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
웅진지식하우스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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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일이었다.
■ 책 속 밑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하층의 경비원 배치 사무실 앞에 빈 예술품 운송 상자들이 쌓여 있다. 1층의 무기와 갑옷 전시관 바로 아래에 있는 사무실이다. 놓여 있는 운송 상자들은 ㅎ여태와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커다란 박스처럼 생긴 것도 있고, 캔버스처럼 폭은 넓고 두께가 얇은 것도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위풍당당하고, 옅은 색의 가공하지 않은 원목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져서 희귀한 보물 혹은 이국적인 야수까지도 담아 운반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듯 보인다. 근무복을 입고 출근한 첫날, 이 견고하고 낭만적인 물건들 곁에 서서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상상해본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너무 강렬하게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침은 늘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더욱이 미술관 문을 열기까지 30분 정도 남겨두고 근무 자리에 도착하는 날이면 말을 걸어 나를 속세로 끌어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나와 렘브란트, 나와 보티첼리, 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렬한 환영들뿐이다. 메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 명에 달한다(몇 년이 흐른 후 전시실 하나하나를 섭렵하면서 모두 세어본 결과 정확히는 8496명이었다. 전시관을 크게 확장한 다음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숫자가 되었지만 여기에는 배경에 나오는 아기 천사, 투우장의 관객, 개미 크기의 곤돌라 사공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그런 것들까지 모두 셀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면 그건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많았는지를 실감하지 못해서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는데 우연히도 거의 그 숫자에 맞먹는 햇수 이전에 붓으로 창조된 사람들이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중략) 그러다 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진짜 중요한 것은 경계가 아니라 머무름이라는 사실을, 나는 경비원의 시간 속에서 배웠다.
월요일은 미술관의 정기 휴관일(책이 출간된 지금은 매주 수요일로 정기 휴관일이 변경되었다-옮긴이)이라 쿵쾅거리며 돌아다니는 관람객도 없어서 메트의 직원들이 각자의 은신처 밖으로 나온다. 메트는 2천 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데 오늘만큼은 많은 이들이 제 물을 만난 듯하다. 큐레이터들은 전시실 한복판에 서서 어느 유물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토론한다. 기술자들은 누군가와 부딪힐 염려 없이 예술품이 실린 카트를 이리저리 밀고 다닌다. 인부들은 그들의 실력을 믿고 편안해 보이는 보존가들의 감독하에 로프와 도르래로 조각상을 어떻게 들어 올릴지 몇 시간씩 계획을 세운다. 도처에서 전기 기술자, 공기조화 기술자, 페인트공(세밀한 붓이 아닌 롤러를 사용하는)들이 몰고 다니는 전동 리프트의 삐, 삐, 삐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몇 직원들은 손님을 한두 명씩 데려올 수 있는 특권을 활용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얼굴을 비춘다.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미술관의 그림들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매일 다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 끌림의 이유
스무 살 이후로 시간이 무섭게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조급함이란 감정까지 덧씌워져 하루하루가 더욱 빠르고 버겁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더욱 멈추어 머무는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그림을 지키는 경비원입니다.
세계 최대 미술관 한복판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걸 스쳐 지나가야 하는 자리인데, 오히려 그 자리에서 멈추어 바라보는 삶을 배우게 되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그 자리에서 깊게 경험했던 인간적인 울림과 그림이 주는 느린 호흡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미술관은 그림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그 그림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사람 또한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저자는 거대한 예술 작품들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의 리듬을 잃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서 있기만 하는 단순한 직업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매일 조금씩 다르게 그림을, 사람을, 시간을 그리고 스스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대해 하루를 평가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시간을 살아냈는지가 아닐까 하고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지만 매일매일 묵묵히 쌓아올리는 시간들.
그것들이 결국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해 나간다는 것을, 새벽 공기처럼 맑게 깨달았습니다.
5월의 첫 날.
어떤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다 작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금 꺼내들었습니다.
새 계절의 문턱에 선 지금, 이 책은 제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중요한 건, 그곳까지 어떤 리듬으로 나아가느냐야."
삶의 흐름이 조급해질수록 우리는 멈추어 머무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멈추어 선다는 것은 조용히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멈춤이 아닌 깊어짐이란 사실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추어 서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분
당신의 하루가 작품이라고 조용히 응원하고 싶은 분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은 모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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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