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서 꽂아둔 발리바르의 책들을 다시 꺼낸다. 그동안 드문드문 보았던 스피노자의 저작이나 해설서들을 다시 꺼내든다. 몇 번씩 정독해두었던 알튀세르의 책들을 다시 본다. 저자가 번역해놓아 구입해둔 푸코의 밑줄을 다시 읽는다.
친절한 저자는 강의한 것을 이렇게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서술하는 방법은 알튀세르를 읽는 듯도 하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서술 방법 같기도 하다. 그렇게 긴장감있게, 탐정의 모드로 읽힌다.
다시 버틀러의 책들도 꺼내고 있다.
알튀세르의 저작도 그렇고, 푸코의 저작들도 최근에서야 번역되고, 그 사상가들의 진가는 지금에서야 온전해지고 있다. 지금 언급된 사상가들의 저변에는 마르크스가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한 그 곁엔 스피노자가 있다는 것도 관심이 없다. 하물며 우연성이나 마주침, 사건이라는 인식론의 단절이 이들의 사상가들이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88년생인 저자는 태어날 때 유행한 이런 이론들이 제대로 다시 읽히기를 소망한다. 활동이나 운동이라는 변화를 꿈꾸던 이들이 이 저자를 통해 제대로 읽힌다면, 어쩌면 우리나라 진보라는 것이 있다면 엄청난 근력과 지성의 지평을 넓힐 계기가 된다고 여긴다.
스피노자는 기호를 통한 혼접이나 상상을 1종인식이라하고 이를 종합하고 개념화하는 인식 이성을 2종인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3종인식은 직관지다. 일종의 통찰이나 깨달음같은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덧붙여보기도 하는데, 분명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중요한 저작이다. 아전인수하거나 자신의 계파 기원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가짜진보들에게...모두 다 내려놓고 다시 읽어보고 판단해보자 할 수 있는 저작이기도 한 듯싶다.
우리는 삼중고에 절여있는 주체들이다. 민주주의-자본주의-기후위기의 숨막히는 현실을 살아내는 지구인들이다. 아직도 사르트르의 인간중심마르크스주의에 멈춰있는 자칭진보들은 이런 수평적 확장이나 시야를 가져보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지 않는가. 부디 독서에도 올인해보시길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