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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의 Feel通^^*
  • 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 15,120원 (10%840)
  • 2025-05-30
  • : 19,250

오래전 책을 읽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식탁으로 사용하는 테이블을 ‘걸레’로 닦는다는 대목에서 ‘걸레’가 맞나? 의문이 들었다. 원문을 찾아볼 능력은 되지 않아서 같은 대목을 다른 출판사의 책에서는 ‘행주’라고 되어 있었다. 단어 하나에 따라 번역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때부터였다. 외국 작품을 읽을 땐 번역을 따지게 되었던 게.


 

직역과 의역.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직역과 의미를 살려서 번역한 의역 사이에서 늘 고민했다. 소설이 아닌 과학이나 철학 분야의 책을 읽을 땐 번역가의 이력도 살펴보곤 했다. 번역가가 원문을 이해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책에 대한 이해도는 달랐다. 때론 A출판사의 책과 B출판사의 책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읽기도 해봤지만 매번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것도 답이 아니었다.


 

<오역하는 말들>은 번역가 황석희의 에세이다. 20년차 번역가라고 하는데 막상 그의 작품을 접한 게 많지 않다 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포털검색으로 그의 작품을 알아보니 (주로 영화이긴 했으나) 내가 재미있게, 인상 깊게 본 작품들이 꽤 많았다. 순식간에 바뀌는 화면과 자막을 분주히 눈으로 따라가면서 폭소를 터뜨렸고 분노했고 감동했다. 그의 글이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어우러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을텐데 그걸 이제야 알게 됐다.



 

아무리 힙해도 오역은 오역이다. 이렇게 본디 의미에서 탈선한 문장이 여러 채널을 오랫동안 거치면 정역의 탈을 쓰면 문장은 물론이고 화자의 의도도 곡해된다. 힙하고 예쁘고 근사하면 뭐하나. 내실이 없는데. -101쪽


‘오역은 번역문에서 자연 발생’하기에 번역하는 이에게 오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오역이 어느 정도인지, 또 상대가 알아차리느냐 아니냐 이게 문제였다. 어떤 문제든 그것을 인지하고 인정한 후 받아들이고 나면 이후의 상황은 달라진다. 저자도 그랬던 듯하다. 책에서 저자는 번역가로 살아오면서 느낀 일상의 다양한 오역을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의식하지 않고 주고받는 말속에 얼마나 많은 오역이 존재하는지, 친밀감과 무관하게 말이 왜곡되기도 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가.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전에 오역하고 곡해해서 상처받고 그로인해 멀어진 관계는 또 어떤가. 어쩌면 이것 역시 직역과 의역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의 일상을 풀어놓은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남편이자 아빠이지만 누군가의 아들인 그가 무심하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정반대에 서 있는, 말이 아내이자 엄마이지만 누군가의 딸인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어떤 형식으로든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려는 그의 마음이 다른 이에게 전해지길 바래본다.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의 행동을 번역하다 보면 이런 오역을 저지르기 쉽다. 마치 영어 번역을 해야 하는데 일어 사전을 들고 번역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번역할 땐 어른 사전을 잠시 치우고 아이 사전을 펼쳐야 한다. -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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