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 재벌 흑역사』 1, 2, 3권을 통해 숱하게 내가 토로한 것은 한국 사회가 재벌들의 만행에 너무 관대했다는 것이다. 법 집행이 관대하다보니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죄책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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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느끼게 되는 고통이 나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같이 울기 시작하는 아이나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괜히 즐거워지는 식의 감정의 전이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전이를 넘어 공감에 이르기 위해서는 ①상대방도 나와 동일한 인격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고, ②나를 상대방의 처지에 놓으려는 상상력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③상대방이 그 상황에서 느끼게 될 고통이 내가 그 처지에 있을 때 느끼게 될 고통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④나 역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그가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우연의 결과일 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공감이 발동되고 연민에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단계는 우리를 그들의 처지에 놓고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들이 단지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상상해내는 일이다. 나는 우연히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자임을 자각하고, 우연히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을 공감할 때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편부당성을 갖출 때 우리의 공감은 제도적 토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자리에 쿠르디를 놓든, 강남역에서 살해당한 20대 여성을 놓든, 아니면 구의역에서 생을 마감한 청년을 놓든 마찬가지다."
-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 칼럼 ‘공감의 법칙 배우고 투쟁하고 노력하라‘, <한겨레신문>, 2017- P292
이 처참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재벌들의 모든 악행에 대해 단호히 단죄할 수있는 굳건한 사회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재벌의 횡포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의 사명이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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