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배우는 것은 차이를 아는 것이다.

p9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스스로 일어서서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p12

헤밍웨이가 엮어 내는 문장의 법칙은 세상을 보는 특별한 방법을 담고 있고, 동시에 그렇게 세상을 보는 방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는 세상을 보기는 하지만 참여하지는 않고 그 세상 속을 통과하기는 하지만 몸담지는 않으면서, 그 시대와 소재에 특별히 맞게 적응된 일종의 낭만적 개인주의를 구사한다.

 세상을 보기는 하지만 참여하지는 않고, 그 세상 속을 통과하기는 하지만 모담지는 않는- 디디온 논픽션의 이런 특징을 나는 매우 인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구시대적으로 느껴지는 훼밍웨이의 '낭만적 개인주의'와 디디온의 논픽션을 확연히 구분짓는 것은, 후자의 글에 물리적 원리, 혹은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

p18

...그녀가 성장한 미국의 새크라멘토 지역은 공화당 성향의 개신교 중산층 문화가 지배적이어서 사회적 관행이 확고하고 변화를 괴하기가 어렵다. 그 문화에서는 누구도 남의 눈에 띄게 과시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보다 말을 더 단순하게 한다. 전후 번영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번영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p29

 작가로 사는 내내 조앤 디디온은 이 편지를 간직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뿐만 아니라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 항상 원하는 대로 풀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기대가 무너지면서 고정된 세계관, 자신이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생각했던 고정된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사실, 그리고 스탠퍼드, 예일, 하버드에 들어가는 것처럼 타인이 쓴 대본을 따르는 것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부모가 쓴 대본, 가족이 쓴 대본. 우리는 디디온이 버클리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누구의 대본도 따르지 않게 되었을 것으로 거의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튀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 대사를 외우는 것까지 그만둘 정도는 아니었다....

p46

...기성 매체의 훌륭한 신문들은 입에 올리지 않지만, 그 배후에 매우 강한 태도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런 시각을 절대 언급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습지 식물이 썩을 때 내뿜는 부식 가스 같은 것이 독자와 신문지를 자욱하게 감싸곤 한다.

p69

...그들의 말투에는 모든 것을 민주화하고 평준화하려는 현상과 늘 공존하는 '부자에 대한 우상 숭배'가 깃들었었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면, 더는 상상력을 동원할 수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p79

...그러나 그때 내가 받은 불합격 통지는 요즘 아이들이 받는 불합격 통지와는 달랐고, 내가 느낀 모욕감은 내 개인 감정이었다. 스탠퍼드가 됐건 다른 어디가 됐건 대학교에 합격하고 말고에 부모님의 기대가 걸려있지는 않았다. 물론 부모님은 내가 행복하기를 원했고, 물론 그 행복이 뭔가를 어떻게 성취하는지는 내가 알아서 할 나만의 문제였따. 부모님이 생각하는 본인들의 가치와 나 자신의 가치는 내가 어느 대학에 가는지, 심지어 대학에 가는지 아닌지와 전혀 상관 없었다. 우리의 사회 상황은 상당히 정적이었기 때문에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맞는'대학에 진학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가 스탠퍼드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인 다음 내게 뭘 마시고 싶은지 물었었다.

 부모들이 자녀의 '기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던 아버지의 행위를 다시 떠올리며 감사해하곤 한다. 부모들이 자녀의 기회를 자신의 기회와 뭉뚱그려 하나로 생각하면서 자녀에게 자신뿐 아니라 부모의 영광을 위해서 성취해 낼 것을 요구하는 느낌을 줄 때면, 나는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해진다. 물론 요새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물론 '모두가 원하는'대학의 정원보다 훨씬 많은 아이가 지원한다. 그러나 '모두가 원하는'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전적으로 아이를 위한 것인 척하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다.....이제는 대학에 합격하기까지 과정 전체가 추악해져 버렷다. 시간과 에너지와 본인의 진정한 관심을 암처럼 집어삼키고 우회시켜 버릴 뿐 아니라, 아이 본인이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악영향 중의 하나다. ....

p82

 사실 어린 나이에 거둔 성공이나 실패는 그 어느 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할 일은 따로 있는 것 같다. 그 나이대의 성공이나 실패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우리의 기대와 그들의 기대를 분리하는 방법을 찾아내며, 실패의 경험과 뾰로통한 십대의 반항기와 마주칠지도 모를 프로골퍼들과의 관계등을 누구의 훈수도 없이 혼자 헤쳐 나가도록 내버려 둘 방법을 찾는 것 말이다. 열입곱 살에 자신의 배역을 찾는 것만도 어려운 일인데 다른 사람의 대본을 쥐여주는 혼란까지 초래하지는 말자.

p92

..."달라졌다면...그건 친구가 인죠. 친구는...언제나 그저 친구예요."

p111

 많은 면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아이(I),즉 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행위, 다시 말해서 '내 말 좀 들어봐요. 내가 볼 때는 이러저러하니 당신 생각을 바꾸세요'하고 말하는 행위이지요. 공격적인, 심지어 적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종속절, 형용사, 자신 없어 보이는 가정법 등의 베일 뒤에 숨고 생략과 말 돌리기 기법을 사용했다가, 주장보다는 넌지시 시사해 보기도 하고 선언보다는 암시하는 방법 등으로 위장할 수는 있지만, 종이에 단어를 쓰는 것은 독자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 저자의 감각을 부여하도록 비밀스럽게 협박하고, 침입하고 강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p118

...문법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은 그것이 가진 무한한 힘뿐입니다. 문장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그 문장의 의미를 바꾸는 것입니다. 마치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면 피사체의 의미가 바뀌는 것처럼 문법도 문장의 의미를 확실하고도 완강하게 변화시킵니다. 이제 카메라 각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문장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단어들을 배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데, 자신이 원하는 배열은 머릿속에 있는 그 그림 속에서 찾을 수 있씁니다. 그 그림이 단어의 배열 방식을 정하는 것이지요. 그 그림은 이 문장이 절을 포함한 문장일지 아닐지, 강하게 끝나는 문장일지, 아니면 점점 톤이 낮아지다가 끝나는 문장일지, 길지 짧을지, 능동형일지 수동형일지를 결정합니다. 그 그림은 단어들을 어떻게 배열할지 알려주고, 그렇게 배열된 단어들은 머릿속에 든 그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우리에 알려주지요. 노타베네.

p157

...화가든 사진가든 작곡가든 안무가든 상관없이, 사실 작가도 포함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것이 일인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혹은 어떻게 그 일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쓰는 기술적인 기교, 가령 사진가라면 조명이나 필터, 작가라면 목소리, 어투, 리듬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유롭게 이야기하겠지만 막상 내용에 대해서는 입이 무거워진다. 자신의 작품을 분석하려는 시도, 다시 말해 자신이 다루는 주제를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는 파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미신이 힘을 얻고, 부서지기 쉬운 미완의 무엇인가가 산산조각 깨지고 사라져서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릴 것이라는 공포가 승리한다. 장콕토는 그런 활동은 모두 '심오한 나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환자처럼 비몽사몽 취한 상태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꿈 속에서 우리는 행동을 분석하지 않는다. 분석하는 순간 꿈은 사라지고 만다....

p160

...그런 그들의 모습은 유혹하고, 위장하고, 음모하고, 속이는 능력에 생존이 달린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였ㄷ. 노래해서 저녁 식사를 벌어봐, 어쩌면 아침도 먹을 수 있을지 몰라. 그 사진들의 무엇인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고운 소리로 우는 새는 굶지 않아. 이런 문구는 '현대적'사고가 아니며, 메이플소프의 사진에 등장하는 여성들도 자신을 현대적 여성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의 사진 중 일부에서는 낯익은 19세기식 지배- 종속 관계가 느껴진다. 끈과 가죽, 12센티미터 ㅡㅂ의 구두, 발등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불편한 신발이 암시하는 에로틱한 고통.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처녀들(아래로 내리깐 눈, 맞잡은 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암시, 대리석 같은 피부, 가면무도회의 가면처럼 보이는 얼굴, 초자연적인 느낌으로 빛을 발하는 얼굴, 천사를 연상시키는 후광과 썪어가는 육신.

p187

...헤밍웨이가 엮어 내는 문장의 법칙은 세상을 보는 특별한 방법을 담고 있고, 동시에 그렇게 세상을 보는 방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는 세상을 보기는 하지만 참여하지는 않고 그 세상 속을 통과하기는 하지만 몸담지는 않으면서, 그 시대와 소재에 특별히 맞게 적응된 일종의 ㄴ아만적 개인주의를 구사한다. 그의 문장에 설득된 독자는 병사들이 길을 따라 행군하는 것을 보지만, 꼭 그들과 함께 행군하지는 않는다. 소식을 전하지만 참여하지는 않는다....

p215

..첫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둘째,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p231

..."저는 욕구를 채우는 일을 했지요. 비단 제 욕구 뿐만 아니라 모든 주부의 욕구 말이에요. 집안을 돌보는 일을 격상시키고자 하는 욕구."..."집안일은 몸부림을 쳐야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우린 모두 그 일에서 벗어나고, 집 밖으로 나가길 원했죠. 높은 보수를 받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고용해 돈을 주면서 자신이 직접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맡기고 싶어 했죠. 그런데 갑자기 깨달았어요. 집안일이라는 것이 정말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요."

p238

...마사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제어한다. 마사는 남자 대부분은 도달하지 못하고 그럴 능력도 없는 위치에 올랐다. 마사는 자기 잡지가 있다. 마사는 자기 쇼가 있다. 마사는 자기 회사가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이름을 딴 회사를 가지고 있다.

 마사의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여자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기술들을 최대한 활용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회사를 창립해 성공적으로 상장시킨 여성의 이야기다. 자수성가한 여성의 이야기, 사회적 고난을 극복한 이야기, 개인적 비극을 넘어선 이야기, 다시는 가난해지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이야기,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억척녀 이야기, 전문 기술이 없는 여성이 의지와 용기로 성공한 이야기, 남자들에게 보란 듯 성공한 이야기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위협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이 나라의 여성들은 격려와 용기를 얻는다. 마사 스튜어트가 자극하는 꿈과 두려움은 '여성적'이고 가정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 힘에 관한 것이다. 그녀가 그리는 여성은 남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가 앞치마를 벗지도 않은 채 감자튀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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