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말이 공기를 울리면, 멈춰있던 톱니바퀴가 움직이듯 심장이 반응한다. 영화 <동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심장에 박히던 말은 한 단어다. "시!" 몇 년이 지나 어떤 맥락이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사람 이름은 잊었어도 시인의 가슴에 있다는 눈동자와 입술처럼 각인된 기억이 있다.
시를 짓는다는 건 불필요한 언어의 더께를 훌훌 털고 꼭 필요한 말로 출렁이는 리듬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시인은 촌철살인의 언어, 화룡점정의 언어만을 남기기 위해 끊임없이 언어를 조각한다. 고갱이만 남은 언어의 조합은 마주한 심장의 혈 자리를 정확하게 누른다. 군더더기 없는 시의 매력이다.
시를 떠올리며 소설 『맡겨진 소녀』를 읽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특성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사소한 행동이나 몇 문장으로 정체성은 충분히 묘사되기 때문이다. 툭툭 내뱉는 말에 캐릭터의 인성이 뚝뚝 떨어진다. 놀라운 점은 90쪽의 분량만으로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거다.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말'이다. 불필요한 말과 결정적인 말, 진심이 담긴 말과 거짓으로 둘러대는 말, 애정이 담긴 거짓말과 상처를 주는 말이 등장한다. 여러 인물이 하는 말을 통해 독자는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함을 깨닫는다.
주인공 소녀는 말이 거의 없다. 출산을 앞둔 엄마로 인해 먼 친척의 노부부에게 잠시 맡겨진 소녀는 새로운 공간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무심한 아빠나 지친 엄마와는 대조적으로 아이를 따뜻하게 대한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대부분 대답으로 구성된 아이의 말은 매번 진실이다. 그런 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유일하게 거짓을 말한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이러니한 건 그 말이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임을 깨달을 만큼 소녀가 성장했음을 알려주는 말이라는 점이다.
아이의 시선은 정직하다. 담담한 독백처럼 마음을 고스란히 투영하며 서사를 이끈다. 화려한 장식도 없고 그럴싸하게 둘러대는 말의 외투도 없건만 느끼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고. 소녀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는 진짜 마음에 대하여 언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가족, 빚, 그런 거 다 한심한 핑계로 들리겠지만 저한테는 그게 현실이고 불가피한 이유들이예요." 현실에 얽매인 여자는 절규한다. 남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다는 말을 들려준다.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라고, 니 마음 빼곤 다 가짜고 핑계라고." "꽝 나올까 봐 복권 안 긁는 바보가 어딨어요?" 남자는 여자에게 진짜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진짜 이유, 진짜 마음. 여러 상황에서 주변에 했던 말들을 돌아본다. 통배추의 겉잎을 하나하나 벗겨내듯 가짜로 덮인 마음을 떼어내고 고갱이만을 남긴다. 마트료시카에 겹겹이 감추어둔 속마음을 들킨 듯 움찔한다.
소녀의 속마음은 대조적인 감각으로 드러난다. 친척 집 근처 우물에서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맛'을 느낀다. 손을 잡아주는 아저씨를 향해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을 느낀다.
작가는 또 하나의 주제를 '가족'으로 제시하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소녀는 DNA로 연결된 진짜 가족에게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따스함을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통해 감각한다.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다 오줌을 싼 아이에게 매트리스가 낡아서 습기가 찼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마음으로부터.
아빠로 시작해서 아빠로 끝나는 소설에서 시작과 끝의 온도 차이는 크다. 친척에게 소녀를 맡기는 친 아빠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아이를 두고 가버린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아이는 더 이상 수동적이고 말이 없던 소녀가 아니다. '집에서의 삶과 여기에서의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두던' 아이가 아니다.
능동적으로 성장한 아이는 떠나는 노부부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러 달려간다. 아저씨는 아이를 꼭 끌어안는다. 아이의 눈에 아저씨의 어깨 너머로 다가오는 친 아빠가 들어온다. 그렇게나 말이 없던 아이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온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처음의 '아빠'와 마지막의 '아빠'는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듯 보인다. 전자는 친 '아빠'가 다가온다는 말을 아저씨에게 하는 것이고, 후자는 진정한 의미의 '아빠'로 마음에 자리 잡은 아저씨를 부르는 말이라고. 노랑과 검정을 동시에 보는 듯 선명한 대비 효과다.
열린 결말이지만 진짜 가족을 만난 듯한 소녀의 삶에는 희망이 예고된다.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된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소녀는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무언가를 심장에 품는다.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던 아이가 여름의 나날을 회상하면서 떠올린 태양처럼 뭉클하면서 뜨거운 감정의 씨앗이다.
소녀가 품은 씨앗은 삶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리라. 씨앗에 물을 줄 감성이 생겼고 진정한 가족이 따스하게 아이를 둘러쌀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말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말이 정확하다면 말이다. "아빠."라고 한 소녀의 마지막 말처럼 서사를 담은 두 글자는 묵직하게 진심을 전한다.
진실은 짧은 말에도 충분히 담기며 씨앗처럼 단단하다. 그런 말을 찾고 싶어진다. 불필요한 말은 과감하게 떨구고 입 다물기 딱 좋은 순간을 포착하여 행간에 진심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 물고기처럼 시어를 낚아 올려 나만의 고유한 물결을 만들고 싶다.
불필요한 변명과 이유를 다 털어내고 진짜 마음을 찾아가는 것. 지금 내가 할 일이다. 심장을 손에 쥐고 발이 데려가는 곳으로 소녀가 달려간 것처럼 그런 마음은 본능적으로 나를 멋진 삶의 길로 안내하리라 믿는다. 말과 글이 시가 될 때 삶도 시처럼 흐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