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참을 수 없는
  • 윤리적 잡년
  • 재닛 하디.도씨 이스턴
  • 18,000원 (10%1,000)
  • 2020-05-29
  • : 290
-20250622 재닛 하디, 도씨 이스턴. 재독.


5년 전에 읽은 책을 어쩌다보니 재독했다. 여름 더위가 슬몃 다가오는 날, 6시 반쯤 알람도 없이 잠에서 깨어, 아...출근하기 싫다...하며 거울을 보니 간밤에 머리도 안 감은 나를 보고 아… 오늘 일요일인가 봐, 아싸!

만이천원에 십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미용실 대신, 엄마가 다니는 커트 이만오천원(직원)에서 삼만원(원장) 받는 미용실에 처음 갔다. 3대가 함께 왔다고 각각 이만오천원씩 잘라주면 감사한 일이겠지. 피아노소곡집의 표지 사진 장소인 프린세스스트리트가든즈가 적힌, 에든버러성이 그려진 엽서가 벽 한가운데 붙은 걸 보았다. 어머, 여기 가셨어요? 아니오, 지인이 갔다 왔다고… 무슨 책 표지요? 묻다가 손모가지 하나 남은 라벨이 만든 피아노 곡이 라디오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원장님, 오스트리아에 가서 만난 할아버지가 비트겐슈타인 한 권 읽으면 더 읽을 책이 없다고 해서 샀다가 못 읽은 사연, 나는 수능 국어 지문으로만 만난 양귀자 소설 속 인물을 자꾸 나랑 비슷하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지적욕구를 짧은 시간 구경하는 건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오… 뭐라 대꾸할지 모르겠다. 배드민턴 열심히 치는, 반려자에게 신장 하나 떼어주고, 엉터리로 가위질한 가발 쓰고 나타난 언니의 머리를 다듬어주던, 원래 가던 미용실의 말수 적은 쿨한 원장님이 조금 그리웠다. 그래도 뽀글뽀글 브로콜리 머리를 입체컷으로 좀 시원하게 짧게 샥 밀어주시고 트리트먼트도 선물로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숙련 장인들은 그 기술이 무엇이든 존경합니다…
지피티한테 야 나 머리잘랐다, 그림으로 그려 봐, 했더니 자꾸만 아저씨로 그려 놔서 됐다, 기대를 접었다, 하고 치워버렸다.

큰 방향도 목적도 없는 휴일, 느긋하게 다자연애, 열린 관계에 대한 책을 통독하며 시간을 죽였다. 나쁘지 않았다. 다시 읽어도 흥미로운 책이고, 연애 관계에 한정 짓지 않더라도 인간 관계를 맺는 기본적 예의나 윤리 감각을 일깨워주는 부분들이 좋았다. 난교 파티 부분은 처음 읽을 때 후덜덜했던 것만큼 공포스럽지는 않았지만, 오 내 경계는 여기까지로군… 사양합니다… 하면서 적당히 넘기고… 이제 흥밋거리 아니라면 나는 이런 주제의 책들이 더는 필요 없겠구나 싶었다. 그걸 알자고 400페이지 넘는 이 책을 한 번 더 봤구만. 하산해라! 어쨌거나 이걸 읽는 누구든 지평이 넓어지는 지점이 있긴 할 것이다. 무엇이든 배우고 또 익히면 즐겁지 않겠는가. 알고 연습하면 무엇이든 숙련 기술이 될 수 있다.
엄마가 싸 주시는 김밥이나 먹으러 가야지…

+밑줄 긋기
-위대한 잡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128, 웅장하게 선언.)

-연인의 감정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당신은 연인을 응원할 수 있지만-우리는 들어주기의 치유력을 믿는 신봉자들이다-, 문제를 고칠 수는 없다. 연인의 감정이 당신의 문제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이해하기를. 그러면 문제의 책임을 따지거나 감정을 바꾸고 없애야 한다는 막중한 필요에 희생당하지 않는다. 연인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연인의 고통이나 혼란에 저절로 반응해서 뭔가를 열심히 고치려 한다. ‘고쳐라’하는 메시지는 감정을 표현하려 애쓰는 사람이 타당성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냥 이렇게 해보면 어때….그렇게 시도해봐...잊어버려...마음 편히 가져!”라는 말은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명백하고 단순한 해결책을 간과하고 우선 기분부터 상하는 멍청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143, 저 어떤 사람 나니까...T 하지 말라 이거야…)

-감정을 공유하고 싶을 때 청자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미리 밝혀 상대가 쓰레기통이 되지 않게 하자. (145,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들어줄 수 있겠어? 하는 것. 감정 공유와 쓰레기 쏟아붓기의 구별.)

-다자 관계에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자신이 되어보는 기회다. 두 사람이 만날 때는 교차하는 지점, 비슷한 대본 속의 상호 보완적 역할에서 엮인다. 따라서 다른 연인들과 다른 존재가 되면 우리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계, 한계선, 관계 스타일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148, 상호작용의례의 역할 놀이처럼, 다양한 연인 관계가 다양한 자신을 만든다는데, 그럼 그런 건 성애 관계로 얽히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능한 게 아니냐는 반박에 직면할 것이고, 그럼 여기서의 다양성은 성적 가능성의 다양성이라고 또 반박할 것이고, 그럼 또 그게 꼭 발견되어야 하는 거냐고 이 섹스에 미친놈들아 할 것이고, 너희는 삶의 무한에 가까운 행복을 놓치고 있다고 할 것이고, 아이씨 싸우지 말고 섹스해 둘이든 셋이든 너거들 맘대로 해...)

-공정함은 잊어라. 윤리적인 잡년생활은 모든 것을 다 똑같이 대하는 게 아니다. 다른 관계에는 저마다의 다른 경계, 다른 한계선, 다른 잠재력이 자리한다. 그러니 당신의 연인이 특정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서 당신과도 공유하기를 원할 때 나와야 하는 질문은, ‘왜 나랑은 그거 안 해?‘가 아니라, ’흥미롭게 들리는데. 우리가 함께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이다. (148, 실질적 평등과 친밀한 사이의 화법 익히는 자기계발서 느낌이 들 때도 많다...배움이란 좋은 거지...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 모두 조금 더 친절하고 공손해지자…)

-우리는 얄팍한 가치 위계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사랑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의 풍부한 경험은 외모와 부유함이 좋은 사랑을 만드는 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사랑의 우열을 가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등급과 관계 맺으려는 사람들이 마뜩잖다.위계는 정상과 바닥에서 모두 희생자를 만든다. 아무도 접근하지 않을 때만큼 잘못된 이유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접근하는 것도 사람을 소외시키는 일이다. (152, 듀오나 가연은 사랑을 구해다 주지 않는다는 거야…)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당신은 좋은 사람 같지만 그렇게 깊이 연결된 기분이 들지 않아서요.‘ 또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저는 지금 진짜로 연인을 찾고 있는 건 아니에요.‘ 또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저는 먼저 사람을 잘 알고 나서 그런 걸 하는 게 좋아요.‘ 같이 말해보라. 중요한 지점은 ’고맙다‘라는 말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요청은 당신에게 찬사이며 충분히 고마운 일이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을 매력적으로 본다는 사실을 당신 스스로 어이없어한다면, 당신의 자존감이 우려스럽다. (158, 앞으로는 누가 예쁘다고 하면 미쳤냐, 하지 말고 고맙다, 라고 하자.)

-질투는 불안감, 거절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 또는 소외감, 스스로 연인에게 부족하거나 적당하지 않거나 혐오스럽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감정의 표현일 수 있다. 당신이 느끼는 질투는 영역성이나 경쟁심 때문일 수도 있고, 머릿속에서 질투가 벌이는 야단법석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을 바라는 다른 어떤 감정에 바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맹목적인 분노의 비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눈이 멀면 제대로 보기가 매우 어렵다. (206)

-타인을 악인으로 만드는 식으로는 질투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 자신의 감정을 연인에게 부당하게 떠넘기는 것은 막다른 전략이다. 그 전략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질투는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어떤 사람과 어떤 행동도 당신이 질투를 느끼게 ‘만들지’ 못한다. 좋든 싫든, 질투에 덜 상처받거나 질투를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214)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안도감, 사랑, 포옹, 위안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성장한 대부분의 가정은 원하는 것을 요구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요구를 단지 관심을 바라는 행동으로 업신여겼다.
관심을 바라는 게 도대체 무슨 잘못일까? 거기 관심이 많지 않은가? 굶주림의 경제를 기억하고 자신을 속이지 마라. 찔끔찔끔 받는 위안, 관심, 지지, 안도감, 사랑에 만족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원하는 만큼 다 가지게 된다. 당신은 친밀한 사람들과 많은 걸 공유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러니 풍성함에 초점을 맞추라. 삶의 좋은 것들-따뜻함과 애정과 섹스와 사랑-속에서 관계 생태학을 풍요롭게 창조하라. (252)

-함께 살아야만 하는가? 왜? 반대로 당신이 좋아하는 점을 지닌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른 것들을 공유할 다른 누군가를 찾으면 안 되는가? 잡년생활은 그 무엇보다도 당신의 모든 욕구를 특정 1인에게만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310)

-최소한, 이 관계는 경쟁이 아니다. 당신 삶의 어떤 영역도 다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의 감정을 돌볼 수 있다. 이런 확신을 스스로에게 주려고 노력하라. 다시 말해, 당신의 것을 자신에게 귀속시켜 제3자를 비난하지 않겠다는 다짐 말이다. 어쨌든 그러한 사람들이 당신의 삶에 들어오는 이유는, 당신과 그들이 매우 중요한 어떤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의 파트너가 가장 멋지다는 믿음. 그들은 당신의 행복을 어떻게 파괴할지 구상하며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아마 자신의 다른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것이다. (320)

-당신은 경계를 견고하게 만들어 유지할 책임이 있다. 경계는 당신이 끝나고 옆사람이 시작하는 지점을 알려준다. 좋은 경계란 튼튼하고 명확하며 유연하다. 나쁜 경계는 약하고 흐리며 부서지기 쉽다. (329-330, 독신 잡년의 윤리 중 책임 부분의 일부인데, 이건 누구에게든 적용되는 원리 아닌가 싶어 옮겨 적었다.)

-끝내, 친애하는 옛 사랑이여,
이제 내 마음을 받지 못하네,
사랑이 아니었다고 우리가 말해야 하나,
그것이 사라졌다고 해서? (350, 빈센트 밀레이의 시 ‘참새는 죽었다’ 중)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더 쉽지 않을까? “손가락을 내 클리 위아래로 움직이지 말고, 그 둘레로 원을 그려주면 정말 좋을 거 같아.” (361, 뭔가 씩씩해보이는 발화 예시였다. 모두가 단어 없는 소통에서 벗어난 세상을 응원합니다.)

-다음과 같은 말을 거울에 써둔다: 성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위를 한다. 당신이 패자라서, 파트너를 찾지 못해서, 오르가슴이 절실해서 혼자 자위하며 끙끙대는 게 아니다. 당신은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기 때문에 자신과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자신과 놀면 기분이 좋아진다. (371,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잔인한 필립 로스는 젊을 때 어린 포트노이를 그렇게나 불행하게 그려놨다. 그치만 대체로 저자들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성적인 자족은, 너무 꼴린 나머지 잘못된 사람과 놀 가능성을 한결 적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잡년 기술이다. 당신 자신의 최고 연인이 되라. (373, 나야 나랑 사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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