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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첫 태양
  • 합리적 낙관주의자
  • 수 바르마
  • 18,900원 (10%1,050)
  • 2025-05-28
  • : 600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본서는 심리치료서이다. 그것도 트라우마와 같은 집적되고 고도의 파괴 상태에서도 치유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배된 치밀한 치료서이다. 다만 고도, 집적, 파괴, 치밀의 어휘로 연상되는 무겁고 딱딱한 어조의 서술은 아니다. 상당히 살갑게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 수 바르마는 인도의 중산층 가정 그리고 대가족이기도 한 가정에서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의대를 다니다 미국으로 이민한 이민 가정 출신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풍부한 정신적 안정을 주는 여가 생활과 나눔을 실천하며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긍정적 영향력의 힘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분들이다. 저자는 그것이 역사와 문화의 힘에서도 지지되는 것이라고 인도의 카르마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산스끄리뜨어의 마이뜨리와 카루나가 결합한 언어의 번역어인 자비라는 말도 타인의 기쁨과 행복을 함께 기뻐하고 굳건히 지켜주는 도덕성(마이뜨리), 타인의 슬픔과 괴로움을 함께 아파하며 그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도덕성(카루나)를 보더라도 인도의 정신적 유산이 얼마나 인류에게 탁월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본서는 자신과 주위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정신적 영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저자의 삶과 정신의학자로서의 경험과 경력이 총체적으로 갈무리된 책이다. 저자는 미국 9.11 사태 이후 트라우마를 호소할 피해자들을 정신의학자로서 진료하고 관찰하며 트라우마를 이겨내거나 그로 인해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특징의 가장 커다란 요소를 저자는 합리적 낙관주의로 보았다. 삶을 살아가며 심각한 악의 속에서도 붕괴할 만한 악영향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낙관주의’ 그 중에서 ‘합리적 낙관주의’라고 한다. 합리적 낙관주의와 비현실적 낙관주의를 저자는 분리해서 보는데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모든 상황에서 다 잘 될 거라고만 긍정적인 시각만을 전부로 치부하는 낙관주의를 이야기한다. 이런 비현실적 낙관주의자들은 ‘타조 증후군’에 빠진다고 하는데 불편한 진실과 처치 곤란한 난관을 애써 부정하며 모든 일은 괜찮을 거라고 결국 다 잘될 거라고만 믿는 것이 타조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는 일종의 책임회피이며 자기 과신으로 진짜 심각한 사태에서는 사람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정신적 태도가 아닌가 싶다. 박한진님의 호오포노포노 저작 시리즈에서도 언급된 이야기는 시크릿류의 가르침에 깊이 빠져 그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던 인물이 자살한 이야기가 있고, 방송매체에서의 예로 들자면 과거에 아침 방송마다 출연해 모든 것은 지나간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관점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설파하던 여성 강사분이 자살한 이야기도 있다.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는 삶이 극악의 상황에 놓이면 결국 다른 낙관적인 세상을 꿈꾸며 생을 마감하게도 한다. 그래서인지 본서의 저자도 이런 비현실적인 수위의 낙관주의를 경계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도 긍정적으로 사태를 이겨나갈 방법을 찾아가는 합리적 낙관주의를 권하고 있다. 저자는 비관주의자의 특징 세 가지를 논하기도 하는데 첫째가 ‘개인화’로 나쁜 일들에 모두 자기 탓을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면화’로 한 가지 문제가 삶 전체를 흔들 거라고 보는 것을 말하며 셋째로는 ‘영속화’로 지금의 불행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 믿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개인화가 있기에 책임지려는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전면화가 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마지막 영속화는 인간은 결국 죽는데 영원한 게 어딨냐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어쨌건 스트레스 호르몬 다수의 영향으로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건강을 악화하고 암을 발생시켜며 인간관계와 업무 능력을 악화시키는 비관주의와는 정반대로 긍정적 영향들을 보여주는 게 합리적 낙관주의이다. 이런 합리적 낙관주의를 인생에서의 의미와 방향성을 갖게 하는 ‘목적’, 감정을 다스리고 그로부터 좋은 영향력을 받고 타자에게 미치게 하는 ‘감정 다루기’, 상황을 분석하고 답을 찾아가도록 하는 ‘문제해결’, 정신적 안정과 그 중추가 되는 ‘자부심’, 인간의 기본적 심리적 안정의 배경이 되는 ‘능숙함’, 과거와 미래로만 향하는 정신을 안정시키는 ‘현재성’, 나와 관계를 다잡아주는 ‘사랑’, 결국에는 나를 성장시키는 일관성의 힘인 ‘건강한 습관’ 이렇게 8가지 체계로 마음속에서 합리적 낙관주의를 건조할 수 있도록 안배된 책이다.

 

본서는 읽으면서 거듭 “이거구나!” 감탄이 이는 대목과 문장들이 잇따라 서술되어 있던 책으로 이 정도 수준의 감상과 실천 의지를 안겨주는 정신 건강 책은 에디스 시로의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 외에는 그다지 없지 않았나 싶다.

 

그 책과 본서 모두에서 킨츠기 도자기를 저자들이 언급하는데, 깨진 도자기를 나름의 자태로 복원해내는 일본의 복원된 도자기들이 주는 감상이 정신의학자들에게는 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깨진 도자기는 이어붙이고 금가루를 뿌려도 깨진 도자기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감탄하고 아름답다며 비호한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깨진 도자기일 뿐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깨져서 파편인 채로 널브러져 있을 이유도 없지 않나? 스스로가 또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회복되고 복원되어 나름의 형상으로 다시 선다면 굳이 그에게 “너는 그저 깨진 도자기일 뿐이다. 너는 그저 깨진 채 쓰레기 더미 속에 묻혀버려라”라고 누가 강제해야 옳다는 말인가? 살다 보면 누구나 깨어질 때가 있다. 그래도 그런 채 다들 살아간다. 누가 더 크게 깨어지고 누군 이쁘게 모만 났다고 굳이 나눌 필요가 무엇인가? 조금 깨어진 그대에게도 완전히 박살난 것 같은 그대에게도 누군가는 “살아가라”고 “다시 일어선 네가, 다시 복원된 네가 장하다고 아름답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누구도 그대가 왜 어떻게 깨어졌는지 모르면서, 어떤 참담한 심정으로 복원되어 가는 중인지 모르면서 비난과 욕설을 한다면 이건 알아둬야 할 것 같다. 당신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고 있고 일어설 것이라는 걸 말이다.

 

당신이라는 킨츠기 도자기를 복원하기 위해 주위에 누군가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면 당신을 복원하기 위한 많은 연습과 실패 그리고 다시 연습하는 길 가운데에서 본서를 경험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본서는 세상이 아무리 비열하고 악랄하고 야비하고 잔인하고 참혹해도 결국 그 모두를 감당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할 책이 아닌가 싶다. 아직 제대로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더더군다나 본서에서 저자가 전하는 항세상제를 맞아둬서 세상을 제대로 감당하면서도 이겨낼 저항력을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호락호락하게 있다가는 정신도 육체도 되돌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겪고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아프기만 하기는 싫다는 다짐이 들 때 읽어봐도 좋을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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