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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머리앤의 작은서재
  • 구월의 보름
  • R. C. 셰리프
  • 16,650원 (10%920)
  • 2025-06-23
  • : 1,805



#구월의보름 #도서협찬

#독파 #RC셰리프

그녀는 둘리치의 집을 떠날 때부터 휴가가 끝나기 전에 무언가 굉장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이 클래펌 환승역에서 함께 서서 기차를 기다렸을 적에, 기차가 호샴에서 빠져나갈 때 그들이 함께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었을 적에, 그들이 보그너의 길거리를 통과해서 시뷰로 다 함께 걸어갔을 적에, 거듭 또 거듭 그녀는 이 휴가가 마지막일 거라고, 그녀가 아버지와 어머니, 딕과 어니와 다시는 결코 이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느꼈다. 슬프고도, 다소 아쉬운 감정이었고, 지금에서야 그녀는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근사한 시절이었다, 보그너에서의 이 휴가들은. 하나 그런 시절들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그런 시절들이 해를 거듭하며 계속되면서, 죽어가는 어린 시절의 불씨에 미약하게나마 부채질을 시도할 수는 결코 없었다._384~385p.

시간이 흘러, 그리워지는 시절들이 있다. 그때는 이 순간들이 반복되는 게 조금은 지겨웠고 나만의 시간이, 공간이 절실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조금은 짧다고 느껴졌던 여름방학이면 어김없이 온 가족이 함께 어디론가 떠나야 했던 '여름휴가' 어릴 땐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고 이번 휴가지는 어디일까?로 늘 설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구월의 보름>의 스티븐슨 가족의 연례 휴가를 떠날 준비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티븐스 부부의 신혼여행지였던 보그너 레지스. 이후 매년 더 낡아가는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자녀들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 이들 가족이 떠나는 스무 번째, 2주간의 여름휴가. 정말 슴슴하게도 어떠한 사건이나 반전도 없고, 그 흔한 가족사에 대한 비밀도 없이 온전히 평범하고도 소소한 일상은 '재미있다!'라는 감상은 없지만 자꾸 다음 페이지를, 다음 이야기를 넘기게 된다. 한 울타리에 사는 가족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엮어가는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색실로 만들어낸 태피스트리 같은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휴가를 떠난 사람은 상황만 조금 달랐어도 자신이 되었을지도 몰랐던 사람, 자신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된다. 모든 이는 휴가 중에 동등하다. 모두가 비용이나 건축 기술일랑 고려하지 않고 저마다의 성을 꿈꿀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토록 섬세히 직조된 꿈들은 숭배하듯 보살펴야만 하고 그다음 주의 투박한 빛으로부터는 떨어뜨려 놓아야만 한다_35p.

한여름에 햇빛은, 옥외에서 보낸 긴 하루의 끝으로 갈수록 거의 짐덩이가 되는 수가 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서쪽 하늘에 고집스레 매달려 있는 그 창백한 백열광은 사람을 거의 분개하게 만들고, 커튼을 쳐본들 침실은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구월의 잠식해 오는 밤들은 낮의 전경에 새로운 장면을 더해준다. 악단의 음악은 광채를 뿜는 보석이 있는 왕관에서 흘러오는 듯싶고,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해변 산책로를 따라가는 고무신들의 부드러운 타박거림, 유원지의 꼬마전구들과 바닷속 별들의 반짝임은 낮의 요란한 기상에 부드러운 낭만을 가져다준다._197p.

그는 자기 직장이 창피했고, 옛 학교가 창피했는데, 직장과 학교는 아버지 인생의 자랑스러운 업적들이었다. 그는 불충했다. 그 점이 그가 불행한 까닭의 핵심이었다. 고독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그는 마음속에서 비밀리에 경멸했던 것을, 아류이며 딱히 좋은 게 아니라고 알았던 것을 평생토록 자랑스러워하는 행세를 해야만 했다.

그것이 충성의 의미였을까? 모든 타고난 자부심을 익사시켜 버리고, 그가 이바지하도록 정해진 그 애처롭고 소소한 기준을 우러러볼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자신을 으스러뜨리는 것이? 더욱 자랑스러운 기준이 그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그가 의심의 여지없이 알았는데도 말이다?_258p.

#백지민옮김 #다산북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추천 #책추천 #book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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