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 "시적 지혜"는 장엄한 시인이 동시에 장엄한 형이상학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감각으로부터 정신을 추상해내는 반면 시적 능력은 정신 전체를 감각속에 잠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보편 위로 날아가는 반
‘면 시적 능력은 개별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P675
[873] 트로이 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호메로스가 그의 서사시라는- P695
위대한 흔적을 남겨놓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난관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특정의 인물이 아니라 관념 속의 시인이었다고 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쪽으로는 그리도많은 큰 난관들이 있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그 서사시들이 남아서전해진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하면 중간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어보인다. 즉 호메로스가 그리스의 역사를 노래로 말한 한 그는 그리스인들의 영웅에 대한 관념 또는 그 시적 인격체였다는 것이다.- P696
[1088] 로마는 세 가지 형태의 국가 체제를 이 새로운 학문」에서 수많은 증거를 들어 논증했던 자연적 순서에 따라 거쳐가면서 각 단계마다 그것이 자연적으로 다음 단계로 이어질 때까지 존속했던 것이다. 그들은 푸블릴리아 법과 페텔리아 법에 이르기까지 귀족제를 지켰고 [104~115], 아우구스투스의 시대까지는 민중의 자유를 지켰으며, 군주제 국가의 형태를 파괴하는 내적, 외적인 원인들에 대해 인간으로서 저항하는 것이 가능할 때까지는 군주제를 지켰다.- P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