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효근卜孝根
1962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91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당신이 슬플때 나는 사랑한다. 이후,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등을 냈다. 시선집으로 『어느 대나무의 고백이 있다.
지리산 아래 살면서 산처럼 푸르고 깊은 시를 꿈꾸고있다.
변산바람꽃을 보러간다고, 앉은부채꽃 군락지를 발견했다고 꽃소식을 따라 발길을 재촉하는 그의 소년처럼 상기된 얼굴을 떠올린다. 그의 전언을 더듬어 춘설이 분분한 낯선 산속을 찾아갔다. 그때 내 앞에 펼쳐진 눈 속에서 피어난 앉은부채꽃의 경이로움이라니, 복효근의 시가 왜 그렇게 서늘하도록 아름다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가를 슬쩍 엿볼 수 있었다. 서정의 빼어남을 굳이 말해 무엇하리. 절창의 수사를 덧붙여서 무엇하리.
무릇 시를 쓰는 이라면 살아서 꼭 한번은 이르고 싶은 곳이 있다. 마침표를 찍고 싶은 한 편의 시가 있다. 이 시집의 한 편, 한 편의 시들이 꿈틀거리며 살아나서 막무가내로 밀려오며 울리는 도저한 파문이라니,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에 치를 떤다. 복효근은 분명 시의 한끝을 보았음에 틀림없다.
박남준(시인)
□시인의 말
숫눈 위를 고양이가 지나갔나보다.
그 자리에 얼음이 얼었다.
고스란히 꽃이다.
세상에, 발자국이 꽃이라니!
서늘하고 투명하다.
내 시와 삶은 무엇을 닮아있을 건가.
조심스레 여섯 번째 발자국을 내려놓는다.
2009 새봄
지리산 아래 범실에서
명편名篇
채석강 암벽 한구석에
종석♡진영 왔다 간다
비뚤비뚤 새겨져 있다
옳다 눈이 참 밝구나
만 권의 서책이라 할지라도 이 한 문장이면 족하다
사내가 맥가이버칼 끝으로 글자를 새기는
동안
그녀의 두 눈엔 바다가 가득 넘쳐났으리라
왔다갔다는 것
자명한 것이 이밖에 더 있을까
한 생애 요약하면 이 한 문장이다
설령 그것이 마지막 묘비명이라 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이미 그 생애는 명편인 것이다- P11
마늘촛불
삼겹살 함께 싸 먹으라고
얇게 저며 내 놓은 마늘쪽
초록색 심지 같은 것이 뾰족하니 박혀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마늘어미의 태 안에 앉아 있는 마늘아기와 같은 것인데
알을 잔뜩 품은 굴비를 구워 먹을 때처럼
속이 짜안하니 코끝을 울린다
무심코 된장에 찍어
씹어 삼키는데
들이킨 소주 때문인지
그 초록색 심지에 불이 붙었는지
그 무슨 비애 같은 것이 뉘우침 같은 것이
촛불처럼
내 안의 어둠을 살짝 걷어내면서
헛헛한 속을 밝히는 것 같아서
나도 누구에겐가
싹이 막 돋기 시작한 마늘처럼
조금은 매콤하게
조금은 아릿하면서
그리고 조금은 환하게 불 밝히는 사랑이고 싶은 것이다- P12
자벌레
오체투지, 일보일배一步一拜다
걸음걸음이 절명의 순간일러니
세상에 경전 아닌 것은 없다
제가 걸어온 만큼만 제 일생이어서
몸으로 읽는 경전
한 자도 건너뛸 수 없다- 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