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바퀴
모든 시스템은 무겁다, 시스템을 온전히 떠받치고 있는 바퀴는 무거워, 구르고 싶은 거다. 중앙시장 여인숙 창녀는 아줌마다, 색기(色氣)가 빠져나가는 사십 대, 이렇게라도 구르지 않으면 생업의 시스템을 견딜 수 없어요 가방을 뒤저 콘돔을 꺼낸다. 집을 나온 L과 P가 불륜의 방에 든다. 과육을 빠는 벌레들처럼 서로를 빨아 댄다. 사랑으로 제 몸을 맹렬히 굴리지 않고서는 그나마 견딜 수 없다는 거다.
두 번이나 옥상에 올라갔다 내려온 두식이는 지금도 허공에서 구르고 싶다, 두식이는 우등생이다, 그는 날마다 일등해야 한다는 일등 시스템을 견뎌야 한다. 어느 날 철규 씨는 죽은 아버지에게 간청했다. 아부지 이제 그만 진짜 죽으세유, 그동안 지들이 삼십오 년 동안 지사 지냈잖유, 인저 엄니두 늙어 요양원에 가시구 지사 지낼 사람두 읎슈, 이번이 마지막 지사유 알았지유, 개미들이 지은 개미집, 벌들이 지어놓은 육각형의 벌집, 시스템은 도깨비 빤쓰보다 찔기고도 튼튼하다, 끄덕없다. 무겁다, 세상의 모든 바퀴는 구르고 싶은 거다- P49
거미
혼자 아픈 날 늘어가리
혼자 중얼대는 날 늘어가리
혼자 멍 때리는 날 늘어가리
허공에 매달린 거미처럼- P89
일곱 시 반의 신도림역
쉰다섯이 넘으면 누구나 다 출가하고
상아를 묻으러 가는 코끼리처럼
일흔다섯이 넘으면 누구나 다 죽으러 간다면
그런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 비밀스런 행위를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저 때가 되면 조용히 일어나
알아서 문을 열고 나간다면-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