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이 있는 풍경














『처단』을 읽었다. 잭 리처는 항상 나의 여름템, 정확히는 휴가템인데 근자에는 여름휴가를 가지 못하고 있고, 올해도 어려울 듯해서 나 홀로 휴가다 생각하고 즐겁게 읽었다.

나는 잭 리처를 좋아하고, 꾸준히 리처를 읽고 있지만, 이번 책에서는 같이 일하는 여성과의 침대씬에서 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니깐, 같이 일하는 여성과의 썸씽이 싫었다는 게 아니라, 아니라! 이렇게 뭐든 쉬운가, 이 사람에게는 뭐가 이렇게 쉬운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 특히 그게 인간관계에 대한 것일 때, 그게 좀 부럽기는 했다. 흔히, 인복이라고 하는, 그런 면에 대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호감형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아니면 질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나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리처가 가진 매력. 세계 최고, 최대 규모의 시장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리처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것이고. 페이지 터너, 그 과열된 세계에서 자극적이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고, 외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힘과 주인공의 매력만으로 독자를 끌어모으는 그 힘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독자를 끌어모으는 힘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바다 건너에 사는 내가 리처 책을 거의 다 읽었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바다를 건너와 번역된 책을 읽는 마음. 리처를 사랑하는 마음.

『바닷가의 루시』에서는 이런 에피가 나온다. (나는 『바닷가의 루시』를 반복해서 읽고 있어서, 모든 이야기는 루시를 거쳐 루시를 통해 루시에게로 간다.)

코비드를 피해 루시와 윌리엄은 바닷가의 외딴 마을로 이주하게 된다. 메인 주가 어딘지 몰라 미국 지도를 찾아보니, 미국의 북동부에 있는 주여서 뉴욕보다 북쪽이다. 당연하다. 소설에도 나온다. 짐 챙기던 루시에게 윌리엄이 여권도 챙기라고, 여차하면 캐나다로 갈 거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겨울 코트를 챙겨온 윌리엄을 보고 놀란 루시에게 윌리엄이 여기가 더 북쪽이고, 그래서 여긴 추워,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다.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뉴욕 사람들은 잘난척하는 '서울깍쟁이' 느낌인데, 뉴욕에 살던 루시와 윌리엄이 그 동네에서 살게 되니, 코비드 때문에 예민해진 사람들은 뉴요커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윌리엄을 따라 마트에 갔다가, '니네들 다 뉴욕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는 여자 때문에 루시가 곤란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 사귄 친구 밥이 메인주 번호판을 구해온다. 뉴욕 자동차 번호판 때문에 벌어진 일을 메인주 번호판을 달아서 해결하는 슬기로움. 외부로 나갈 일이 있을 때는 다시 뉴욕 번호판을 장착하고 길을 나서기도 한다.

잭 리처를 읽으면서도 루시를 놓지 못 했던 건 바로 이 장면 때문이다.

나는 곧장 따라 나가서 집 모퉁이에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두 번째 차고로 들어갔다. 5분 뒤 검은색 링컨을 후진으로 빼서 몰고 나갔다. 번호판을 바꿨다. 한밤중에 봤을 때는 여섯 자리의 메인 주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일곱 자리의 뉴욕 주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234쪽)

필요에 따라 메인 주와 뉴욕주 번호판 바꿔 달기. 정말 특이한 설정 아닌가. 내가 읽는 책, 내가 읽는 우주에서는 이 특별한 장치가 반복된다. 가능하다. 가능하다고 한다.

이쯤 해서 확인해 보는 잭 리처 랭킹. 아, 원래부터 알고 있기는 했지만서도, 나는 신상 좋아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읽은 잭 리처가 예전에 읽은 잭 리처를 이겼다. 그래서 최고의 잭 리처는 『처단』, 두둥!

처단 - 인계철선 - 출입통제구역 - 악의 사슬 - 사라진 내일 - 1030 - (잭 리처) 어페어 - 10호실 - 잭리처의 하드웨이 - 웨스트포인트 2005 - 61시간 - 네버 고 백 - 퍼스널

잭 리처 원서도 여러 권 있는데,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달력 뒤로 책 숨기고 못 찾는 스타일). 완독한 책은 <Worth dying for> (<악의 사슬>) 한 권뿐이다. 그래도 이 책은 놓칠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외쳐본다.

"어머, 이건 사야 해!"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