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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간비행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9,000원 (10%500)
  • 2018-06-29
  • : 23,534

내가 미쳤지, 바로 앞전에 프랑스 문학을 그렇게 깠으면서 연달아 읽었다니. 그나마 분량이 짧아서 다행이었지, 프랑스 문학을 자주 읽었다간 독서 슬럼프가 찾아올 것만 같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야간비행>은 자전소설까진 아니지만 비행 조종사였던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니 얼추 맞지 않을까나. 그래서 당연히 파일럿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늘, 그보다는 항공사의 관리소장이 주인공인 작품이어서 갸우뚱했다. 작품 얘기를 하기 전에, 생텍쥐페리는 나님이 칠색 팔색 하는 배경 묘사로 분량 잡아먹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서 맘에 든다. 사실 이이의 작품들은 전쟁 통에 썼다 보니 자연스레 ‘용건만 간단히‘ 스타일이 된 게 아닐까 한다.


항공우편회사의 관리소장인 리비에르는 전형적인 보스 기질의 상사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 같은 ‘보스‘가 아닌 ‘리더‘가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항공사처럼 위험천만한 분야와 직군에서는 엄격한 규율로 다스리는 게 맞다고 생각된다. 겉보기엔 냉정하고 융통성 없게 보여도 소장은 부하들과 일터의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했다. 단지 그런 애정을 드러내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순 없었기에 반강제적으로 냉혈한이 되었을 뿐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 말라는 격언처럼, 소장은 오직 부하들의 잘못과 실수만을 견책하였다. 결단코 사람 자체를 깎아내린다거나 무능함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소장의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직원들이, 상사가 어떻게 잘잘못들을 책임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거였다. 계속 그런 식이라면 모든 사건사고의 총책임을 진다 한들 지지는커녕 납득조차 받지 못할 것이었다. 자신만의 경영철학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안될 텐데, 왜 그렇게까지 악역을 자처하려는 건지 모르겠더라.


국제 우편기를 조종하는 야간 비행사들은 언제나 대 자연의 공포를 느낀다. 태풍과 눈보라, 소용돌이, 뇌우 등등 비행사의 순간적인 판단과 대응으로 모든 상황을 헤쳐나갈 따름이다. 하지만 소장은 FM대로 하지 않는 비행사들을 다그치기 바쁘다. 그도 속으로는 무사 귀환에 기뻐하지만, 자신의 사명은 부하들을 두려움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 뭐 믿고 기대하는 만큼 호통친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렇게 털끝 하나 인정해 주지 않으면 직원들이 제 성장과 실력 향상을 체감이나 할까 싶다.


또 다른 주인공인 조종사 파비앵은 운항 사고로 끝내 실종되고 만다. 그처럼 생텍쥐페리 역시 똑같은 결말을 맞았다고 전해진다. 마치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을 알고 미리 써둔 유언장 같은 작품이 아닌가. 비행기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남다른 건 알겠는데, 한밤중에 국경을 넘어서까지 위험한 비행을 꼭 해야만 했을까. 운행하는 동안 무서운 날씨에 벌벌 떨거나,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에 삼켜지거나 둘 중 하나뿐인 그 일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을까. 듣자 하니 기차나 배와의 속도 경쟁을 위해 야간에도 비행을 했다는데, 기름 한 방울 값도 안되는 우편들을 매일 그렇게 목숨 걸면서까지 갖다주고 올 일인가. 여하간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서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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