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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의 서재
  • 최전선의 사람들
  • 가타야마 나쓰코
  • 20,700원 (10%1,150)
  • 2022-04-18
  • : 152
2019년 오염수를 저장한 탱크 부지 사진을 보고 놀랐다. 규모가 그리 컸다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대규모 방사능이 누출된지 어느덧 10년도 훌쩍 지났다. 심지어 일본이 원전 오염수 방류를 한다고 했던 것도 몇 년이 훌쩍 지났지만 제대로 된 대응 및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후쿠시마 제1원전 누출 사고를 규명하기 위해 장장 9년간 잠입 취재를 바탕으로 한 르포르타주다. 작가는 도쿄신문 사회부 기자로 끈질기게 사고를 추적하며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수차례 만났다.
출간되고 얼마 안 되서 이 책을 구입했는데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니 좀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읽게 되어서 다행이다.

사고 후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참담한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폐선 등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고 탱크 내부는 녹아내려 폐허와 다름 없었다고.

취재기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한숨이 새어나왔다. 한국에서 일어난 각종 재난 사고의 재현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대응 메뉴얼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원청, 그나마도 초반에는 억지일지 모르지만 사과라도 했다면 갈수록 철판을 깔고 자신의 살 길을 찾아가는 도쿄전력과 정부의 행태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피해를 본 건 결국 삶의 터전을 잃고 유리되어 흩어진 사람들과 도쿄전력 근로자, 하청 근로자들이다. 피해를 그나마도 복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발벗고 나선 자원봉사자들과 근로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근로자들은 각종 사고에 노출되었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긴 세월을 지냈다. 개인적으로 특히 고향을 등지고 떠나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하는 근로자의 삶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 일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정말이지 큰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오래 떨어져 지내다 가족들과도 소원하게 되어 결국 결단을 내려 원전 근로자를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작업자들은 여러 모로 시달렸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호복에 마스크에 두겹세겹 장갑을 끼고 각종 장비를 했더라도 그들의 체내외에 피폭이 누적되었다. 그들은 누적되는 피폭량에 민감했는데 피폭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회사에서는 나가라는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정작 쓸때는 급하게 쓰면서 버려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피폭에 노출되니 솔로는 결혼도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불면증에 우울증, 번아웃, 알코올 중독, 부상, 사고까지 이어졌다.

대규모 방사능이 누출된 상황에서 사고 수습을 위해 발벗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참여한 것일까 궁금했다. 특히 나는 한 인터뷰 참여자의 사연이 가장 공감되었다. ˝전기를 쓰면서도 원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공기 같은 거였죠. 나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하달까?˝ 후쿠시마 지역은 수십 년전부터 원전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 중 일하는 근로자가 많은 지역이었다. 원전과 함께 살아나간다고 해도 무방한 지역이었기에 그들에게 원전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사고 수습을 지휘한 사람 중 ‘요시다 소장‘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는 2010년 제1원전 소장으로 취임해 사고가 터진 뒤에는 사고 현장을 선두지휘하며 독려했다. 사고 다음 날 원자로 노심 용융(녹아서 섞임)으로 통제 불능의 위기가 닥치자 그는 결단을 내려 냉각수 공급이 끊긴 원전 1호기에 해수 주입을 시작했다고 한다. 윗선의 지시가 내려오기까지 기다렸다가는 더 큰 사고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일부 비판도 받았으나 주변 사람들은 요시다 소장이 아니었으면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했을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게다가 그는 현장 작업자들을 하나 하나 다 챙긴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고 후 1~2년이 흐르기까지는 그나마도 언론에서 보도가 되고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있었지만 2013년 이후가 되면 관련 보도도 줄어든다. 작업자들이 사고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고 자신들도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정부는 도쿄, 후쿠시마의 일상화를 외치며 작업자들의 보상 규모를 줄여나간다. 작업 중 일어난 작은 사고나 부상은 언론에 보도조차 하지 않고 병원으로 호송되어야만 발표했다. 그나마 헬기 이착륙장이 생겨서 부상자 호송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그전에는 러시아워를 뚫고 다른 지역의 헬기 이착륙장까지 이동해서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야만 했다).
도쿄전력 임원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기소되었으나 최종 무죄를 선고받는 등 책임자들은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쿠시마 제1원전 가동이 중단되고 나서 다른 원전들도 모두 가동을 중단했었으나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 원전이 재가동된다.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까지 30~40년을 잡고 있던데 세부 작업 기한이 하나 둘 늦어지고 있는 마당에 솔직히 현실 가능한 플랜인지 모르겠다.

사고 초반부터 시작해서 2019년에 이르기까지 피해 복구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그곳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앞부분에 제1원전 부감도와 조감도, 부지 내부 등을 비롯한 각종 사진들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머리를 울렸다. 나는 원전은 가급하면 운영하지 않아야 한다는 탈원전의 입장이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생각하니 현실적으로 이를 위한 타개책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방향은 탈원전으로 가는 게 맞겠지만. 대한민국은 과연 원전의 안전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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