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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10 - 영국 감성 매거진 ㅣ 시리얼 CEREAL 10
시리얼 매거진.오영욱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Cereal vo.10 / 시리얼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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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오기사와 콜라보가 이뤄진 시리얼 10호.

메인 기사 총 7꼭지 중 첫 번째 기사인 북 캘리포니아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는 발행인의 말처럼 그냥 듣기만 해도 가보지 않고서도 무한 감성세계에 빠지게된다. 해당 기사를 쓴 사람은 시큰둥해진 연인과 함께 '빅서'에 다녀왔다고 말하면서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보다 조금 서먹해진 오랜 연인이 함께 해돋이와 일몰을 보면서 사랑보다 더 가슴벅찬 무엇가를 공유하는 그 기분을 누렸다고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연인과 함께 있어서 벅찬것이 아니라 경관 그자체로 벅찼던 때가 언제였던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시리얼의 최강점 뭐니뭐니해도 여백이다. 한 페이지에 사진이 가득 채워지기도 하지만 마치 하늘처럼 텅빈 공간을 배치하는 방식이 북캘리포니아 빅서와 정말 잘 어울렸다. 이어지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방문시 들려볼 만한 숍 스토리도 좋았다. 오클랜드에 있는 서점 'BOOK/SHOP'. 서점이름이 북숍이라니 심플하면서도 명확해서 좋다. 몇 해전부터 자연스럽게 사모으는 에코백이 이곳에도 당연 있고 무엇보다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해 2013년 오프라인 매장이 생겼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 국내에는 인터파크가 온라인에서 출발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는데 초반에 비해 독자적인 개성을 많이 상실한 것 같아 아쉬웠다. 오클랜드 북숍은 별도로 선별한 도서 80~100권 정도만 내놓고 판매하며 무엇보다 빈티지 가구와 예술품이 공존하는 매장이라고 한다. 사진만 봐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베스트셀러나 출판사 밀어주기 식의 매대로 운영되는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아 꼭 방문하고 싶었다.
이번 호에는 청바지와 거의 동일한 무게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 '리바이 스트라우스 앤드 컴퍼니'관련 기사도 실려있다. 현재 리바이스사에서는 자료집속에서 존재하던 2만 벌에 달하는 옛 디자인 중 몇 벌을 복제해서 소생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데 재미난 사실은 잘팔릴 것 같은 제품,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닌 오히려 유행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고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미국의 역사를 파고들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습니다." 수석디자이너 폴 오닐의 답이다.
마지막으로 오기사의 기사를 빼놓을 수 없다. 오기사가 소개한 장소는 '구로카와 온천'이다. 책을 읽으면서 음성지원이 되면 참 좋겠다 싶을 때가 있는데 오기사의 기사가 딱 그랬다. 빗소리, 바람소리를 이야기하며 우리가 구로카와 온천을 글이 아닌 직접 눈으로 피부로 느껴야 할 까닭을 다름아닌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시간을 제거한 채 그 소리 사이에 있었던 경험을 글이나 사진으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구로카와 온천마을로 직접 찾아가야 하는 이유다.'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불가능한 독자에게는 조금 잔인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왠지 필자가 이렇게나 당당하게 말해주길 은근 바라는 사람들도 있기에 읽는 동안 어떤 소리였을까를 계속 상상하며, 사진과 글속에 푹 빠져들었다. 그런가하면 오기사는 구로카와 온천마을을 이야기하며 자연, 침묵 그리고 오래된 것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 그리 크지 않은 온천마을은 몇 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고 아침에 들렸던 장소, 어제 들렸던 장소를 계속 반복해서 지나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까와는 다른, 어제와는 다른 길을 걷게되는 기분속에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도 말한다.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곳에 조금 지쳤다면 구로카와 온천마을에 푹 빠져 며칠을 보내다 오면 좋을 것 같다.
그동안의 시리얼은 내게 있어서만큼은 설레임 혹은 벅찬 기대감 같은 것을 주는 책이었다. 평범한 소품과 장소인데도 시리얼에 담겨져 있으면 참 멋져보였었다. 눈이 정말 정화되는 기분이었는데 이번호는 좀 달랐다. 명상이나 종교잡지도 아닌데 마음이 평화롭고 뜬구름 잡기식의 여행계획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고 싶어졌고 필자들이 힘주어 강조하는 여행지를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번호는 오려서 액자에 넣어둘 풍경이 정말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