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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아주 짧은 소련사
  • 실라 피츠패트릭
  • 16,110원 (10%890)
  • 2023-09-15
  • : 2,235
나는 인류 역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삶이 그렇듯이, 인류 역사에서 불가피한 사건은 거의 없다고 본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정치철학자들이 고전적인 문헌을 참고해 다룰 수 있지만 나는 다른 관점, 즉 역사인류학자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원칙적인 의미가 무엇이든, 1980년대에 어설프게 명명된 ‘실존하는 사회주의‘가 소련에 실제로 등장했다.

소련의 근현대사를 압축하여 놓은 책이다. 1922년부터 1991년까지의 주요 흐름을 훓고 있다. 비단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나열과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관련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도 실어 놓았다. 이것이 독자별로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소련의 역사에서 볼셰비키와 사회주의 체제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사회주의 체제의 구성과 정치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련의 사회주의의 정점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본 적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정점을 1980년대로 보고 있다(오히려 나는 미소 경쟁의 정점이었던 1950-60년대를 생각했었는데-길게 본다면 1970년대까지). 경쟁적인 냉전 체제가 한꺼풀 지나간 뒤 소련 사람들의 삶에 사회주의가 자연스레 스며들었기 때문이라고. 사회주의는 소련의 종식으로 일단락되지만 러시아로 전환되는 과정까지의 도입 부분의 역사도 조금 다루고 있다. 특히 푸틴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푸틴이 권력을 강화하고 전쟁을 유지하며 세계를 불화에 빠트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자연스레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주의자들로 근대주의, 합리주의 신봉자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소비에트 연방에 적대적이었고 비러시아인의 민족주의를 권장하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는 볼셰비키 지도자 세력 중 다수가 비러시아인들이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방증이 가능하다.

혁명 초 주역이었던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을 비교하는 대목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트로츠키는 주로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묘사가 된다. 레닌은 이론가이자 연설가로 이름을 드날렸다. 물론 세 사람 중 마지막에 권력을 쥔 자는 결국 스탈린이었다. 레닌과 트로츠키 모두 스탈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보통 유언장에서 남을 평가하지는 않는데 레닌의 유언장에 묘사된 스탈린은 부정적이었다. 특히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저급하고 상스러운 인물로 바라보았다.

스탈린의 국가 체제 변혁은 전방위적이었다. 5개년 계획에 따른 강제 산업화, 농업 집단화, 문화 혁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산업화를 위해 한 자금 조달이 농민에게 압박을 가져왔다. 이는 식량과 소비재 부족을 초래하여 수십년간 농업의 발전을 저해했고 농민을 소외시켰다. 도시에서는 초반에 반짝 산업이 발전하기는 하였으나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면서 산업 원재료가 부족해졌다. 결과적으로 농촌에서든 도시에서든 그의 경제 정책은 모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대숙청으로 문제가 된다고 여겨진 대부분의 인물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고 문화 혁명을 통한 정치적 권력화와 영웅주의화가 이루어졌다.

스탈린 이후 후계자 투쟁이 이어진 그 결과 서열 5위에 불과하던 흐루쇼프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 스탈린에 의한 독재 체제가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정치 형태는 집단지도체제로 가게 되었다. 흐루쇼프는 즉각적인 급진 개혁 프로그램을 주장하여 놀라움을 일으켰다. 정치국 동료들조차도 그의 계획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에서나 급진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위험성이 따르는 것 같다. 흐루쇼프의 개혁은 그래도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사적인 공간에서 가족과 친교를 나누는 모습이 흐루쇼프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것을 통해 이른바 서구에서 시민사회라고 부르는 것, 이를테면 국가와 별도인 여론 형성 공간이 등장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탈린 치하에서 서구 문화와 스파이의 접근을 막기 위해 폐쇄되었던 국경이 열리면서 제한적이긴 했지만 새로운 해외여행 기회가 생겨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브레즈네프 지도체제는 소련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가장 안정된 치세로 기억한다고 한다. 단,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전 시기까지다. 전쟁도 기아도 없는 평화로운 시기였으니 평범한 민중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평화를 내세우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이전 정부보다 오히려 군사비 지출 규모가 훨씬 더 커서 1985년에 1960년대 군사비의 2배를 지출했다고 하니. 미소는 여전히 조용히 경쟁중이었다. 또한 소련 입장에서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군사력을 유지하고 강화시킬 필요도 있었을 것 같다.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제로 점점 더 가파르게 지출 중인 대한민국의 군사 규모를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역사는 사회주의의 편이었으나 갑자기, 겉보기에는 뚜렷한 이유 없이 엉뚱하게 흘러갔다고 이야기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추진 과정에서 소련의 붕괴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지도자 위치에 서기 전까지 중앙 정치 무대 경험도 없었던 사람이었고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었다. 그는 소련 시스템에서 성장한 최초의 지도자였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해빙을 위한 점진적 개혁은 필요하지만 사회주의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그는 호기롭게 인민대표대회를 통한 선거 시행을 발표했으나 오히려 급진파인 보리스 옐친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미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존속 지지를 표명하였으나 이미 내부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데다 동유럽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도 혼란해진 상황이 더해져 모스크바 권력은 대폭 줄어든 상황이었다. 부시는 미 의회의 압력과 우크라이나의 로비로 인해 물러나게 되었고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은 소비에트연방의 핵심 공화국으로 올라섰다. 결과적으로 소련은 우크라이나가 연방을 탈퇴하고 미국이 묵인하면서 해체의 길로 갔다.
나는 다민족 연방 체제인 소련이 무너진 반면 러시아 공화국이 분열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는 옐친과 뒤이은 푸틴이 민족 분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지도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떤 민족이라도 분리를 허락하는 순간 쇄도할지 모를 위험 요소를 원천봉쇄하기 위함이겠지.

푸틴은 2020년 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같은 민족인데도 분리되어 있음으로 인한 손실을 강조한 바 있다. 2022년 일어난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소련의 역사를 빠르게 훑어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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