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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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뭐 :

 

                                                                   더러운 옷은

            바깥에 내걸지 않는다

                                                     

                                     

 

                                                                                                        양정원이라는 배우가 대세인가 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1년 전만 해도 그녀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길들여진여우(길들여진 여우는 현재 혜연의 욕망 탐구'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팔 할은 벌거벗은 여성 누드 이미지를 올려놓는데 여전히 예술 작품이라고 뻥을 친다) 는 양정원이라는 인물을 아는 몇 안 되는 인간'이었다.  한 치 앞을 못 봤던 길여는  이름 없는 양정원이 훗날 대세 인기녀가 되어 대중 앞에 나타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들여진여우1)는 당시 무명이었던 양정원 사진을 자신인 양 속이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사진 밑에는 깨알보다 큰 멘트가 달리곤 했다. 퇴근하는 길, 피곤한 하루 - 이런 식 말이다. 길여는 싸이월드에서 훔친 일상 속 양정원 사진'을 지속적으로 블로그에 올렸다. 쉽게 말해서 타인의 얼굴과 몸매를 훔친 것이다. 혹하지 않을 사내가 있었을까 ?  수많은 블로거들이 그녀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마치 썩은 시체에 몰려드는 구더기처럼. 황홀했던 거라. 여신의 외모를 한 블로거가 하찮은 블로거가 단 댓글에 일일이 웃으면서 답글을 다니깐 말이다. 식사하셨어요, 날이 더워요, 건강 챙기셔야죠 ? 찡긋 !  햐, 대감집 셋째 딸이 머슴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밥 먹었니, 라고 말할 때 느끼게 되는 머슴의 황홀경.

뭐, 그런 느낌. 그녀가 올린 포스트는 대부분 벌거벗은 여자 이미지였다. 그 밑에 달린 댓글은 평균 100개였다. " 꼴불견이군, 이젠 내가 나서야겠어...... "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툭툭 건드리다가 카운터펀치를 한방 날릴 날이 오리라. " 지속적으로 사진을 올리시던데 본인 맞으신가요 ? "  내 질문에 그녀는 특유의 친절로 대응했다. 호호호, 내 사진이 분명하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친절한 대응이었지만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내가 본인이라고 주장하며 올린 길여 사진을 의심한 이유는 셀카'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찍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속 사진사'가 있었던 것. 무엇보다도 일상 셀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조명판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1년 정도 사진을 배운 터'라 사진 속 인공 광원의 사용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그녀가 올린 사진들은 사진을 찍어 줄 타인과 조명판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일상적 공간에서 조명판까지 사용하며 사진을 찍는다 ?!  그녀가 올린 사진은 상업 사진에 가까웠다. 폭탄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길여에 푹 빠진 남성 블로거가 우연히 양정원을 검색하다가 진짜 양정원을 발견한 것이었다. 사실, 그가 찾고자 했던 배우는 영화 << 지슬 >> 에 나오는 양정원이라는 남자 배우였는데 동명이인이다 보니 검색에 걸린 것이다. 길여가 탤런트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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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친 부분 접기 ▲

 

이리하여 타인의 얼굴을 훔친 길여의 사기 행각은 만천하에 발각되고 말았다. 재미있는 현상은 그 이후'였다. 양정원이라는 이미지에 홀라당 마음을 빼앗겼던 블로거들이 사기꾼 길여를 옹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은 " 그럴 수도 있지, 뭐 " 자세로 일관했다.  어떤 추종자는 이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불행이 길여에게 찾아온 것에 대해 무릎 꿇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누구에게 ?  맙소사, 길여에게 !   사과가 아니라 애원이요, 신파'였다.   제발, 떠나지 마세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     나는,  한순간에 마리아를 핍박하는 갈라리 병사'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황당하고, 황당하고, 황당한 상황 앞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 인간은 어떤 상황에 대해 엉뚱한 < 똥수 > 를 자주 둔다 " 는 점이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계산이 불가능한 똥수를 가끔 두듯이 말이다. 사기꾼 길여의 허언증에 놀아난 피해자가 길여를 지지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 길여의 거짓을 인정한다는 것 > 은 결국 < 거짓말에 놀아난 어리석은 자신을 인정 >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한 옹호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신안 교사 성폭행 사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2)도 결국은 자기 합리화가 작동한 결과'다. 마을 주민의 범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마을 주민이기도 한 자신에 대한 비판이다. 국가주의, 집단주의, 가족주의가 위험한 이유이다.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가족주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더러운 옷은 바깥에 내걸지 않는다. 개인주의자는 연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집단주의자는 은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통계 조사에 의하면 가족주의를 중시하는 국가는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국가보다 부패지수가 높다고 한다.  나는 개인주의3)를 옹호한다.





​                                   

1)    < 그것이알고싶다 > 에서 리플리 증후군'에 대한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내 이웃이 직접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제보를 해 그 사건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종 편집에서는 삭제되었다.

2)     모 주민은 이번 사건에 대해 퉁명스럽게 " 젊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 라고 말해서 논란이 됐다.

3)    개인주의라기보다는 독립주의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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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1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이한 상황이네요. 저는 남자들이 타인의 얼굴을 도용한 블로거를 욕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3 13:58   좋아요 0 | URL
욕하는 인간도 있었죠. 하지만... 상당수는 적극 옹호하더라고요..
특이한 상황이 아닙니다. 전 이게 굉장히 흔하다고 생각됩니다.

samadhi(眞我) 2016-06-1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있었군요. 사기꾼들 간은 돌로 만들어진 건지 거 참 단단하기도 하네요. 언젠가 드러날 일을 참 잘도 우기네요.
군중폭력은 정말 잔인하지요. 집단의 힘을 믿고 도덕성을 지워버리는 무지. 끔찍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3 13:57   좋아요 0 | URL
이 인간은 특히 뻔뻔했죠. 끝까지 오리발 내밀며 법적 투쟁한다 하다가 결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자..
사과 한마디도 없이 다음날, 다른 블로그 만들어서 운영하더군요...

만화애니비평 2016-06-12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란 아름다운건만 존재하지 않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3 13:56   좋아요 0 | URL
씁쓸한 추억..ㅋㅋㅋㅋㅋ 토닥토닥 ~

무해한모리군 2016-06-1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블로그에 내가 그 스타와 안다로 시작해서 관련물품을 팔거나 콘서트 티켓 같은 것을 웃돈주고 파는 장사를 하면서 본인이 일명 `시녀`군단을 거느리는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합니다. 제 경험치로는 모두다 거짓말쟁이들이었지요... 그런데 또 위에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것이 밝혀지고 사기행태가 들어나도 그녀들을 옹호하며 남는 추종자들이 있는 것이지요. 평소에 이것이 늘 이해가 안되었는데 위의 말씀을 듣고보니 다소 이해가 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3 13:55   좋아요 0 | URL
여왕을 모시는 시녀 군단이라... 마음에 드네요.
이러한 현상은 거의 모든 발각행위에서 벌어지고는 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자신이 되고 싶은 롤모델이었는데.. 쓰레기였다 ?!
이걸 못견뎌하는 것 같습니다.
 

 

 

 

 



 

 

 

채식주의자와 비빔밥




                                                                                                                                                                                               마이클 잭슨이 " 비빔밥 좋아요 ! " 라고 말했을 때,  한국인이 몽정에 다다른 표정을 지었던 것을 기억한다.  비빔밥은 정치적 목적을 띠기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월드 스타'가 이름 없는 변방의 음식인 비빔밥을 찬양하며 엄지 척을 내놓으니 감개가 무량한 것이리라.

 

농번기 때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바가지에 밥과 반찬을 섞어 대충 비벼 먹기 시작했다는 비빔밥을 월드스타가 소비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한국인에게 비빔밥은 진흙 속에 파묻혔던 진주였다.  몰,    라뵈서 죄송합니다아 ~    이처럼 한국인의 문화적 자긍심은 주로 타자의 인정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마이클 잭슨이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명박의 아내 김윤옥 씨가 서민 세금으로 < 한식 세계화 > 사업을 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식에 대한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급기야는 김치 칵테일'을 선보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 좋아요.  김치 칵테일 !   

 

김치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해서 국격이 올라갈까 ?   김치가 < 글로벌 > 이라는 한계를 넘어 < 아스트랄 > 한 범위로 확장되었다고 해도 김치 때문에 국격이 올라가겠느냔 말이다. 그런 식이라면 인도는 카레 때문에 제국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인도인은 카레를 영국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외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까 ?  나는 단 한 번도 카레를 먹으면서 인도가 위대한 국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카레는 카레이고 인도는 인도'이니까.   한강의 << 채식주의자 >> 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에 대한 한국인의 황홀한 표정을 보면,  마이클 잭슨이 비빔밥이 좋다고 말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한국인에게 데보라 스미스는 제2의 마이클 잭슨이다.  진흙 속에서 보물을 발굴해 주시고 세계 만방에 소개하야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밖으로는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셔서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이 읽힌다.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목은 << 채식주의자 >> 의 문학성이 과대포장되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번역가인 데보라 스미스를 소비하는 언론 행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한국 문학을 한국인이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보다 한국 문학을 외국인이 자국 언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국인 번역가를 발굴 육성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번역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만약에 한국 문학을 한국인이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에 양질의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 

 

언론은 마치 데보라 스미스를 한국 문학을 구원해 줄 잔다르크'인 양 소개한다.  데보라 스미스여 ! 위기에 빠진 한국 문학을 구하셔 ~  볼 때마다 불편한 지점이다.  서구 사회에 대한 과도한 선망과 인정 욕구가 만들어낸 열병이다,  병신같이, 참...... 배알도 없이.  

 

 

 

 

덧대기

이웃의 전언에 의하면 : 데보라 스미스는 << 소년이온다 >> 에서 ˝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 라는 문장을 " meet nice people... and live " 로 번역했다고 한다. < 빨래집게 > 보고 < A > 를 떠올릴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한강이 말한 < 좋은 사람 > 라는 문장이 < nice people(나이스 가이) > 이 아니라  < a suitable marriage partner(배우자감으로 적당한 사람) > 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좋은 사람 만나 잘 살라는 당부는 배우자감으로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하라는 당부이다. 그런데 번역자는 단순하게 근사한 사람을 만나보기도 하고 독신 생활도 즐기라고 해석한다.  이게 번역의 바이블'인가 ?  만약에 한국 번역가가 << 소년이 온다 >> 를 영어로 번역했다면 <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 라는 문장을 < meet nice people... and live > 라고 번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이 양보한다 해도 marry의 의미를 live로 해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 소설을 한국 사람이 영어로 번역하는 것과 한국 소설을 외국인이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모두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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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6-1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기는 거죠. 그러지 않아도 그 전에 번역지원 예산을 깍겠다고 한 나라가.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17:32   좋아요 0 | URL
외국인인 한국 소설을 번역할 때 오는 오류도 적지 않습니다. (이웃이 지적한 예를 보면) 예를 들면 소년이온다;에서 데보라 스미스는 ˝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 를 meet nice people... and live로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좋은 사람과 나이스 피플은 다른 의미죠. 그리고 살고와 live도 다름니다. 좋은 사람 만나 살고.. 라는 것은 좋은 배필 만나 행복한 결혼을 하라는 소리인데... 데보라는 그냥 나이스한 사람도 만나고 혼자 삶을 살아가라는 소리. 이게 무슨... 자국 문화적 감성에 기댄 교과서적인 번역입니까..

데보라 스미스가 좋은 사람 만나.. 라는 한국어를 제대로 알았다면

nice people 대신 a suitable marriage partner라고 했을 겁니다.

cyrus 2016-06-11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 작가가 내한하면 기레기들이 이런 질문을 할 것 같습니다.

˝두 유 노 강 한?˝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17:30   좋아요 0 | URL
아마 한강` 보면 한강을 기념해서 강 이름을 한강으로 지은 줄 알 겁니다..

2016-06-11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19:51   좋아요 0 | URL
하여튼 개인의 영광을 국가의 영광으로 환원하는 국가의 이 뻔뻔한 욕망은 변하지가 않습니다. 언제 그 개같은 버릇을 고칠련지.. 고생은 개인이 하는데 영광은 국가가 챙기고...

samadhi(眞我) 2016-06-1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강 소설을 너무너무너무 재미없게 읽어서 이 난리법석이 좀 그렇습니다.

오거서 2016-06-11 19:05   좋아요 0 | URL
만약 한강 소설이 재미있었다고 해도 난리법석은 그대로지 않을까요

samadhi(眞我) 2016-06-11 19: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외국인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핵심이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19:51   좋아요 0 | URL
흰 손인가.. 저 그거 읽었는데 제가 워낙 문학 쪽에 문외한이어서
감흥이 없더라고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samadhi(眞我) 2016-06-11 19:53   좋아요 0 | URL
한강 소설은 되게 우울하고 어둡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어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전 그랬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19:56   좋아요 0 | URL
전 채식주의자는 영화로 봤는데 스토리 설정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 들더군요. 진아 님이나 저나 좀 징글징글하고 왁자지껄한 스타일이잖습니까.. ㅎㅎ

samadhi(眞我) 2016-06-11 19:58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쾌락주의자(?)여서
오직 ˝재미˝를 찾기 때문인데 재미없는 책은 못 읽겠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20:11   좋아요 0 | URL
쾌락주의자 ㅋㅋㅋ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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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와 민들레




                                                                                                  옛 기억을 더듬으면 구멍가게는 아침 일찍 문을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서 요리를 하다 부족한 식재료가 있으면 이른 아침'부터 " 쓰레빠 "  신고 구멍가게'로 달려가고는 했으니까.   대부분은 두부나 파 따위를 샀던 것 같다.  나는 구멍가게, 만화가게, 떡볶이 가게 주인의 자식'을 부러워했었다. 붓 들고 영화배우들의 얼굴이나 그렸던 아버지를 부끄러워했기에 아버지가 붓을 놓고 구멍가게나 차렸으면 싶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 바람에 콧방귀를 뀌고는 했다. " 하이고 ~  구멍가게는 아무나 하는 줄 알어 ?  부지런해야 구멍가게도 하는 거지, 너희 아버지처럼 게으른 사람은 절대 못한다. "  일리 있는 말이었다.

구멍가게를 꾸린다는 것은 새벽 일찍 가게 문을 열고 밤 늦게 닫는 고된 일에 속했으니까.  감성 돋는 추억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나는 < 구멍가게 > 에 대한 향수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따스한 두부와 파릇파릇한 대파'가 있던 곳. 특히, 구멍가게'라는 단어 자체가 좋다.  쑥도 아니면서 마음에 쏙 들었다.  규모가 작다는 의미에서 " 구멍 " 이라는 낱말을 붙인 듯하다.  신기하게도 내 기억 속 구멍가게는 없는 게 없는 곳이었다. 신기하지, 이토록 광활한 우주를 구멍'이라 표현하다니 어른들의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깐.  세월이 흘러 구멍가게는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였다.

사람들은 구멍가게'라는 간판을 버리고 그 자리에 슈퍼마켓이라는 상호를 내걸기 시작했다. 극적인 변화였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꿈은 " 슈퍼 " 하게 가져야제. 그러니까, 슈퍼마켓이라는 작명은 " 아메리칸 드림 " 에 대한 소망 충족을 반영한 표현이었다. 바로 이 지점, 바로 그 시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나에게는 없는 게 없던 구멍가게가 슈퍼마켓으로 불리우기 시작하면서 슈퍼마켓은 부족한 게 많은 가게'가 되었다.  어릴 때, 구멍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설레던 마음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코딱지만한 공간에도 < 없는 게 없던 가게 > 는 < 있는 게 없는 마켓 >  으로 변했다는 사실.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실.  슈퍼ㅡ 라는 이름에 현혹되지 말 것. 그때부터 나는 슈퍼히어로(영웅)을 믿지 않았다. 한국 사회를 작동하는 서사인 슈퍼-,  대형 -,  멀티-. 대규모-,  영웅-  따위는 모두 헛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 있는 게 없는 것 " 이요, 그곳은 " 있는 게 없는 곳 " 이었다.  시바, 우리...... 속지 말자. ㅡ  쓰다 보니 감성이 터지는 바람에 첫머리가 주저리주저리 길었다. 각주로 빼자니 아쉽고 삭제하자니 시간이 아까워 내버려둔다. 본문은 지금부터'다. 나의 가설은 한국인이 " 파 사와라 ! " 라고 말할 때 파'라는 단어에서 무의식적으로 파 음(도레미파솔라시도 할 때)으로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곰곰 생각하면 무릎 탁, 치고 아, 할 것이 분명하다. 맞아. 그런 것 같아. 어쩔 ~  나는 한국 사람이 파'를 말할 때 파(pa) 음으로 소리낸다는 가설을 3년 동안 연구했다. 가설을 증명할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지만 이 글의 첫머리'가 길었던 관계로 이 글에 싣지는 않기로 했다.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우리가 파를 소리낼 때 무의식적으로 pa 음으로 소리를 내듯이, 무의식이 지배하는 단어는 꽤 많다. 이것 또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생략하기로 하고 한 가지 예'만 나열하기로 한다. 민들레 ! 사람들은 민들레'라는 단어를 신뢰한다. 민들레에는 소박함, 진실함, 선함 따위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민들레'라는 상호가 들어간 상품은 왠지 무공해, 친자연적 상품으로 인식하게 된다. 왜 그럴까 ?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얘기를 들으면 깜짝 놀라서 노래미도 아니면서 놀라게 될 것이다. < 민들레 > 는 < 믿을래 > 와 유사하다. 우리는 민들레'라는 단어에서 믿을래를 연상하게 된다. 그렇기에 민들레는 상호가 붙은 상품을 보면 믿음에 가는 것이다. 내가 만약에 민 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식 이름을 민들레로 짓겠다. 그 아이는 커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하다(혹은 타인의 믿음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거나). 민 씨 성을 가진 이웃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끝으로 여담이지만 내가 정치인이라면 당명을 " 민(民)들레 " 라고 지었을 것이다. 믿음이 가는 당명이지 않은가 ? 안도현의 << 백석 평전 >> 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이 리뷰를 작성한다. 백석 시인은 소박한 언어를 아름답게 꾸밀 줄 아는 작가'였다. 그가 내 글을 읽었다면 구멍과 파와 민들레에 대한 내 애정에 대하여 격하게 공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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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6-1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놀이는 여전합니다. ㅋㅋ
그나저나 아버님이 영화 간판 그리는 일을 하셨어요? 우와, 그래서 곰발님이 영화를 좋아하시게 된 건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0:08   좋아요 0 | URL
뭐. 부전자전이죠. 어릴 때 영화 무지 봤습니다.. 말놀이 하니 말로리 생각나에요. 왜 산에 오르냐는 기자의 질문에 ˝ 산이 거기 있으니까. ˝ 라고 말해서 유명해진... 자기 이름대로 사는 거죠. 말로리처럼..ㅎㅎㅎ

samadhi(眞我) 2016-06-10 10:11   좋아요 0 | URL
저는 이름대로 못 살아서 만날 욕 처먹는데요. 되게 이상한 그림들 많았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자본에 잡아먹힌 구멍가게였던, 손으로 그린 영화간판이 몹시 그립네요. 가끔 생각 나요. 곰발님은 오죽하실까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0:15   좋아요 0 | URL
나중에 돈이 안 되서 간판가게 차렸어씁니다... 극장 간판 보면 아련하죠. 어릴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곤했었습니다. 글구.. 전 극장 간판 사라지고 나서 영화에 대한 향수를 접었습니다..

채송 2016-06-1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의 소쉬르...시니피앙의 미끄럼을 타고 ....또한 랑그와 빠롤..ㅋㅋ...내가 뭔말을 함?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0:17   좋아요 0 | URL
채 씨 성을 가지신 분들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채송`이란 이름은 안 좋습니다 한국인은 채송을 죄송으로 무의식적으루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0:18   좋아요 0 | URL
한국의 소쉬르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소지섭도 괜츈하긴 하지만..ㅋㅋ

강가딘 2016-06-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분 차이일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그런거 같아요

구멍가게는 무슨 무슨 상회 이랬던거 같은데. 진짜 없는게 없었는데

슈퍼마켓은 이름만 바꾸었을지는 몰라도 없는건 진짜 없드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0:53   좋아요 0 | URL
풍부해진 사회로의 변화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멍가게 일 때는 다 없이 살았잖습니까. 그만큼 물건도 없었죠. 옛날에는 신발하면 검정고무신 아니면 흰 고무신이었으니까. 그때가 구멍가게의 시대였고,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신발 종류가 무지하게 많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슈퍼마켓의 시대라고나 할까요..물건은 많은 데 마음에 드는 것은 없는 시대....

북깨비 2016-06-1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곰곰님 글 읽고 지금 파를 몇번이나 소리내서 말해봤는지 몰라요. 그러다 혼자 웃겨서 막 웃다가 ㅋㅋㅋㅋ 파는 진짜 좀 하이톤이 되는 거에요. 의식해서 그런가? 귤, 콩, 총, 중, 종, 해, 달, 별 한글자 단어들이랑 앞뒤로 연달아 말해봤는데 파는 뭔가 무의식중에 톤이 하나 더 높게 나가서 진짜 도레미파의 파 정도로 느껴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3:55   좋아요 1 | URL
거 보십셔. 내가 3년 간 비교 연구했따니까요.. 파가 꼭 파음으로 사람들이 말하더라는 거..
이 눈썰미는 정말 어디서 내가 주워들은 게 아니라 어느날. 드라마에서 파를 총총 썰어야지.. 이런 대사를 하는데 아니 그 파`가 파음하고 똑같더라고요... 그 후. 3년간 식음을 전페하고 오로지 파-파 가설`에 대해 연구했씁니다..

stella.K 2016-06-1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그냥 웃다가 갑니다!
아, 물론 좋아요도 하나 추가하고.
그런데 이 글 갖고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 받기는 어렵겠군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3:57   좋아요 0 | URL
언겐가는 말놀이로 이달당선작이 되는 날을 위해서 불철주야 녹력해야겠씁니다..ㅎㅎㅎㅎ

오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파 소리 많이 내시는군요..ㅎㅎ

시이소오 2016-06-1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동안 연구하셨다니 믿기지가않네요ㅋ ㅋ

민들레 좋네요. 당명으로 ^^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4:16   좋아요 0 | URL
16년 동안 연구했다면 소쉬르 연구상을 수상했을 겁니다.. ㅋㅋ

기억의집 2016-06-1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언제 읽어도 허풍 속에 뼈 있는 깊은 패러독스가 저를 웃게 만들어요. 저는 전체적으로 공감하는데 구멍가게만은.. 사실 그 때는 우리가 몰랐던 품목이 많아서 구멍가게에 다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요. 우리 동네에 영재커리큘럼 학원의 명칭이 민들레의 영어명칭이던데. 곰발님의 의견대로 우리가 민들레 믿을래에 세뇌되서 그런 영어명칭을 도입한 게 아닐까 퍼뜩 떠올랐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5:46   좋아요 0 | URL
바로 그겁니다. 바로 그거예요. 제가 언젠가 자본주의란 선택의 수가 늘어나서 선택권을 가진 소비자`가 스트레스를 받는 사회`라고 정의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란 선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인데.. 강요할 수록 그만큼 소비자는 원하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짧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ㅎㅎㅎㅎ


제 이웃은 민들레 하면 조선인민공화국이 생각난다고... ㅎㅎㅎ 촌스럽다나. 뭐래나..

기억의집 2016-06-10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저도 파를 여러번 소리 내어 읽어봤어요. 파 좀 줄래, 파 살까, 냉장고에서 파 꺼내 줘. 그래서 말인데 정말 파라고 말할 때 마다 한 옥타브 올라가네요. 파 ~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8:24   좋아요 0 | URL
거봐요. 내 말이 맞다니까요... 무 좀 줄래, 라고 말한 후 파 좀 줄래, 라고 해 보십셔. 무 음`보다 파 음`이 한 단계 높습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mi 음으로 소리낸다면 파는 분명 파 음입니다. ( 어디서 일상 대화는 데시벨이 미음이라고 했던 정보를 어디서 본 기억이 나는데 찾아보니 없군요... ) 하튼 우리가 일상에서 파 데시벨로 소리를 내지는 않잖습니까. 엄청 피곤할 거예요..

이거 제가 발견한 거니 파- 파 이론 말할 때는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농담입니다.. ) ㅎㅎ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 비평선 시네마 4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박창학 옮김 / 이모션북스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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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보다는 투포환 선수 :


   






선생님, 이젠 죽으셔야죠




                                                                                                        문장의 첫 글자를 쓰고 난 후에 한 문장의 끝을 알리는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소요된 글자 수가 대략 삼백 육십 음절, 열 세 줄(한 줄에 대략 30字).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고,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고,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고, 이제는 정말 마침표를 찍겠지_ 라고 믿는 순간 다시 쉼표를 찍는 스타일. 난독과 오독을 유발하는 만연체로 악명 높은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때,  << 보봐리 부인 >> 을 읽다가 플로베르의 만연체에 질려서 욕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시게히코에 비하면 플로베르는 김훈이요, 발자크는 고은1)이다.

 ​ㅡ 한국 최초의 코리안 좀비 배우

 

< 만연체 >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어 잠시 여러분에게 소개할까 한다  :  허장강이라는 배우가 계셨다. 전 세계를 구름처럼 떠다니면서 연기 배틀을 뜨신 분이지. 출연 분량에 대한 욕심이 워낙 많으셔서 이 양반이 필름통 여러 개 작살내셨다. 이런 식이다.  딱, 카메라 앞에 서면 말이야.  너 총알 ?  나 허, 허허허허허장강이야. 총알이 빗발치며 몸을 관통해도 가슴 부여잡고 무조건, 무조건, 카메라 앞으로 가.  그리곤 좆나게 애드립 치는 거야. 감독 뿔날 때까지 ! 그런 무대뽀 정신......    그게 필요하다. "

총알이 심장을 관통하면 " 꼴까닥 " 하며 즉사(卽死)해야 마땅하나 곤조 하나로 버티신 몸. 총 맞고 비틀거리다 쓰러져 눈을 감나 싶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애드립을 치시고, 이제 끝나나 싶으면 다시 눈을 부릅뜨고 애드립을 치시고. 눈치고 코치고 닥치고 레디-고 외치면 연기를 불태우시는 분.  그렇게 < 즉사 - 씬 > 을 에로 영화의 < 정사 - 씬 > 보다 길게 연기하셔서 감독으로서는 애로 사항이 많았다고. 하스미 시게히코 문체가 영락없이 허장강을 닮았다. 맛보기로 한 문장을 소개하기로 한다. 놀라지 마시라. 지금 읽을 문장은 한 문장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애타는 갈망으로서 존재하는 비평 체험의 발걸음은 어느 특정 작품의 잔상과의 거의 우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우에 의해 계발되는 것이면서 그 발자국은 목표로 삼는 작품 자체의 표면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며, 말하자면 유동하는 무명성에 환원된 소위 작품 일반의 바다, 그것도 수면만이 아니라 밑바닥조차도 가질 수 없는 바다의 한복판인 것으로, 그러니까, 항적을 스스로 지우는 것으로써가 아니면 전진은 있을 수 없는 이 발걸음은 벽두부터 덮쳐 오는 존재의 붕괴 감각을 생의 유한성의 틀림없는 증거로서 받아들여 그것을 고뇌나 쾌락과 바꿔 치기 하고 싶어지는 유혹을 배제하면서 역시 보이지는 않는 스스로의 종식의 땅을 향해 오로지 미끄러져 가는 운동에 다름 아니게 되어 말하자면 침묵에 의한 침묵에의 거점이라고도 할만한 이 시도는, 인간의 온갖 행위 중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또 광포한 색조로 채색되어 있음에 분명한 어떤 것이다.


- 영화의 맨살 ㅡ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비평선, 26쪽


위 문장 속에는 < 허장강 선생 > 이 수없이 출몰한다. " 선생님, 이 씬은 즉사 장면입니다. 북조선 괴뢰군이 선생님에게 총을 난사.. 총알이 총..... 그러니까, 49방을 맞고 죽는 장면이란 말입니다. 즉사'라고요, 즉사 ! "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다.  그래도 우리의 허장강 선생은 화면 욕심이 많아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카메라 앞으로. 이런 문장을 구사하는 대표적 한국 평론가로는 정성일로 문장 스타일이 서로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스미 시게히코,  정성일이 꽤 존경하는 인물이란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통한다. 

하스미 시게히코와 정성일의 결정적 차이'는 좋은 눈에 있다.  정성일이 < 게의 눈 > 이라면 시게히코는 < 매의 눈 > 이다. 시게히코는 한마디로    :   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영화를 분석하고 걸작을 골라내는 선구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음정은 불안하지만 음색에 탁월한 슈퍼스타 k 도전자' 같다는 느낌. 그의 선견과 식견 앞에 무릎 탁, 치게 된다.  특히,  << 영화작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 라는 글은 그가 왜 일본 영화평론가의 대부인지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 글을 작성한 년도가 198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평론이다.

한갓, 오락 영화 배우 혹은 감독으로 저평가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영화 작가적 야심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한 것은 시게히코의 안목2) 이었다.    여기에 롤랑 바르트-적/혹은 -식  사유/혹은 기호'가 덧대어져 텍스트를 풍요롭게 만든다. 필름의 표층에 흐르는 기호를 낚아채는 식견이 탁월하다.  우려와는 달리 << 영화의 맨살 >> 은 뒤로 갈수록3) 악명 높은 만연체가 간결하게 변해서 읽기에 수월하다.  읽기 어려운(이해하기 어려운) 만연체라는 비판을 의식하고 그 비판을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장발을 짧게 자르니 얼마나 보기 좋아. 

형도 비판을 수용하고 세월이 지날수록 문장을 다듬었는데 아우인 정성일은 비판을 수용할 생각이 아직까지는 없는 모양이다.  정성일은 여전히 시게히코의 초기 문장 스타일을 흉내 내고 다닌다.  정성일 평론을 읽다 보면 8월 복날에 한없이 늘어진 엿 같다.  무슨 " 똥 배짱 " 인지 모르겠다.   끝으로 허장강 선생은 훌륭한 배우'다. 그는 스크린에서 빛났다.  출연 분량은 주연 배우보다 적었지만 주연 배우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를 스크린이 아닌 문장 속'에서 만나는 것은 그닥 반갑지 않다.  마침표를 < 공 ball > 으로 비유하자면 공은 무거울수록 좋다.  멀리 던질수록 결과는 좋지 않으니까. 

야구선수보다는 투포환 선수가 더 좋은 문장을 만든다 ■

​                      

1)            만연체라면 플로베르보다는 발자크가 더 지독한 편이긴 하다만, 중2 때 << 보봐리 부인 >> 을 읽었으니 만연체 때문이라기보다는 텍스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그나저나 하스미 시게히코는 플로베르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네 ?!

2)           시게히코는 << 영화 작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 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 를 분석하면서 동시대성이 아닌 반시대성에 주목하면서 이 영화가 탈역사적'이라고 지적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의상은 계급, 젠더, 지위 따위를 철저하게 탈색시킨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옷을 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니라 맨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_ 라고 시게히코는 지적한다. 탁월한 분석이다.

3)           70년대 글은 읽기 힘든 반면 80년대 이후부터는 문체가 간결한 쪽으로 변했다(옛날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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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6-0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장강 출연의 영화를 언제부터 보셨나요?
저는 어렸을 때 그가 아직 죽기 전에 몇몇 작품을 본 것 같긴한데
그렇게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거든요.
일부러 따로 챙겨 보셨나요?

이 작가에게도 편집자가 있었을텐데 편집자와 많이 싸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만연체 문장은 안 된다고.
그나마 쉼표라도 찍어줬으니 다행 아닙니까? 그거 안 찍어주면 읽다 죽습니다.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7 15:22   좋아요 0 | URL
허장강 영화를 챙겨본다기보다는 토크프로에서 허장강 얘기를 해주더군요.
수류탄 터져서 소대원들 죽으면 남들은 다 그 자리에서 으악 하고 죽는데..
허장강은 슬쩍 일어나서 비틀비틀 카메라 향해 오다가 죽는 식...
촬영 분량 욕심이 많았다 하네요..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7 15:46   좋아요 0 | URL
아마. 이 사람의 개성이라 생각해서 내뒀나 봅니다.
뭐, 스팩이 워낙 빵빵해서....
글구 명색이 불문학 박사인데 편집자가 고치자고 했으면 지랄했을 것 갓습니다. 엄두를 못냈을 거임..

시이소오 2016-06-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다가 한쪽으로 미뤄둔 책인데
곰발님 리뷰를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7 15:45   좋아요 0 | URL
저도 앞부분 좀 읽다가 혀를 내두른 다음 지금에서야 다시 읽었습니다. 앞부분 부터 읽지 마시고 그냥 호기심 나는 챕터부터 보십시오. 그래야 읽을 수 있음... 앞부분은 진짜.. 뭐 이런 인간이 있나 했습니다.

samadhi(眞我) 2016-06-0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문장 이라고 하여 그냥 쓱 넘겼어요. 그랬다가 괜찮다하셔서 다시 찬찬히 읽었으나 역시 그런 문장은 읽고 싶지가 않네요. 눈에 안 들어와요. 글을 교정할 때 간결한 문장을 늘 강조하는 터라 이런 글을 차마 못 읽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7 21:1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걸 번역한 사람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왜 이런 문장을 구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문학자여서 그런가 ?

samadhi(眞我) 2016-06-08 00:08   좋아요 0 | URL
일본글의 특성일 수도 있어요. 다는 아니겠지만. 제가 아는 일본 사람도 만연체를 주로 쓰는데 그분 글 읽으면 짜증이 솟거든요. 문장이 안 끝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8 13:07   좋아요 0 | URL
일본 문체가 그렇군요. 일본은 왜 띄어쓰기 안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길게 쓰면 진짜 골때릴 텐데요... 하긴 세로쓰기이니 띄어쓰기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samadhi(眞我) 2016-06-08 13:09   좋아요 0 | URL
사실 우리도 세로쓰기였는데요. 미쿡식으로 바꿔버리는 바람에.
차라리 그게 띄어쓰기 법칙에 덜 구애받는다면 괜찮겠네요.

samadhi(眞我) 2016-06-08 13:10   좋아요 0 | URL
일본말이 그런 듯해요. 바로 말하면 될 걸 빙빙 에둘러서(지나치게) 말하니까 속 터져요. 지나치게 예의 차리는 사람 옆에 있으면 불편하잖아요. 저처럼 싸가지 없는 사람도 불편하겠지만.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8 13:14   좋아요 0 | URL
다시 생각해 보니 세로나 가로나 비슷하겠네요. 전 그냥 띄어쓰기 안 했으면 합니다. 아니면 1음절마다 띄어쓰기하던지...ㅎㅎㅎㅎㅎ


+


저도 에둘러 말하는 걸 못 참는 셩격이라... 항상 요점이 뭐야... 그러니까 말하고자 하는요점이 뭐냐고.. 이런 소릴 자주해서 싸가징없다는 소릴 듣곤 합니다...

기억의집 2016-06-09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장강이 불문학 박사였어요????? 오홋. 저는 말만 들었지 허장강영화는 못 봤어요. 허준호가 그의 아들이죠! 허준호도 활동은 뜸하네요. 한때 최민수와 비교도 하더니. 글고 저 만연체 글 도저히 독해불가. 세번 읽었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재평가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든 사람인가요? 저는 이스트우드 영화는 아무리 봐도 그저그래서... 잘 모르겠더라구요. 정성일도 변해야 먹고 살죠. 옛날 스탈 고수해봤자 먹혀야말이죠. 요즘 애들은 듀나도 엄청 까이던데. 지난 번에 다음에서 뭐 읽는데 듀나 까이는 거 보고 놀랬네요. 너무 어렵게 쓴다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09:54   좋아요 0 | URL
허장강이 아니라 하스미 시게히코를 말하는 것이었ㅇ어습니다..ㅎㅎㅎㅎ..... 전 가끔 영화진흥원에서 옛 고전 영화 틀어주는데... 가끔 가서 봅니다.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

네에. 클린드 이스트우드를 작가로 명명한 분이 시게히코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클-빠입니다.. ㅎㅎㅎㅎㅎ 듀나도 이젠 어려운 글을 쓰는 사람에 속하는 군요. 의외인 걸요. 듀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마당이라면 정성일은 뭐... 최고 갑이겠네요.. 확실히 요즘 젊은 사람은 문자 해독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젠 문자를 대신해서 이모티콘(그림문자)이 문자를 대신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기억의집 2016-06-1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댓글 보니 허장강 이야기한 후에 불문학 박사라 써서... 편집자가 영화편집자인 줄 알았네요

기억의집 2016-06-1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스트우드영화에는 남자들만 아는 뭔가가 있아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10:01   좋아요 0 | URL
이스트우드가 마초에 공화당 지지자이다 보니 ... 뭔가 남자의 굵직한 감성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ㅎㅎ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하나. 외국에서 살다 왔다는 데 지나치게 오리지날 토종 한국어 발음을 구사해서 의심스러운 친구'가 있었다(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는 잊어버렸으나 진돗개 만한 도마뱀과 놀았다는 말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도마뱀이 아니라 이구아나인 것 같다. 이구아나가 도마뱀인가?!).

한국어는 물론 영어 발음도 뭔가 토종 냄새'가 났다. 아빠 따라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놈이 " 반기문 - 잉글리쉬 " 를 하고 있으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차라리 " (송)성문 - 잉글리쉬 " 를 배운 놈의 발음이 더 < 잉글잉글 > 했다. 너 외국에서 살다가 온 놈 맞냐 ?  우리가 외국에서 온 녀석'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 녀석의 혓바닥이 아니라 손바닥에 있었다. 그는 수업 시간에 궁금증이 생기면 가차없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 슨상님, 쪼까 질문이 있는데요 ! " 이 낯선 풍경. 그리고 이구동성. " 저 녀석, 외국에서 살다 온 놈 맞네 ! "  질문에 대처하는 선생의 자세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 질문은 수업 끝나고 해라. 수업 방해하지 말고....... "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처음 목격한 해'였다. 둘. 강의를 마치면 교수는 짧은 질문을 던진다. " 질문 ? " 질문하는 학생이 없으면 교수는 또 짧게 되묻는다. " (질문) 없어? " 조용 ~  " (수업) 그만 ! " 한국 사회가 질문하지 않는 사회가 된 지는 이미 오래.  <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한 학생 > 이라는 프레임보다는 < 질문하는 방식을 가르치지 않은 선생 > 이라는 프레임이 더 선명한 틀'이다. 한국 사회는 사회 구성원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선생은 학생에게 질문하는 방식을 가르치지 않고, 기득권은 노동자에게 묵묵히 일만 하는 노동자상을 요구한다.

또한 남자는 말이 많은 여성을 < 칠거지악 >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니 북어와 마누라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뿐이 아니다. 강도는 소리 지르면 죽인다고 협박하고 강간범은 가만히 있으면 목숨은 살려준다고 협박한다.  이래저래, 권력 피라미드 구조에서 상위 포식자(피억압자)는 하위 포식자(억압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하위 포식자(남성) 또한 자신보다 더 낮은 최하위 포식자(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먹고 먹히는 관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구조가 침묵의 카르텔'이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바로 침묵이다.

침묵은 약자의 굴종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강자'가 휘두르는 무기이기도 하다. 하수는 상대를 큰소리로 협박하고, 넘버3는 상대를 부드럽게 협박하고, 넘버2는 상대를 손짓으로 협박하며, 넘버원은 눈짓으로 상대를 겁박한다. 이처럼 침묵은 약함의 징표이면서 동시에 강함의 표시'이다. 그 결정체는 바로 세월호 침몰 사건'이었다. 승객의 생명을 자신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야 할 승무원들이 승객에게 명령한 것은 가만히 있어라, 라는 명령이었다. 질문은 한자로 본질 質에 물을 問으로 구성된 말이다. 본질에 대한 물음이 질문인 셈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구의역 포스트잇 시위와 강남역 포스트잇 시위는 세월호의 침몰이 침묵에 대한 강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선행 학습한 결과'다. 그들은 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2)을 선택했다. 침묵하면 죽는다는 것,  어떻게 해서라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꾹꾹 눌러 쓴 글씨가 어쩌면 침묵을 강요하는 주먹과 맞서 싸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한 것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은도 아니다. 더더군다나 침묵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던 한국 사회'라면 침묵은 동이 아니라 똥이다. 이제 질문을 던지자. 왜 그러셨어요, 네에 ?  질문은 어떤 식으로든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물음이다 ■


 

 

 

                                        

1)        이구아나가 도마뱀인가?! 헷갈린다.

2)       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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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6-07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끝없이 뱉어대는 말이 지나쳐 침묵 좀 해줘야 합니다. 요즘 말하지 않음을 실천해보려합니다. 말이 많다보니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고 실수를 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7 09:07   좋아요 0 | URL
진아 님 수다쟁이시구랴 ? ㅎㅎㅎㅎㅎ 말이 많아야 스트레스 해소되고 여러 모로 좋습니다..

samadhi(眞我) 2016-06-07 09:16   좋아요 0 | URL
근데 지나치게 많아서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독이 되네요. 지난번에 서울 갔을 때 제가 말 많아서 울 언니가 귀 아프대요. 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7 09:2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글습니까 ? ㅎㅎㅎㅎㅎ 귀가 아플 정도면 안 되는데...ㅎㅎㅎㅎㅎ

비로그인 2016-06-0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디어가 할 수있는 가장 큰 횡포가 침묵이라는 글이 생각나네요. 요즘 시끄러운 혐오 논쟁이 계급의 문제를 흐리는것 같아 불만이 있었지만 침묵보다는 백배낫다는 것에 정말 동의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7 09:06   좋아요 1 | URL
그렇죠. 나쁜 언론의 대표적 수작이 외면이죠. 보도를 아예 안 하는 거.. 요즘 지상파 보면 절절히 느끼게 되더군요..

채송 2016-06-10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국에서 온 어떤 아줌마가 있었는데 누가 무슨 표현을 하면 꼭 질문을 해요. 그렇고 그런 느낌이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이유를 5가지만 말해보라고요. 제가 바다를 좋아한다니까 그 질문을 해서 좋아하는 이유 5가지 말하느라 진땀을 뺏지요. ㅎ 저도 의문이 많아서 질문을 잘 하는 편인데요, 의사나 교사나 목사나 질문을 달가와 하지 않는 듯 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0 09:50   좋아요 0 | URL
특히 의사들. 환자가 질문을 하면 질색을 하죠. 자기 목숨에 달렸기에 외계어나 다름없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하면 마치 모욕감을 느낀다는 표정을 짓고는 해서....
짜증났던.. 기억이.... 권력의 상위층일수록 질문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박근혜 보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