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은 혼돈과 유실 그리고 붕괴의 시간이었다. 169
도시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우가 직업인 손열매는 목소리를 내는 직업인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병에 걸리면서 치유받고자 노력하지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배우가 직업이지만 영화를 볼 수 없는 병에 걸려서 회복하고자 노력하지만 치유되지 않는 예전 배우가 소설에 등장한다. 이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게 된 마을에서 서로가 서로의 병을 말하는 장면에서 이들이 놓친 것들과 그들이 인생을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 하는지 이름조차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동네 닭장집 할머니가 알려주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 전해지는 소설이다.
너무나도 작은 존재들이라 분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인생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수미 엄마의 장의사 철학, 닭장집 할머니의 철학, 어저귀의 철학이 서서히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도시생활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별이지만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수미 엄마, 닭장집 할머니, 어저귀가 보여주는 그들의 삶의 철학이 교교하게 빛나는 인물들이다.
팔이 없는 사람의 수의를 어떻게 입히는지 수미 엄마의 대화 내용이 인상적이다. 죽은 사람과 대화하면서 장의사라는 일을 묵묵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수미 엄마의 기나긴 삶에 수미가 가졌을 어머니의 직업을 잠시 짐작하게 된다. 수미가 집착하는 돈의 의미와 수미 엄마가 하는 장의사 일로 버는 돈의 의미는 다른 의미이다. 죽음을 정리해 주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보내는지는 <조명가게> 드라마에서도 등장한다. 수해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물난리에 살아서 돌아온 수미로 인해 수미 엄마를 어떻게 평생 대면했는지 드러난다. 떠나고 싶었던 마을이었다고 닭장집 할머니를 통해서 수미 엄마의 진심이 전해진다.
혼돈과 유실, 붕괴의 시간을 여름이라고 명명하면서 여러 인물들, 여러 사건들이 저마다의 인생에 그려진다. 잃어버린 팔, 잃어버린 자식, 잃어버린 목소리, 잃어버린 돈, 잃어버린 영화 관람의 시간들이 펼쳐진다. 수미가 지인들에게 투자 목적으로 빌린 돈의 액수는 다르지만 빌려준 사람들의 이유들은 각양각색으로 전해진다. 테슬라를 위해, 혼수 마련을 위해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그들은 수미가 죽기를 바라는 진심까지도 거침없이 드러내는 모습에 손열매는 경악한다. 지난날 그들이 함께 나눈 시간들은 어디로 부유하면서 날려간 것인지 회의감이 감돈다.
마을 개발을 위해 폐교를 만들고자 학생들을 전학시키는 검은 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산불까지 내면서 마을 개발을 앞당기고자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한다. 산불로 사라진 사람 어저귀를 그리워하는 손열매의 감정이 영롱하게 그려진다. 열매의 전 남자친구가 보여준 이질적인 모습과 어저귀가 보여준 모습들은 대조적이라 열매의 숨길 수 없는 감정까지도 그리움으로 깊게 남는 작품이다.
모두의 인생에 드리운 첫 여름의 사나움과 상실과 붕괴, 유실까지 이겨내기를 응원하는 소설이다. 열매의 자궁에 난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위한 보증서 사인을 거부한 열매 오빠와 언니가 있다. 이혼하고 재혼한 엄마와 오랜만에 나누는 전화 통화에서도 엄마가 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열매가 수술 보증서를 위해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까지도 짐작하게 된다. 열매의 목소리에 병이 난 이유는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을 삶의 무게감이었을 것이다. 반면 어저귀의 가족은 마을이라고 말하는 이장의 말이 명대사이다. 인류애를 잃은 어저귀가 마을 일에는 아낌없이 나서는 이유가 된다. 보살피고 아껴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 사랑이기에 이장의 마음과 진심이 고스란히 따뜻하게 전해져서 좋았던 작품이다. 어저귀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내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멈추기가 어려웠던 가독성이 높은 소설이다. 웃음까지도 진하게 던지는 장면들이 많아서 실실 웃으면서 만난 작품이다.
완주하라는 응원이 담긴 작가의 사인까지도 깊게 호흡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은 소설이다. 열매가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호흡하면서 느끼는 놀라운 치유와 경험들이 지금 우리에게도 찾아들면서 진짜 인생을 살아가면서 즐기는 감동과 행복을 맛보는 완주하는 인생이 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타일』에 이어서 읽은 작가의 소설로 듣는 소설 시리즈 첫 권이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과학자 수잔 시마드의 책 내용이 등장하는 내용을 읽을 때 그 책을 떠올렸는데 작가의 친절한 설명에서 확인하면서 반가웠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어저귀가 들려주는 자연의 섭리에서 이탈한 인간은 어떤 행동을 무차별적으로 일삼는지도 벤츠 차를 타고 나타나는 인물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낸다.
당신들에게 맞는 색깔 삶의 색깔을 다시 입으세요...살아있는 진짜 노래를 여름의 노래를 불렀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감동했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행복했어.
- P210
여름은 혼돈과 유실 그리고 붕괴의 시간이었다.
- 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