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가 진짜 위험한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예술가의 범주에 속한다고 여기게끔 착각하게 만들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법칙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에 대한 갈망을 갖는 것,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대한 비애가 있는 것, 삶과 행위에 대한 의욕이 부족한 것. 이런 것들이 마치 천재나 재능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인 것처럼, 이런 욕구를 느끼거나, 이런 비애를 가지거나, 이런 의욕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즉각 예술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잘난 개인은 스스로가 이러한 갈망, 이러한 고통, 이러한 좌절이 모두 자신의 운명이 이끄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좌절은 암묵적으로 위대한 깨우침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낭만주의와 개인주의 / 이명의 탄생 /페르난두 페소아>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얘기> ep 46에서 임이랑이 말하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전혀 와닿지 않는다. '불안해서 수전을 닦는다고? 수전은 당연히 닦아야 하는 거잖아.' 다이소에서 물때 제거 전용 스펀지가 파는 이유가 뭔가. 위에 인용한 글을 떠올리며(요즘 <이명의 탄생>을 읽고 있다)오지은의 우울과 임이랑의 불안은 예술을 하는 사람의 기본 스펙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불안이 싫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 내가 불안해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오일칸이 60% 일 때 주유를 해서 90%로 만들어 둔다거나 갑자기 목돈을 써야 할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입출금 통장 잔고는 1000만 원 내외로 유지하는 것(예적금 일부 해약 같은 제도도 있지만, 왠지 싫다), 나는 건강 문제가 있고 그로 인해 불안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모닝홈트와 양배추를 토템으로 모시고 있다. 불안해하면서 불안한 상황 속에 나를 방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이다. 불안한 상황, 불안정한 상태가 싫기 때문에 나는 투자(재테크)도 일절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우울과 불안을 거름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울과 불안을 껴안은 예술가가 될래?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자는 생활인이 될래?라고 한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생활인을 택할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요가 매트를 깔고 모닝홈트 10분을 하고 양배추와 렌틸콩 샐러드를 아침 식사로 먹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은, 오히려 하지 않으면 고등어구이 먹고 나서 양치질하지 않은 찝찝한 기분이 드는 생활인이 나 인 것이다.
내가 쓴 글이 인기가 없으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하는 류의 걱정으로 인해서 발생한 불면과 우울과 불안을 줄이고자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라면 입시 경쟁 속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낸 뒤 내가 한 선택처럼 난 그냥 생활인으로 사는 걸 택하겠다. 고등학교 3년은 나를 상대평가, 등수 같은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지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성취지향적인 사람들은 늘 변두리를 선택하는 나를 패배주의자의 전형이라고 한심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국의 일반적 직장인이 겪는 전형적인 번뇌(승진과 퇴사, 내 집 마련 등 준거집단 속에서 경제적 우위에 위치하는 것)가 전혀 없는 내 생활이 만 배는 더 지혜롭다고 장담한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도 싫고, 약점을 잡히기도 싫다. 타인의 인정, 타인의 평판, 인기 같은 것이 내 수입을 결정하게 되는 상황도 싫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평가는 0점에 수렴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해서 작가가 되면 어떨까(feat. 회사도 다니기 싫었고)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맥북을 구매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에 내놓을 글을 쓰고 있지 않고, 이젠 쓸 생각조차 없고,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 즉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낳은 아기가 0세일 때 바라는 것과 같다.
p.s.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명대사 송강호가 박해일에 하는 말 "너 밥은 먹고 다니냐?"를 패러디해서
성취지향적인 삶을 사는 속물들에게 "너 잠은 제대로 자냐?"라고 묻고 싶다.
요즘은 특히 권한대행 최 씨에게 묻고 싶다. 내란수괴 윤 씨는 금치산자 정도로 뇌가 박살 난 거 같아서 잘 먹고 잘 쳐 잘 거 같은데, 권한대행 최는 아직 일말의 수치는 있는 듯하여 분명 수면체 처방받았을 거라고 장담한다. 정화조 속의 똥덩어리보다 못한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