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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의 영화같은 이야기

요즘 핫하다는 론 뮤익 전시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미술관 나들이.

대기 줄이 어마어마하다 하던데 평일 오전 10시 반 입장해서 그런지 관람에 방해가 될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도슨트는 11시에 있었긴 한데,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했다.

김영하 작가의 차분한 음성이 듣기 좋았으나, 생각보다 짧았다.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

1~3명 단위로 도슨트 하는 그룹이 있어 궁금했는데 까르띠에 VIP라는 얘길 들었다.

부럽네.


전시실 입장하면 한켠에 전시해설이 비치되어 있다.

관람 후 나중에 읽어봤는데 오디오 가이드 내용의 축약판이다.

MMCA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리플릿을 한 장으로 편집한 것이다.


<마스크 II>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한 이 작품의 제목이 얼굴이나 자화상이 아닌 마스크인 것은 작품을 뒤에서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볼 수 없는 나의 잠든 얼굴이 궁금해진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으랏차차, 힘을 내!

무거운 저 나뭇가지는 삶의 무게이던가.

버티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내 지난날과 닮아 있지 않은가.

그 순간, 마음 한켠이 뭉클해졌다.


<침대에서>

어? 이 작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을 한참 더듬어 사진첩을 뒤져 본 결과, 2017년 8월, 서울시립미술관 까르띠에전에서 봤었더라는.

그땐 작가의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네.

이 작품 앞에서는 인증샷 시그니처 포즈가 있다는데 그건 못 찍었다.

난 저 이불 밑이 왜 그렇게 궁금하지? ^^;;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을 보면 보이지 않는 곳도 제대로 만들던데, 이 작품에 대한 내용은 없어 궁금했다.

이불의 주름마저도 작가가 의도한 것일 텐데 전시 때마다 저걸 어떻게 똑같이 표현할까 싶어 지난번 전시 때 찍어놓은 사진과 비교해 봤는데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답은 아직 모름.


<치킨 맨>

뭔가 소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 긴장감이 느껴진다.

저들이 왜 저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인지, 작가는 왜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었는지도 궁금하다.


<젊은 연인>

좀 어려 보이는 커플, 딱 아들이 생각났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커플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게 아니다.

슬프기까지 해 보이는 표정과 뒤에서 잡은 손목이 불편한 상황이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유령>

작품 설명에서 사춘기 소녀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어색함과 수줍음이라는 해설도 나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왜 다 슬프게만 보이지?


<쇼핑하는 여인>

슬프고 또 슬펐던 작품.

두 손 가득한 짐, 어쩌면 아기까지도 삶의 무게인 것 같고,

코트를 입었으니 날씨는 제법 쌀쌀할 텐데 발목을 드러낸 바지를 입혀서 추워 보였다.

그래서 또 슬퍼.

아이는 엄마의 시선을 갈망하는데 엄마는 퀭한 눈으로 다른 곳을 응시한다.

나도 아이들의 눈길을 피하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았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살짝 보여주는데 코트 안쪽 아기띠에 안긴 아기까지도 디테일이 살아있다.


<매스>

코너를 돌아 이 작품을 마주하자마자 작은 탄성이 나온다.

백 개의 두개골,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고 한다.

껍데기를 벗기면 인간은 다 똑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여기부터는 6전시실이다.

전시실 조도도 달라졌다.

<배를 탄 남자>

나체인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하고 있는 걸까?

조난을 당한 것 같은 고생한 흔적도 없고, 물 위에서의 뱃놀이를 즐기는 유유자적한 모습도 아니다.

이 상황이 있기 전 스토리도, 이후 어떻게 저기에서 나올지도 궁금하다.


<어두운 장소>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대기 줄이 있다.

어두운 곳에서 오롯이 나만 작품과 정면으로 마주하여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무섭기도 하고, 어둠 속에 얼굴만 둥둥 떠있는 것 같아 어지럽기도 하다.

나는 백설 공주에 나오는 요술거울이 생각났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너?


고티에 드블롱드는 론 뮤익의 작업을 유일하게 기록한 작가라고 한다.

사진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스틸 라이프>와 <치킨/맨> 두 다큐를 볼 수 있다.

음성은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꽤 시간 동안 집중하면서 보게 된다.

이런 것도 조각이라고 하는 건가?

궁금했던 작업과정을 보니 조금 이해되기도 한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영상 관람에 있지 싶었다.

전시실 밖의 교육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는.


전시실을 나오면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따로 "교육"이 있는 게 아니고 전시를 본 후 연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데

이게 진짜이지 싶다.

자신에게 질문해 보는 시간, 이 기획 너무 좋잖아!

나미애 교수의 추천작품이다.

5,6월 순차적으로 소개된다고 하니 다음 달에는 다른 작품일 수도 있겠고, 그것도 궁금하다.


추천 목록과 함께 그림책도 준비되어 있어 더 좋았다.

특히 아주 오래전 너무너무 좋았던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의 최혜진 작가가 각 키워드별로 그림책을 추천했다.

안 봐도 벌써 좋을 것 같은 예감.


<인생서점> 그림책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연약함과 취약함


>> 고독


>> 현실과 비현실


>> 일상의 깊이


>> 친숙한 낯섦


>> 삶의 무게


>> 응시: 바라보는 방식


>> 삶과 죽음


이 중에서 <바위와 소녀> 한 권을 읽었다.

론 뮤익의 <나뭇가지를 든 여인>과 표지 그림이 닮았다.

호기심에 들춰봤다가 아... 너무 슬퍼.


물론 나는 이 작품에서 슬픔보다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의 씩씩함을 생각했지만.


좀 더 시간이 허락했다면,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더 오래 곱씹어 읽고 싶었다.

삶의 무게보다는 본능에 충실해져야 해서 목록만 참고하고 도서관 찬스를 이용하기로.


<인생극장>에 손바닥시 써보기 양식도 제공되었는데

이 또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싶어 일단 가져만 왔다.

나태주 시인과 나민애 교수의 친필을 확인하니 떨렸다.

나도 꼭 써봐야지.


https://youtu.be/crH3uwTDE7M?si=6fhEKwG_E7g0aHcZ

도록은 구입하지 않았다.

MMCA 유튜브 채널에 있는 전시해설은 볼만하다.


론 뮤익의 작품을 보면 볼수록 다 어둡고 슬프다.

보면 볼수록 힘들기도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비극의 보편성"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서 얻는 위로, 그래서 이 전시가 인기가 있나 보다.


+



https://still-life.kr/#

<인생극장> 안내문에 있던 QR코드를 찍어봤더니 심오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나와 인생, 삶과 죽음, 고독 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다.

한번 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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