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염상섭
X회사 이층에서 하물계 荷物係주임 나리가 감숭한 윗수염 위에 뭉툭한 큰 코를 얹어놓고 또 그 위에는 검정 대모테 안경을 끼어놓고서, 인천 운송점에서 도착한 하물표를 들여다보며 주판질을 하고 있으려니까 따르릉따르릉 하는 소리가 뒷구석에서 나더니,
"녜, 녜, 그렇습니다. 어디세요? ....... 글쎄 누구세요? ...... 녜에. 그러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고 전화를 받던 아이 녀석이 시룽대는 소리로 말끝을 길게 빼다가 툭재치는 어조가 저편이 여자인지 놀리는 수작 같다.
"이주사 나리, 전화 받읍죠. 급한 전화랍니다."
여드름바가지의 사환 아이놈은 달뜬 목소리로 한마디 외치고 나서, 저편에 앉았는 출하계出荷係주임인 김주사를 바라보고 콧날을 으쓱한다.- P17
"가다간 이런 일두 있어야 살 자미가 있는 거야."
아씨의 신기가 이렇게 좋기란 결혼 이후에 처음일 것이다.
"그래 아무 소리 없이 내놉디까?"
"마침, 아들두 나와 있겠죠. 영감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모르고, 전화를 안 내놓거나 하면 돈만 뜰까봐 겁은 나구, 아들은 못 믿겠구 해서뒷구멍으로 알아보느라 이리 직접 편지를 했던가봅니다. 그러나 아들이 오백원에 흥정이 된 거라고 고집을 부립디다마는, 그럼 무르자고 야단을 쳤드니 결국 영감이 수그러지드군요. 칠백원이래두 저희는 이가 되기에 선뜻 또다시 이백원을 내놓겠지."
"흥, 자식이 떼먹은 것이니까 창피한 생각도 들어서 내놓은 것이겠지만, 그 영감 결국 채홍이에게 아들의 해웃값 무리꾸럭해준 셈이군."
하고 슬며시 아내더러 들어보라고 이런 소리를 하였다.
"그럼 채홍이 집 김장은 김주사가 해줬구려? 흥, 그래?"
인제야 안심이 되었다는 듯이 아내는 샐쭉 웃다가,
"여보, 우리 어떻게 또 전화 하나 맬 수 없소?"
하고 옷도 채 못 벗고, 턱밑에 다가앉아서 조르듯이 의논을 한다.
남편은 하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하며 아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P41
염상섭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돈‘에 대한 구구한 설명과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는데, 소설이란 결국은 세속의 산물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전화‘는 개발독재시대였던 1970년대까지도 특권의 상징이었는데, 1920년대의 식민지 조선에서라면 더욱 그러했을 터이다.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를 추첨을 통하여 ‘매어놓게‘ 된 하물계 주임의 집에 처음 걸려온 전화가 고작 기생의 것이어서, 부부싸움으로 소설의 첫 장면이 시작된다. ‘전화‘라는 이 새로운 물건을 누릴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상태로 생활이 엉망으로 헝클어지면서 그것을 남에게 되팔아넘기고 약간의 시세차익을 얻는데, 주인공의 아내가 ‘어떻게 전화 하나 또 놓을 수 없느냐‘고 조르면서 소설이 끝난다. 식민지 부르주아가 누리는 풍족한 일상이라고 해봤자 이렇듯 시시껄렁하기만 하다. 부르주아였던 발자크의 냉정하고 정직한 현실주의적 시선에 대해, 엥겔스는 "바로 이들 귀족들을 그릴 때 그의 풍자가 더 예리해지고 아이러니가 더 신랄해졌다"라고 말한 것을 읽은 생각이 난다. 염상섭은우울한 시선으로 찍은 퇴색한 사진 몇 장을 늘어놓음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우스꽝스럽게 재현해놓고 있다.- P47
쥐불鼠火
이기영
며칠째 연속하던 강추위가 오늘은 조금 풀린 모양이다. 추녀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아내린다.
바람이 분다.
그래도 정초라고 산과 행길에는 인적이 희소하였다. 얼음 위에 짚방석을 깔고 잉어 낚기로 생애를 삼던 차첨지도 요새는 보이지 않았다.
얼어붙은 강 위에는 벌써 언제 온지 모르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갓모봉의 험준한 절벽 밑을 감돌고 다시 편한‘ 들판으로 흘러내린 K강은 마치 백포를 편 것같이 눈이 부신다. 간헐적으로 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선풍旋風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올라간다. 광풍狂風은 다시 강상백설을 후려쳐서 강변 이편으로 들날린다. - P49
「쥐불」은 이기영이 2차 카프 검거 선풍으로 옥고를 치르기 전에 쓴 중편소설이다. 이를테면 그의 「쥐불」과 「고향은 카프 문예운동을 선언한 이래 비로소 관념이나 이론이 아닌 작품으로 당대를 형상화한것이다. 작품이 발표된 1933년 무렵은 앞서 만주사변이 일어났고, 좌우합작운동이던 ‘신간회‘가 해체되었으며, 윤봉길의 상해거사가 있었고, 전국적인 소작쟁의와 노동쟁의가 끊임없이 일어났고, 총독부는 치안유지법 개정으로 삼천여 명을 구속했다. 그리고 미곡 생산 통제를 위하여 농촌갱생운동신생활운동을 실시한다. 유신이란 단어도 그랬지만 내가 1970년대에 예비군으로 겪은 ‘국민교육헌장‘ 암송은 선배들의 일제시대 ‘교육칙어‘ 암송에 해당되고, ‘새마을운동‘은 ‘신생활운동‘과 흡사하다.- P125
「쥐불」은 돌쇠라는 주인공이 동네 청년들과 정초에 노름을 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실은 소 판 돈을 갖고 있던 이웃집 응삼이의 돈을 따먹으려고 꾀었던 것이다. 응삼이는 사람이 모자란데다 이쁜이라는 이름처럼 고운 아내를 가졌고, 그녀는 속으로 돌쇠를 좋아한다. 면서기 원준이는 자기가 탐내는 이쁜이의 속내를 눈치채고 유지들을 선동하여 마을회의에서 돌쇠를 신생활운동을 저해하는 타락분자로 몰아세우고,
돌쇠는 자책과 함께 어느 지식인 청년의 도움으로 유지들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소작농의 현실을 말한다. 지식인의 등장- P125
과 유부녀인 이쁜이와의 정분이 부자연스럽기는 하여도, 작가는 민중의 부정적인 이중성을 작품에 그대로 까발림으로써 당시의 농촌사회를드러낸다.
‘쥐불놀이‘는 해동 무렵에 한 해 농사의 밑거름과 해충구제를 위하여 논밭에 불을 지르는 일종의 정화 행사인데, 아마도 그뒤에 씨를 뿌리면건강한 알곡이 열릴 것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다른 신경향파 작가들의 지옥도 같은 생활상이나 경직된 투쟁의 교훈 없이 살아 생동하는 사람살이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이기영은 그의 「창작방법 문제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P126
현재에 있어서, 문학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은 대개 소시민적 인텔리층 출신이므로, 그들의 제작하는 작품이, 필연적으로 인텔리적 취미를 띨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이 부르문학이 아니고, 프롤레타리아문학이 되는 이상, 모름지기 대중성을 가져야 할것이 아닌가? 더구나 문화의 정도가 얕고 전 인구에 문맹이 대다수를 차지한 이 땅에서는 그럴수록 통속적이고 대중적여야 할 것 아닌가?(동아일보, 1934.6.4.)-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