자법은 스타일이 다르지만 공통되는 요소들도 많다. 종목 선정을 잘 해야 하고 (가치주의 경우는 밸류 측정 및 분석, 단기투자의 경우는 수급이나 모멘텀 요소),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들어간 종목들이 원하는 시세를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원하는 자리에서 매수를 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런 공통점 때문인지, 단기투자를 하다가 물려서 멘탈이 흔들릴 때에는 가치투자의 명인들의 책을 보면서 마음을 다스렸던 날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단기투자와 장기투자의 공통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투자 스타일에 대한 '변곡점'을 겪고 있는 요즘, 공교롭게도 《한국형 가치투자》를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뜻깊게 다가왔다. 투자에 있어 처음과 변화를 함께했으니 일면식은 없지만 저자들과의 인연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기자기한 편집 덕분에 독서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챕터 안에 있는 대가들의 명언들도 투자에 있어 귀감이 된다. 한국 시장에서 투자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전작인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과 더불어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중수 이상의 분들도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투자 스타일을 떠나서 국내에서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응당 읽어야 할 필독서로 손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