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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알고 있다 -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조너선 밸컴 지음, 양병찬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2월
평점 :
타자의 죽음 앞에서 침이 고일 때 :
물고기는 thing이 아니라 being이다
극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외아들을 키우는 아버지. 금이야 옥이야 은이야, 어허둥둥 내 새끼. 어느 날, " 내 새끼 " 가 괴한에 의해 납치당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지옥에라도 갈 결심을 한다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극단적 최루성 쓰빽따끌 무비
<< 니모를 찾아서 >> 앞에서, 눈물 없이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객석 뒤쪽에서 콧방귀를 뀌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사연이 궁금하여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원어민처럼 물었다. 아임파인탱큐앤드유 ? ( 번역 :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인데 왜 웃으시죠?) 내 질문에 대해 그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 물고기는 알고 있다, What a Fish Knows. 2016년 >> ! 그가 대답했다. 아임파인탱큐앤드유 ! ( 번역 : 내가 이 책의 저자올시다. 반갑소 ! 나, 조너선이오. ) < 니모를 찾아서 > 에서 주인공 아버지 말린과 외아들 니모(물고기)의 실제 모델은 횐동가리라는 물고기인데 이 책에서는 흰동가리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 < 니모를 찾아서 > 아버지 몰리와 아들 니모


흰동가리와 말미잘
흰동가리들은 몸집, 서열, 그리고 성전환에 의존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이들은 ' 덩치 큰 개체 ' 두 마리와 ' 덩치작은 개체 ' 여러 마리로 그룹을 형성하는데, 덩치 큰 두 마리는 ' 번식 커플 ' 이며, 둘 중에서 더 큰 것이 ' 지배적인 암컷 ' 이고 작은 것이 ' 비지배적인 수컷 ' 이다. 덩치가 작은 하급자들은 모두 수컷인데, 몸집 순서대로 서열이 매겨진다. 서열이 낮은 수컷들의 나이가 번식 커플과 같을 수 있지만, 성적으로 성숙한 개체들의 행동 지배가 하급자들의 성장이나 발육을 억제한다...... 서열이 낮은 수컷들은 본질적으로 정신생리적으로 거세된 상태라고 한다. 이 상황에서 각각의 수컷들은 지휘부에 결원이 생길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알 낳는 암컷이 죽으면 서열 1위 수컷이 암컷으로 전환되고, 서열 2위 수컷의 지위가 한 단계 상승한다고 한다. 따라서 흰동가리 그룹에서 억압받는 수컷들은 늘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있는 셈이다 ( 물고기는 알고 있다, 253 쪽 )
맙소사 ! 흰동가리 무리는 암컷 한 마리에 수많은 수컷으로 구성된 사회인데, 서열 1위인 암컷이 사라지면 서열 2위였던 수컷이 암컷으로 전환되고 서열 3위였던 넘버쓰리가 남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와 사별한 홀아비 몰리가 아들을 애지중지 키운다는 영화 설정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고기 생활에서는 수컷이 양육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다반사이지만 흰동가리 세계에서 홀아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넘버 투인 남편이 죽으면 넘버 쓰리가 남편의 자리를 차지하고, 넘버 원이 죽으면 넘버 투인 수컷이 암컷으로 성전환을 하니 말이다. 해저 2만리. 어허, 재미있는 세상일세.
얼핏 보면 흰동가리 성생활은 두 명의 하드바디만이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승자 독식 사회 모델(넘버 원과 넘버 투'만이 섹스를 할 수 있다)을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하빠리-들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 평등 사회'이자 성차 없는 양성 평등 사회라는 점에서 인간 사회보다 진보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인간 사회는 물고기 사회보다 고등할까 ? 이 책은 물고기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어느 실험은 물고기가 인간보다도 똑똑하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도 한다. 네 살짜리 꼬마에게 색깔이 각각 다른 M&M초콜릿 두 개(a와 b라고 하자)를 준다.
꼬마가 a 초콜릿을 먼저 먹으면 엄마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b 초콜릿을 수거한다. 반면, 초콜릿 b를 먼저 먹으면 a 초콜릿도 먹을 수 있도록 치우지 않는다. 네 살짜리 꼬마는 이 게임의 법칙을 알게 될까 ? b초콜릿을 먼저 먹는 쪽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꼬마는 100번이 넘도록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순서를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간 다음으로 영리하다는 영장류는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 결과는 영장류 열여섯 마리 중 두 마리'만 성공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 3초 기억력의 세계 " 로 알고 있는, 머리 나쁜 짐승의 대명사인 물고기(청소놀래기)는 ? 정답은 전원 통과'이다. 이 책을 쓴 조너선 밸컴이 주장하고 싶은 말은 인간의 희노애락과 물고기의 희노애락은 동일하다는 점이다.
첫째, 물고기는 사물thing이 아니라 존재being이며, 단순히 살아있는 게 아니라 생활을 영위한다. 둘째, 물고기는 개성을 갖고 있으며 관계를 형성하는 개체이다. 셋째, 물고기는 계획과 학습, 인식과 혁신, 책략과 회유를 하며, 쾌락, 공포, 장난, 통증 그리고 즐거움을 경험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물고기도 느낄 건 다 느끼고 알건 다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물고기에 관한 기존의 통념과 얼마나 일치1)하는가 ? 우리는 그동안 물고기를 어엿한 개체로 취급해 왔을까 ? ( 286쪽 )
좋은 독서 경험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고정 관념을 산산조각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너선 벨컴의 << 물고기는 알고 있다 >> 는 얼음을 깨는 도끼(카프카)이며, 낡은 가치를 부수는 망치(니체)이고, 어둠을 밝히는 형광등 101개(박근혜)다2). " 금붕어의 기억력은 3초 " 라는 프레임은 인간이 악의적으로 유포한 가짜 뉴스인 셈이다. 물고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희노애락을 느낄 줄 안다. 어쩌면 모든 생물은 통증을 느낀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인간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_ 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인 우리는 “ 노는 물 ” 이 다르다는 이유로 물고기를 being이 아닌 thing으로 인식하려 한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핏기 하나 없는 횟감이라는 이유로, 혹은 표정이 없다는 이유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품격 없는 무지에 대한 훌륭한 반격은 조너선 밸컴이 이미 준비해 두었다.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다른,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정착한 그는 여러분에게 묻는다. 아임파인탱큐앤드유?( 번역 : 우리가 물고기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노는 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낚싯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물속에 빠졌을 때 울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316쪽)
훌륭한 번역'이라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별 다섯 개 만점에서 여섯 개 주겠다. 흥행성과 함께 작품성까지 두루 갖춘 책이다. 다 읽고 나면 묘하게 울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 책은 물고기를 키우는 이보다는 오히려 해물탕 냄비 속에서 살아있는 문어의 고통을 보며, 아아................. 입에 침이 고였던 당신에게 권한다. 싱싱한 생물을 보여주기 위해서 낙지해물탕집 주인은 손님 앞에서 산낙지를 부글부글 끓는 냄비 속에 넣는다. " 요래요래, 오래, 낙지가 힘차게 꿈틀거리는 거 보십시오. 지랄하는 거 보이십니까 ? 낙지가 얼마나 싱싱하면 끓는 물 속에서 3분 동안이나 꿈틀거리겠습니까 ! 하하하. "
사(死)의 몸짓을 선(鮮:싱싱하다)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인지 묻고 싶다. 하여, 만국의 지구촌 친구들에게 원어민 발음으로 묻는다. 아임파인탱큐앤드유? ■
1) 번역 오류인 것 같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 일치 > 가 아니라 < 대치 > 가 아닐까 ?
2) 삥 뜯기의 달인인 박근혜는 삥의 규모도 쓰빽따끌해서 집 한 채 사달라는 요구 대신 동네 전체를 사달라고 한다. " 삼성동 사줘 ! " 라니....... 탄핵으로 인한 연금 박탈을 이유로 박씨의 먹고사니즘을 걱정하는 인간에게 되묻고 싶다. 아임파인탱큐앤드유 ?
▶ 별책부록
http://blog.aladin.co.kr/myperu/6370810 : 낙지 사회
http://blog.aladin.co.kr/myperu/6695997 : 심장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