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견제세력으로? 어떤 맞불로? 감지하기 힘들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도처에 편재하는 그 힘에 맞서려면 어떤 전투를 벌여야 할까? 싹을 틔우기도 전에 바로 질식당하고 소멸해버리지 않으려면 어떤 싸움을 걸어야 할까? 어떤 틈새를 파고들고 어떻게 우회할까? 어떻게 넘어설까? 어떤 식으로 훌쩍 도약해야 지구 전체를 쓰레기로 뒤덮어버린 그 시스템을 넘어설까?
그것은 우리 인간의 무한한 고독과 무한한 취약성을, 취약하지만 삶을 이어가려는 끈질긴 고집을, 분별없이 삶에 집착하는 고집을 보여준다.
〈걷는 사람〉은 꼼짝 못하게 굳어 있는 동시에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이 마치 넘실대는 순간 추위에 얼어버린 바다의 파도 같다.
그는 고독하다, 절대적으로 고독하다. 도무지 속을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닫혀 있으며, 자기 안에 깊이 틀어박혀 있어 가 닿을 수가 없다.
그는 앙상하지만 무겁다. 아마도 홀로코스트와 부헨발트 수용소의 희생자들에 대한 앎으로 무겁다. 그는 늙었고, 시련의 흔적이 역력하다. 삶의 전장에서 무수한 타격을 입고 돌아와 기진맥진해 있다.
그는 세상의 무게에 등이 휘었다. 어쩌면 세상을 그렇게 만든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무한히 취약하다. 한 포기 풀처럼, 잔가지처럼 취약하다. 그토록 무력하고, 그토록 보잘것없다.
그는 소멸 직전이다. 어쩌면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걷고, 걷고, 걷고, 걷고, 걷고, 계속 걷고, 용감하게 계속 걸으며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성큼성큼 걷기를 계속하고, 주춤거리지 않고, 잔유물들의 세계 속에서 쉬지 않고 걷는다. 무의미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고독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예고된 온갖 종말론에도 불구하고 계속 걷는다. 걷기를 멈춘다는 건 곧 죽음을 뜻하므로. 바람과 패배에 맞서 계속 걷는다. 자코메티처럼, 나처럼, 우리처럼.
라틴어로 레젠다legenda인 전설은 읽혀야 하는 것, 따라서 기억해야 하는 것, 우리가 금박을 입히거나 검게 칠해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으로 만드는 진실이다.
자코메티에게 예술은 모든 화려함과 풍요로움에 맞서 저항하는 것, 심지어 전적이고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눈부신 황금빛으로 현실을 장식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예술은 젊은 사람들이 말하듯 너무 아름다운 아름다움인 비욘세와 제이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완벽하게 상반되는 형태의 아름다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