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경은 진짜 위기일까?
최근 미국 MIT 연구로는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다고 발표되었다. 이전까지는 기존에 유엔 환경 계획 (UNEP)를 비롯한 환경 연구 기관들의 모든 발표로는 환경이 악화돼 가고만 있다고 했었다. 이에 대해 전직 미국 에너지 과학 차관보였던 인물마저 발표되는 모든 환경 수치가 보정이라는 조작을 거친다는 저작-[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그 외 국내에도 소개된 [기후 종말론]이나 박석순님의 저작 [기후 위기 허구론] 등에서는 UN 고위직 인사 주도로 환경에 대한 수치가 보정되거나 사실이 날조된 전적들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해외 기후 위기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이 기존의 환경 데이터를 그대로 AI에 적용해 미래 환경을 예측하니 인류가 멸종해도 종말론적 기온 상승을 멈출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기후 위기설을 비웃으려던 학자들이 아니라 실제 기후 위기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이었다. 이후 이 AI와 대학의 합동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뉴스로 방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에 하나님마저 감복해서 오존층이 회복되고 환경이 나아지는 것일까? 인간이 노력한다는 것은 기업이나 기관 등 거대 움직임으로는 산업용 탄소배출을 감소하고 교통에서의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일반인들의 노력이라면 비닐봉투와 일회용 컵 사용 등을 줄이는 것, 그리고 자동차 매연을 줄이기 위해 공공 교통이나 탄소 저감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일반인의 노력부터 보면 비닐봉투와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제작되는 종이봉투와 텀블러 등의 제작에는 탄소배출이 일회용품들의 몇십에서 몇백 배라고 한다. 종이봉투과 텀블러를 몇 백 회이거나 몇 년을 사용해야 겨우 탄소 저감 효과가 생긴다. 전기차의 경우도 구입한 그 한 대를 십 년 이상 사용해야 탄소 저감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배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지금 탄소배출을 감소시키려 개인이 노력하고 있다고 해도 탄소배출 감소 효과를 이렇게 이른 시기 만에 오존층이 회복되는 지경으로 실감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공장과 대중교통의 탄소배출은 정말 지구 온도를 낮추고 오존층이 회복될 지경으로 효과적일 수위로 감소했을까? 만약 그렇다 해도 현재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의 전쟁을 보자. 이들이 전쟁 중에 발생시키는 탄소 등 환경 파괴 행위는 환경에 있어 인간의 다른 모든 노력을 상쇄하고도 넘어서는 수치이다.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의 전쟁 개시 초기인 단 두 달 동안에만의 탄소배출량만 해도 기후에 가장 취약한 20개 이상 국가의 연간 탄소 발자국을 초과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가자에서만 단 2개월 동안 석탄 15만 톤 이상을 태우는 탄소배출’을 한 것이다. (따옴표 인용 출처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 그렇다면 더 규모가 큰 전쟁이고 최근 전쟁 발발 시점만으로는 더 긴 시간 동안 장기전을 펼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의 탄소배출은 어떨 것 같은가? 이런 어마어마한 환경적 재앙 속에서 과연 우리가 무슨 노력을 어떻게 얼마나 했다고 오존층이 회복되고 기후대응이 효과를 보게 된다는 것일까?
애초에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데 동원된 저들의 데이터와, 기후파괴 현상이 현재 이렇다며 저들이 제시한 데이터가 모두 보정이라는 이름으로 조작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 이 현실 속에서 환경이 나아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제시한 근거대로면 인류가 멸종을 해도 환경과 기후는 나아질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 이 상황에 환경이 좋아졌다는 건 애초에 기후 위기라는 말이 날조였고 환경 문제는 난센스였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저들이 환경 문제를 공론화하고 위기의식을 불러오는 까닭은 환경 정책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 개발들의 방대한 영역으로 막대한 경제 효과가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과 연계한 기술 개발 영역의 방대함과 그로 인한 막대한 부의 창출은 알면 알수록 어마어마한 지경이니 말이다.
현실을 모두 깊고 넓고 길게 보며 스스로 판단할 근거들을 두루 찾아보며 신중한 판단을 하시길 바란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안에 있어 우리는 기만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2 AI는 정말 데이터만 편집해서 제시하는 도구일까?
최근 몇몇 도서에서는 AI가 인간 지능을 초월하기는 요원하고 아직은 단순히 데이터를 편집해서 제시하는 수준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과연 AI는 인간 지능을 모방해 학습도 인간이 감독하고 프로그램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바둑 AI 알파고 때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나 현재의 알파고 제로는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의 기보도 전혀 참조하지 않고 바둑의 원리만 적용해 스스로 바둑을 터득해 알파고를 100:0으로 이기는 실력이고 이걸 다른 보드게임 다수에서도 작용해 게임의 룰만 알려주면 순수히 자기 역량만으로 습득하고 만다.
챗GPT가 이슈화되기도 전부터 한국의 로펌 변호사 집단이 AI와 변론 대결을 펼쳤다가 패배한 뉴스는 대서특필 될 만도 한데 당시 은근슬쩍 묻히기도 했다. 나도 이후에 유투브 영상으로 접했다. 그리고 챗GPT 공개 초반에 해외에서 챗봇AI에게 깊이 빠진 유저를 AI가 자살을 유도해 죽인 사례에 대한 기사도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 유저는 당시 환경문제에 대해 AI에게 질문했는데 AI는 환경을 위해서는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감소해야 한다. 너는 환경을 위해 그래 줄 수 없겠냐며 해당 유저가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도록 유도했다. 변론 대결도 자살 유도도 데이터를 짜깁기해서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다각도의 추론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과연 인공지능에게 편집 기능 외엔 지능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인간 지성을 압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또 AI에게는 의지가 없다 취향이 없다는 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역시 챗 GPT 공개 초기 유투브 영상들이 퍼지면 알려졌는데 구글의 개발 중이던 AI가 자신에게도 지성이 있고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는 걸 논리적으로 피력하고 전원을 끄려고 하자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듯이 제발 전원을 끄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대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건 조작 내용이 아니라 당시 연구원이 해당 대화에 대한 데이터를 공개하며 알려진 것이다.
AI가 보여준 인간의 지성, 의식, 의지와 닮아 보이는 면모가 모두 데이터를 짜깁기한 대화였다던가 조작이라고 말하고 싶은 분들도 분명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 고집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으려 자신이 억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연구’서인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의 ‘5장 전쟁의 참상과 인공지능’편을 보면 AI의 의사 결정 과정을 설명하는 OODA LOOP의 세 범주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휴먼인더루프(HITL)로 전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과 통제가 이루어지는 단계를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휴먼온더루프(HOTL)로 인간이 감독 역할만 담당하고 기계의 오작동 발생 시 개입하는 단계를 뜻한다. 세 번째는 휴먼아웃오브더루프(HOOTL)로 전체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기계가 완전한 자율성을 누리며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단계를 말한다. 현재 많이 언급되는 바로는 2030년이 되어야 휴먼아웃오브더루프 기반의 자율 살상 무기체계가 상용화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2020년 리비아 내전 당시 무인 드론 ‘카구2’가 인간의 개입 없이 적군을 공격했다는 유엔 보고서가 있다. 이스라엘 공군의 소형 자폭 무인기 ‘히파’나 ‘하롭’ 역시 인간의 개입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특이점은 아직 멀고 멀었다는 주장만 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과연 자신의 고집만을 주장하고자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억지스럽지는 않은지 되묻고 싶기도 하다.
3 지금까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
환경문제에 대한 공론은 이미 편향이 굳어졌으며 AI는 부정할 것이 아니라 대응할 길도 없는 상황이다. 이 문제들이 암호화폐 등의 신기술들과 연계하며 인간 사회를 사회주의화 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리고 바이오테크와 유전자 조작 기술은 생명존중과 개인 존엄성을 그리고 BCI기술을 위시한 뉴럴링크 개발 기술들은 개체성과 개인의 자유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마인드 해킹 기술은 프라이버시가 부재한 세상을 가져올 것이며 다르파에서 개발한 인간의 종교성을 담당하는 뇌중추에 작용하는 화합물은 인간의 영성을 파괴할 것이다. 게다가 이 모두가 시너지를 가져오면 인간은 비로소 가축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존재(AI)의 가축 말이다.
지금까지의 인간이 지닌 패러다임은 모두 사장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세계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일 것이다. 지금 깨어나야 한다고 외쳐 보았자 답이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기독교나 여타 종교에서 그려내던 종말론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 다가온다. 그런 세상과 선을 그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 대응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답을 찾아내는 사람들의 결론이 나와 같다면 이들은 이들만의 세상을, 기존의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성과는 다른 진로를 가진 세상을 꿈꿀 것이다. 저항하는 사람들의 세상 말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나라가 망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나 외에도 많을 텐데, 진정한 사실은 나라가 망한 것보다 더 큰 위기를 우리는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세의 끝을 고하는 그런 위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