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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제나 히츠
  • 19,800원 (10%1,100)
  • 2025-06-19
  • : 5,390










4점  ★★★★  A-







공부 기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부 기계는 성적에 미쳐 돌아가네.









공부 기계의 연료는 수험서와 문제집이다. 공부 기계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문제에 매달려서 싸운다. 학교는 공부 기계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교사와 교수들은 공부 기계의 머리에 실용적인 학문과 기술 분야를 주입한다. 그래야만 사회에 쓸모 있는 공부 기계를 최대한 많이 만들 수 있다. 팔려 나간 공부 기계는 회사에 쓸모 있는 로봇(robot)이 된다. 로봇은 여전히 공부 기계다. 회사는 로봇을 믿고 강제로 공부를 시킨다.[주1] 로봇은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공부를 멈출 수 없다. 




공부 기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새파란 청춘이 하얗게 녹슬 때까지

공부 기계는 끝없이 돌아가네.




공부 기계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공부를 찾아야 한다. ‘공부를 찾는 사람’은 성적을 잘 받고 싶거나 학력을 쌓기 위해 ‘공부하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공부는 ‘나 자신을 위한 공부’다. 나 자신을 위해 공부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내 마음을 힘껏 뻗치는 일이다.


공부를 찾는 사람은 배움에 대한 사랑이 두텁다. 그래서 호기심이 마르지 않는다. 자신이 궁금해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찾으려고 한다. 반면에 공부 기계는 배움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 명예욕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 공부한다. 겉으로 보면 스스로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공부 기계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은 명예욕을 동력으로 삼아 머리를 빠르게 굴리는 것이다. 공부 기계는 돈을 부르는 학문이나 관심사에 열중한다.


공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는 요란하다. 그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공부 기계는 학벌과 인맥을 전시한다. 공부 기계들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더 이상 공부를 찾지 않는다. 공부를 찾는 일은 지루하고, 화려하지 않다. 재미없는 공부는 재물이 도망간다. 공부 기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공부를 쓸모없다고 여긴다.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는 오랫동안 공부 기계에 박혀버린 ‘공부’를 빼내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찾아야 할 공부의 참모습을 알려준다. 공부 기계는 지식을 집어삼켜 머리에 욱여넣는다. 지식이 급하게 삼켰으니, 소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본인의 입맛에 안 맞는 지식, 제 눈에 초라해 보이는 쓸모없는 지식을 뱉어낸다. 하지만 공부를 찾는 사람은 차분하다. 배움에 대한 사랑은 지식을 차별하지 않는다. 배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들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지식을 소중하게 대한다. 지식을 천천히 음미하고, 씹으면서 생각한다. 공부를 찾는 사람은 공부를 즐긴다.


저자는 공부에 달라붙은 편견과 오해들을 제거한다. 상아탑에 거주하는 공부 기계는 지식을 쌓는다. 지식으로 지어진 상아탑의 문턱은 점점 높아진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아탑에 들어올 수 없다. 상아탑에 지식인만 갇히는 것이 아니다. 상아탑은 공부도 가둔다. 공부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부는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공부가 전문가와 지식인들만 하는 직업상의 활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부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공부에 갈망이 있는 사람은 상아탑이 아니더라도 마을 도서관 안에서, 독서 모임에서 공부를 찾는다. 공부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은 상아탑을 직접 부수고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지적 역량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공부하기 전에 내가 알아야 할 지식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이 생각이 길어지면 공부를 찾고 싶은 갈망이 줄어든다. 공부 기계는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해 지식을 축적한다. 저자는 실무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공부하거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공부 활동을 ‘도구적 이용’이라고 한다. 공부를 찾는 사람은 실용성을 따지지 않는다. 지식이 궁금해서 공부한다.


공부 기계는 ‘공부하지 않는 사람’과 ‘공부를 못하는 사람’을 배척한다. 공부하지 않는 사람과 공부 못하는 사람은 대체로 공부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다. 학교 공장에 일하는 공부 기계 교사와 교수는 공부 기계가 되지 못한 학생들의 근성을 지적한다. 공부 기계들이 지배한 사회는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교 공장 밖에 있는 지식을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괴짜로 취급한다.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는 ‘디오게네스의 등불’과 같은 책이다. 거리를 떠돌면서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는 낮에 등불을 들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등불을 밝혔다.[주2]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는 수많은 공부 기계가 분주히 움직이는 세상에 가려진 사람들, 즉 ‘공부를 찾아 나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찾기 위한 등불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찾는 사람들이 항상 들고 다니는 등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호기심과 궁금증이다. 우리가 배운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해서 빛나지 않는다. 영원한 진리는 없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호기심과 궁금증이 빛나는 등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등불에서 나오는 빛은 새로운 지식으로 이끌어준다.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호기심과 궁금증을 켜둔다.



공부 기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어디선가 공부를 찾는 사람의 호기심은 밤새 빛나고.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주1] 로봇의 어원인 체코어 robota는 강제 노역, 고된 일을 뜻한다. 참고문헌: 카렐 차페크, 유선비 옮김, 《R.U.R.: 로줌 유니버설 로봇》 (이음, 2020년)



[주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함께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나남출판, 2021년), 509쪽.




* 146쪽




 

 소크라테스는 동료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개똥벌레[주3]처럼 시민들을 귀찮게 건드려서 그들이 가진 삶의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게끔 한 자신의 행동이 시민에 대한 봉사라고 주장한다.


* 원문, 89쪽

 

 Socrates claims that his relentless philosophical questioning of his fellow citizens is a civic service, as, like a gadfly, he stings and annoys them and forces them to question the values that they live by.

 


[주3] ‘개똥벌레’는 오역이다. gadfly는 소와 말의 등 주변에 날아다니는 등에와 쇠파리를 뜻한다. ‘잔소리꾼’을 비유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신을 (아테네 시민들을 귀찮게 하는) 등에로 비유한 소크라테스(Socrates)의 말은 플라톤(Plato)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온다.

 

 여러분이 날 죽인다면, 이런 유의 다른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요.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하자면, 그야말로, 마치 크고 혈통 좋지만 큰 덩치 때문에 꽤 굼뜨고, 어떤 등에가 있어서 일깨워 줄 필요가 있는 말(馬)과도 같은 국가에 신이 붙여 놓은 그런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30e, 78쪽, 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년)





* 331쪽, 주







올김 →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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