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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 19,800원 (10%1,100)
  • 2025-05-01
  • : 3,575



4점  ★★★★  A-





문학과 정치는 의외로 친분이 두텁다. 문학은 특정 정당 정치와 정치인에 힘을 실어주는 지지자다. 종이 안에서 문자로 정치를 언급해 온 문학은 종이 밖으로 나오면 정치적인 목소리가 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부당하게 억압을 받으면 문학은 격렬하게 저항한다. 이럴 때 펜은 폭군이 쥔 칼보다 강한 무기로 변한다. 정치를 위해 펜을 꺾은 문학은 정치인이다. 정치에 지나치게 몰입한 문학은 독재자를 위한 나팔수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문학과 정치의 친밀한 관계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종이 안에서 작가로 살아온 그는 정치를 자주 말했고, 정치적인 견해를 솔직하게 밝혔다. 하지만 오웰의 문학 속에 있는 정치는 종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종이 밖으로 나온 오웰은 펜을 든 작가가 아니었다. 전체주의와 비민주적인 정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총을 든 저항군이었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파시스트 정권에 대항했다. 파시스트를 비판하는 유럽의 지식인들이 스페인에 모여 반(反)파시스트 저항군을 결성했다. 하지만 그들의 결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파시스트 저항군 안에서도 파시즘이 꿈틀대고 있었다. 반파시스트 저항군에게 합류한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Joseph Stalin)을 지지했다. 그들은 스탈린의 독재 정치를 외면했고, 이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와 트로츠키(Leon Trotsky) 지지자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자인 오웰은 저항군 안에서 일어난 갈등과 내전을 르포르타주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에서 상세히 밝혔다. 스페인 내전은 오웰의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오웰은 문학과 정치가 어울려 지내는 것을 인정했지만, 정치에 아부를 떠는 문학을 비판했다. 정치가 문학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면 표현의 자유를 없애는 거대한 검열관이 된다. 오웰은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나』라는 글에서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 작가는 평화롭게 책을 쓰는 데 전념한다고 했다. 정치에 굴복한 문학을 경멸하는 작가는 문학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하려고 애쓴다. 오웰은 펜에 좀 더 힘을 주면서 『나는 왜 쓰는가』에서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강조한다. 이 글에서 그는 예술(문학)과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말한다. 오웰은 정치에 무관심한 문학도 경계한다. 흐리멍덩한 문학은 표현의 자유를 조용히 죽이는 정치를 찬양한다. 자신들의 펜을 옥죄는 상황임을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침묵하는 태도가 더 심각하다. 문학이 정치를 외면할수록 전체주의와 독재에 찔러야 할 펜 끝이 무뎌진다.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불의를 감지하는 순간 시작된다.


오웰은 파시즘을 지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한 작가들을 언급하면서 비판한다. 지금도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들만 언급하자면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타임머신》과 《투명 인간》을 쓴 작가로 유명한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탐정 ‘브라운 신부(Father Brown)’ 시리즈를 쓴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G. K. 체스터턴(G. K, Chesterton) 등이 있다. 문학과 정치를 분리하려는 독자들은 정치색이 짙은 문학을 피한다. 이들은 파시즘과 제국주의를 찬양하거나 간접적으로 지지한 작가의 글을 거부한다.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자신과 정치적 견해와 정반대인 작가는 반갑지 않다. 그러나 오웰은 비뚤어진 정치에 고개를 푹 숙인 작가들을 비판하면서도 그 작가들의 문학적 성취는 인정한다.


작가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는 반응과 작가의 문학을 즐기는 행위가 일치한다고 믿는 독자라면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약칭 ‘정치 대 문학’)를 읽어야 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로 유명한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당대 영국 정치를 비판하는 팸플릿도 썼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알려진 《걸리버 여행기》는 사실 18세기 영국 사회와 정치를 풍자한 소설이다. 오웰은 스위프트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여덟 살부터 처음 읽은 이후로 여섯 번 이상 읽었다는 《걸리버 여행기》를 극찬한다. 오웰은 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한다. 글에서 드러난 작가의 정치색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분노하게 되면 그 작가의 문학적 매력과 글의 장점을 즐기지 못한다(『정치 대 문학』, 358쪽).


『작가와 리바이어던』(Writers and Leviathan)은 ‘정치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전하는 충고와 같은 글이다.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나오는 괴물이다. 오웰은 문학을 침범하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이 괴물로 비유한다. 오웰은 작가의 정치적 활동을 독려하면서도 정당을 위해서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정당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는 글쓰기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죽이는 일이다. 문학을 비굴하게 만드는 정치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과 정치를 못 만나게 할 수 없다. 


문학과 정치가 잘 협력하면 훌륭한 예술 작품이 나온다. 오웰은 자신의 대표작 《동물농장》을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융합해 보려고 시도한 소설’이라고 했다(『나는 왜 쓰는가』, 325쪽). 오웰은 문학과 정치를 결합한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이 작품은 실패작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전체주의의 위력을 암울하게 보여준 《1984》는 성공했다.













오웰의 에세이 선집 《나는 왜 쓰는가》가 15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 구판[주1]에 수록된 에세이는 총 29편. 이번 개정 증보판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에세이 2편이 추가되었다. 사진 도판의 배치가 달라졌다. 구판에 실린 도판들은 갓난아기부터 말년까지 오웰의 모습이 남아 있는 사진들과 글이 써진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역사 자료와 같은 사진들이다. 구판의 사진 도판은 글 중간에 삽입되어 있었다. 개정 증보판에서는 사진 도판이 책 마지막에 나온다. 그런데 구판에 있었던 사진 도판 몇 개가 빠졌다.






[주1] 《나는 왜 쓰는가》 구판 

서평 <나는 왜 조지 오웰을 읽는가>

2010년 11월 1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4234956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34쪽




 

 그의 책 『역사 개괄』[주2]에서 가장 큰 악한은 군인 모험가인 나폴레옹이다.

 


[주2] 인용한 문장은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 국가』에 나온다. 『역사 개괄』은 H. G. 웰스가 쓴 책이다. 원제는 <Outline of History>다. 1920년에 출간된 세 권짜리 책이다. 지구의 기원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의 세계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1922년에 웰스는 방대한 <Outline of History>를 한 권으로 요약한 <A Short History of the World>를 썼다. 이 책의 국역본은 총 세 권이다. 


* 《웰스의 세계 문화사》(지명관 옮김, 가람기획, 2003년, 절판)


* 《H. G. 웰스의 세계사 산책: 세계 대문호와 함께 인류 문명의 위대한 역사를 걷다》(김희주 · 전경훈 함께 옮김, 옥당, 2023년)


* 《인류의 세계사: 생명의 탄생부터 세계 대전까지,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육혜원 옮김, 이화북스, 2024년).





* 205쪽






정신분열증 환자 → 조현병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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