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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페이스 갤러리에 다녀왔다


1층은 그림자를 제4의 요소로 포함시켜 흑목회화를 만든 네벨슨의 전시이고 2층은 나이젤 쿡의 바닷물을 재료로 만든 바다심상 추상회화다.


나이젤 쿡의 화풍 변천사를 알아야 이번 전시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쿡은 초기에 티치아노와 터너와 같은 유럽 고전회화의 거장의 흔적을 더듬었다.

화면 안에 조형을 명징하게 새겨넣은 풍경화와 윤곽이 선명한 모노크롬을 그리다가 중기에 예술가는 문화적 캐리커쳐라는 자각을 한 후 일러스트 그래픽요소가 두드러지는 소방관 캐릭터를 알터이고, 제2의 자아로 삼아 포스트-아포칼립스풍의 그림을 그렸다.


문득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제는 휘몰아치는 색채의 소용돌이가 물비늘처럼 번져나가는 회화를 그린다

굵기와 방향과 세기가 저마다 다른 스트로크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물살처럼 출렁이다가 구름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겹겹이 쌓인 색선은 바람결에 이는 갈대밭처럼 살랑살랑 떨리고 작업은 외형을 뚜렷이 잡기보다는 아스라이 스미며 구체와 추상, 사물과 기억, 자연과 인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른다. 구상, 반구상, 추상의 궤적을 천천히 걸어온 쿡은 비정형경험과 내면풍경을 전달하기 위해 터치 자체에 집중했다. 거센 돌풍과 잔잔한 윤슬을 동시에 구현하는 쿡의 붓끝은 형상의 재현, 인식의 감각, 시간의 흐름을 통째로 끌어안는다.


그림에선 영국 켄트 앞바다 군청색 해일와 같이 거친 스트로크도, 어느새 잠잠해진 은빛 아침바다 잔물결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붓질의 흐름도 보인다. 색감은 쨍한 대비도 물안개처럼 퍼지는 차가운 음영도 보이며 어렴풋한 숨비소리와 같은 선도 한들한들 잔물결을 따라 번지는 흔적도 보인다. 낙하하는 하얀 갈매기가 솔바람을 따라 찰랑이는 파문의 궤적을 닮은 선도 보인다. 관찰하는 쿡의 손길은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들고나는 시간을 닮았다.


구체적인 형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터지는 외침보다 조용한 숨결이 대신 자리한다. 빛과 물, 바람의 기운이 스며들어 몸과 마음, 자연과 시간의 자국을 낡은 경첩처럼 보여준다. 어쩐지 마치 오래전 동굴 벽에 남은 손자국처럼.


작업은 고요하되 쌔근쌔근 숨쉬며 고동한다.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의 어느 알 수 없는 가느다란 틈새를 타고 우리는 쿡이 초청하는 영국바다 어느 깊은 내해로 인도된다. 손에 닿지 않는 감각을 붙들어 전달하려는 그의 붓질 자취는 바람숨을 잡으려는 일처럼 덧없지만, 덧없기에 아득하고도 눈부시다.


전해지는 마음이 눈부셔 찬란하기까지한 쿡의 그림은 환풍기 소리만 가만가만 울리는 페이스 갤러리, 신성한 성당의 침묵의 아우라를 풍기는 전시장 한켠 늘 그 자리에서 잔물결치며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사라졌다 생기는 유동적인 세계에 대한 원초적 감각을 가만가만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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