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이후 윤석열 파면으로 치뤄질 대선정국. 어느 기관보다 정치로부터 중립적이어야 할 사법부와 선거를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권한대행이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와 스스로 플레이어로서 참가하겠다고 선언한 날이다. 내란 사태 이후 내가 알던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님을 절감하고 있기에 새삼 놀랍지는 않지만, 이토록 많은 문제점 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참 용케 굴러왔구나싶다. 이런 모순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윤석열이 자신을 계몽시켰다는 누군가의 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닌 듯 싶다. 비록 전혀 그가 의도한 방향은 아니었겠지만...
한국의 파벌과 인맥이 부자(父子) 관계를 원형으로 하고 있어서 아버지 역할을 맡은 사람은 권위를 가지고 아랫사람을 보살필 의무를 지고, 아들 역할을 맡은 사람은 절대적인 복종을 미덕으로 한다는 사실도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었습니다... 혹시 '원만함'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 분이 있을지모르겠습니다. 원만함은 우리 사회에서 대체로 좋은 가치로 받아들여졌고, 어느 조직에서나 원만한 사람을 선호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원만함이 사법 관련자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기득권층의 이익과 기존 질서입니다. 갈등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을 원만함으로 이해하는 조직에서 "정의"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_ 김두식, <불별의 신성가족>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