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비오는 유칼립투스 숲

대학병원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서 순번 모니터를 보면서 내 차례를 기다릴 때면 언제나 긴장이 된다. 이미 답이 정해진 것이겠으나 그래도 긴장이 된다. 오늘은 새로운 과 진료다. 검사를 할 때마다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새로운 장기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견된다. 교수의 처방은 이랬다. "살을 찌우면 됩니다. 너무 말라서 이런 경우가 있어요." 교수가 정해준 몸무게는 내가 평생에 가져본 적이 없는 몸무게였다. 10kg 정도 더 찌워야 가능한 몸무게였다. 성인이 된 후 평생 지금 몸무게 근처에서 오르락내리락했던 나로서는 지금의 해결책이 의아할 뿐. "평생 이 몸무게로 살아왔는데 왜 지금 이런 문제가 생긴 거예요?"라고 묻자 몸집이 좋은 교수는 "누적된 겁니다. 가장 쉬운 해결책은 살을 찌우는 겁니다." 6개월 후에 다시 검사해보자고 한다. 돌겠네!


이렇게 몇 분 진료를 보고 본인부담금 80%가 넘는 진료비를 내고 왔다. 공단부담금이 적으면 왠지 손해본 기분이다. 반대로 공단부담금이 더 많으면 조금 위로가 된다. 어떤 점에서 위로가 되냐면 아픈 덕분에 건강보험료 낸 것은 보상받는구나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다음 검사하기 전에는 부디 제발 정상으로 되어있기를 ㅜㅜ 


이렇게 홀로 각자 병들어 죽는 건가.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