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 멍멍멍멍멍!
반유행열반인 2025/06/1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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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과 생각
- 정용준
- 15,120원 (10%↓
840) - 2025-02-20
: 3,918
-20250615 정용준.
책을 읽다 마는 건 찜찜함을 넘어 지는 기분이라서, 아이 좀 더 미워지면 어때, 하고 4월까지 읽다 만 소설가의 산문집을 꺼낸 것이다. 그렇게나 뭘 할지 몰랐던 것도 같다. 김금희 장편소설 읽고 있는데 이상하게 잘 안 넘어가네...하면서도 125쪽까지 읽은 걸 보니 내가 안 넘어간게 아니라 서사 진행이 좀 더딘 거 아닐까, 이제는 작가 선생님들에 대한 내 사랑을 의심해 보는 것이다.
소설가 산문 안 봐, 하고 김금희의 ‘식물적 낙관’은 영영 놓았었다. 정용준 산문집도 아….진짜 또 소설가 산문집 보면 개다, 하고 본 게 필립로스의 산문집 ‘사실들’이어서 나는 진짜 개가 되었다. 멍멍. 그런데 다시 읽기 시작한 정용준 산문집에 바로 그 필립로스의 ‘사실들’이 나오고, 이청준이랑, 아니 에르노랑, 밀란 쿤데라랑, 조지 오웰이랑, 나도 읽어본 작가들 나올 땐 조금 관심있게 읽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체로는 아...분량 채우려고 문장 어거지로 늘려 놓은 걸 읽는 기분이야… 소설은 안 이랬잖아요...저한테 왜 이러세요...그러는 저는 너한테 왜 이럴까요…
서울 나들이 온 인천 이웃을 한 주에 두 번이나 만나 수다를 떨고 무교들 주제에 성경 이야기를 나누고 부모 욕을 하고 뭐 그랬다. 그런게 재미있는 나는 봉천동 마릴린 맨슨이다! 뭔 소리야… 예쁜 여자사람과 이야기하는 건 즐겁지만 또 힘든 일인가 집 오는데 엘레베이터 거울보니 막 눈이 퀭 하고 더 조그매지고 시들시들해진 것이다. 저녁밥 어떻게 할 거냐는 곁의 사람 문자랑 전화도 집 와서 저녁밥 다 먹고 나서 봐서 그 초조함을 느끼며 괜히 미안하기도 한데, 아니 주말에 외출도 안 하는 집순이 인생 그것이 사람이냐! 싶기도 하면서도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사슬 같은 걸 스스로 어디에 걸고 있나 보다.
그러고 멍때리다 아이참 이놈의 책 읽어 치워버려야지, 하고 마저 읽었다. 여기서 또 영업당해서 올가 토르추크? 하여간에 ‘다정한 서술자’란 책을 또 막 사 말아 이러다가 노벨상작가+그 작가의 산문집이면 너는 또 수렁을 스스로 파는 것이다...게다가 나 알라딘이랑 아직 담판도 못짓고 적립금은 소멸되고 예치금은 줬다 뺏어 가고 주문은 취소 되었고 난리란 말이다… 이건 정말 책 사지 말라는 계시 같은 것…
정용준 소설은 최소 네 권(한 편짜리 단편만 묶은 그래픽 노블?이랑 여럿이 앤솔로지로 낸 거도 합치면 몇 개 더) 봤고, 안 읽은 소설집, 장편소설도 아직 네 권이나 가지고 있다. 아마 소설은 언젠가 하나씩 읽어보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산문집으론 다신 만나지 말아요.
+밑줄 긋기
-고유함은 새롭다. 다른 것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 있지 않고, 저 멀리 앞서 나가지도 않고, 티 나게 다른 옷을 입지 않아도, 고유한 것은 그 자체로 새롭다. 무엇과도 같지 않기에. 이전에 자신과 같은 것이 하나도 있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고유함은 새롭고 그것은 언제나 새것이다. 그러니까 지문 같은 것. 목소리 같은 것. 대단히 고유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대충 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유일하다. 하나밖에 없다.
-예쁜 접시에 잘 구운 두부를 가지런히 올리고 식탁에 앉아 잠시 두부와 간장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이걸 먹으면 나는 좋아질 거야. 이걸 먹는 동안 나는 괜찮아질 거야. 두부는 원래 그런 음식이니까. 열받은 사람의 열을 빼주고 죄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고 슬픈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따뜻하게 해주니까.’
-좋은 일만 생기면 좋겠습니다. 아니, 좋은 일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나쁜 일만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삶은 이런 마음의 소원을 늘 배반한 채 우리를 어둠과 슬픔으로 가득한 이상한 밤으로 끌고 갑니다. 큰 사건도 힘들지만 작은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우리의 마음과 몸은 무너지거나 금이 갈 수가 있습니다.
-멋있는 건 그런 것이다. 잘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것. 진창에 빠져도, 뒷모습이 엉망이 되어도, 신발이 진흙과 오물로 뒤범벅돼도 그래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혹자들이 볼 땐 발악하는 것처럼 보여도, 안 되는 일을 못하는 일을 발버둥 치며 애쓰는 것처럼 보여도. 어쨌든 계속하는 것.
-아직도 난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좋다. 이 세계가 좁아지고 얇아지고 마침내 투명해지더라도 기쁠 것 같다. 그 안에 사는 동식물들이 작고 작아져 색채도 부피도 무게도 개성까지 잃고 마침내 뼈만 남은 까만 막대기 같은 글자 하나로 남더라도 나는 그 행간에 놓여 있는 내 운명이 좋다. 누군가 읽어줄 문맥 속에 숨어 있는 내 운명이 좋다. 누군가는 소리 내 읽어줄 문장 속에 있다는 것이 좋다. 때론 그저 문장이 되었다는 것이 좋다.
-구원? 웃기는 소리. 모든 것은 끝이 있어. 괜히 기대했다간 비참해지기만 할 거야. 영원한 건 없어.
영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한순간. 하루. 단 한 번이라도. 어떤 경험은, 어떤 감정은, 어떤 사랑은, 그 사람을 온전히 살게 해. 적어도 한 시절을, 적어도 하루를, 1분 1초를, 짧지만 그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게 되는 거야. 그것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해. 그것은 그렇게 단순하고 작은 것이 아니야. 나는 그 가능성을, 그 반짝이는 한순간을 외면할 수 없어…….
-“망했다고? 내가 간절히 원한 것이 당신들이 망했다고 말한 바로 그것인데?”
-지식의 앎이 아니라 감각의 앎이 필요하다. 아무리 경고해도 손으로 만져봐야만 뜨거운 것을 아는 생물. 겪기 전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생물. 우리에겐 예상과 예감을 현실과 실제로 느낄 생생함이 필요하다. 감지하는, 감지되는, 감각의 지식. 실제로 행동이 멈추고 새로운 행위를 만들어내는 진짜 앎이 필요한 것이다.
-얼음은 돌이 아니다. 얼음은 무의미가 아니다. 얼음은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얼음은 잠이고 꿈이고 영원이다. 언제나 미래면서 지금 당장 물이 될 수 있는 현실이다. 얼음은 다시 물이 되고 땅에 스며들고 공기가 되고 바람을 일으키는 자연의 씨앗이다. 얼음은 생물들의 몸속에 흡수되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생명의 시작점이다. 얼음이 녹아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로 사라지는 것이다. 의미의 무한한 가능성이 무의미함으로 증발하는 것이다. 보석보다 귀하고 빛나는 물질이 어둠과 허무 속으로 스러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아. 우리는 얼음을 헛되이 녹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고통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개인적으로 발생하며 감각된다. 다시 말해 그런 깨달음과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해와 앎은 고통 앞에서 하나도 쓸모가 없다.
-정체불명의 거룩한 진리가 아닌 내 실존으로 살고 싶은 단순한 마음. 그게 그리 나쁜 걸까.
-어찌됐든 인간은 패배하게 되고 때론 실패하며 절망을 맛보는 날이 오게 된다. 그것은 내 힘과 노력으로 방어할 수도 있지만, 느닷없이 일어나는 사건처럼 반드시 어떤 날 어떤 순간에 각각의 개인에게 발생하고야 만다. 어쩌면 그것은 서사의 영원한 테마가 아닐까. 나아가 서사가 투사하고 있는 인간 삶의 테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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