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벌써 몇 년 전의 일인데, <상실>과 <푸른밤>을 읽고 새삼스레 존 디디온에 대해 궁금해져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이 작가에 대해서는 도미니크 던과 도미니크 던(아빠와 딸인데, 이름 철자가 살짝 다르다)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에도 대강 살펴본 바 있었으니, 디디온의 남편이 도미니크의 형제(?) 겸 도미니크의 삼촌(?)인 존 그레고리 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하루는 리터러리허브라는 미국 웹진에서 만든 '존 디디온 에코백'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이 작가의 유명한 사진을 인쇄한 제품인데, 진짜로 딱 보자마자 소장 욕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건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해당 웹진을 구독하고 기부금 낸 회원에게만 제공하는 한정 사은품이라니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그런데 리터러리허브의 이런 사은품 정책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진 외부인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당 웹진의 Q&A 중에는 아예 '디디온 에코백은 어디서 구매하나요?'라는 페이지가 있고, 심지어 거기 나온 내용 중에는 '에코백을 판매하지 않는다면 디디온에게 이메일로 항의하겠다'는 반협박성 발언에 '맘대로 하삼'이라며 여유 부린 답변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디디온 에코백은 미국의 작가며 지망생 사이에서도 꽤나 인기 높은 '레어템'이었고, 급기야 이 물건을 사기 행각에 동원한 사례까지 있었던 듯하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니 대강 이니셜로만 지칭하자면, 리터러리허브에 기부금을 내고 디디온 에코백을 수령한 여성 작가 A는 어느 날 이 물건을 부러워하는 여성 작가 B의 트윗을 접하게 되었다.


B는 오래 전부터 지역 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조만간 대형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저서를 간행할 예정이라 해서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직접 만나 봤던 사이까지는 아니었지만, A는 순수한 호의로 자기가 쓰던 디디온 에코백을 선뜻 양도했다. 이에 B는 매우 감격한 듯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길게 보냈고, 그렇게 얻은 디디온 에코백을 나중에 트윗으로 인증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B는 작가도, 지망생도, 활동가도 아닌 사기꾼에 불과했다. 훗날 언론의 추적 끝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B는 여러 가지 가명을 이용해서 미국 각지의 지역 문단에 침투했다. 여러 행사를 통해 익힌 안면으로 작가 협회의 간부라는 감투를 얻으면, 지역 유지며 기관으로부터 뜯어낸 각종 기금을 횡령해서 줄행랑치는 수법을 반복해서 써먹었다.


훗날 진상을 알게 된 A는 애초에 B가 디디온 에코백을 갖고 싶다고 트윗을 올린 것 역시 처음부터 사기 행각에 이용할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며 씁쓸한 심경을 표현했다. 돈이 있어도 아무나 구할 수 없는 '레어템'으로서의 특징 때문에 디디온 에코백 자체가 문단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한 작가라는 일종의 신분증이나 보증서로 활용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살펴보면 문제의 에코백에는 또 하나 씁쓸해 보이는 면모가 없지 않으니, 그건 바로 존 디디온의 사진 밖 상황이다.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출간 직후인 1968년에 <타임>의 의뢰로 줄리언 와서가 할리우드의 자택에 와서 촬영한 그 사진은 작가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그곳에는 남편 존 그레고리 던과 딸 퀸타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담배의 유해성이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시절이니 실내 흡연도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디디온의 모습만 확대한 사진이 아닌 거실 전체의 모습을 본 '프로불편러'라면 간접 흡연에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 만하겠다. 심지어 같은 날 촬영한 다른 사진에는 여전히 담배를 들고 있는 엄마가 태평하게 딸을 무릎에 앉힌 모습도 나왔으니 말이다.


너무 과민하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지만, 아차 하는 순간 무개념에 맘충에 한남이 되기 십상인 세상이다 보니 혹시나 싶어 미리 걱정해 본 셈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촬영 내내 담배를 놓지 못했을 만큼 골초였던 디디온이 그 사진 밖에서 간접 흡연의 피해를 당했었을 가족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아픔을 되새기며 여생을 보냈다는 점이 가장 씁쓸해 보이지만...



[*] 지난번에 알라딘에서 5.18 기념으로 에코백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보니, 새삼스레 이걸 이렇게 기념하는 게 온당하기는 한 건가 싶은 의문이 들어서 갸웃갸웃 생각하다가, 문득 오래 전에 쓰다 만 글이 생각나기에 주섬주섬 기억을 더듬어서 끄적끄적해 본다.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쓴 것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쯤 써 놓았으니 제발 알라딘에서 '디디온 에코백 알라딘 에디션' 따위를 만드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뜻도 없지 않다.(분명히 하지 말라고 했다! 퐁력, 퐁력 쓸까!)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이제는 너무 흔하다 보니 에코백 자체가 처치 곤란한 또 하나의 쓰레기이자 '안티에코백'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왕 에코백을 만들 거면 지난번 '모래고양이 에코백'처럼 귀염뽀짝 다가와 옳지옳지한 물건을 아예 고품질 고가격으로 제작해서 정말 한 번 사면 평생 쓸 만한 '레어템'으로 만들던가 하지, 지금처럼 '싼 게 비지떡' 수준의 물건에다가 이것저것 기념한다고 대충 인쇄 뱍아서 판매하면 솔직히 좀 양심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양심적인 알라딘'이야 애초부터 '깨끗한 이재명'이나 '정직한 김문수'나 '온화한 이준석'에 버금가는 모순 어법 아니냐고 지적하면 솔직히 대답할 말까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마는...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