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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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을 가르는 저 엄청난 대립을 문명하게 본 사람

 

하나의 원칙을 모든 예술 작품의 필연적인 삶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이 원칙으로부터 예술을 추론해내는 데 열심인 사람들과는 반대로, 나는 시선을 그리스의 저 예술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로 돌리고 그들에게서 그 깊은 본질과 최고의 목적에서 두 개의 상이한 예술 세계의 생생하고 분명한 대표들을 인식한다. 아폴론은 내 앞에 개별화의 원칙을 미화하는 수호자로 서 있다. 반면 디오니소스의 신비한 환호 아래서 개별화의 족쇄는 산산이 부서지고 존재의 어머니들에게, 사물의 가장 내밀한 핵심에 이르는 길은 열린다. 아폴론적 예술로서의 조형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로서의 음악을 가르는 저 엄청난 대립을 분명하게 본 사람은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 신들의 상징의 안내를 받지 않고도 다른 예술들과 구분되는 성격과 기원이 음악에 있다고 인정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다른 예술들과는 달리 현상의 모사가 아니라 의지의 직접적인 모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물질적인 것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것을, 모든 현상에 대해 물 자체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310쪽). 리하르트 바그너는 <베토벤>에서 음악은 결코 미의 범주가 아니라 다른 조형 예술과는 전혀 다른 미학적 원칙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고 확인하면서 모든 미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에 (좀더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이와 더불어 미학이 비로소 시작된다) 자신의 낙관을 찍어 그것이 진리임을 보증했다. 비록 잘못된 미학이 오도되고 왜곡된 예술의 손안에서 놀아나면서, 조형 세계에서나 통하는 미의 개념을 가지고 음악에게 미술 작품과 비슷한 효과, 즉 아름다운 형식에 대한 즐거움을 불러일으킬 것을 요구했지만 말이다. 저 엄청난 대립을 인식한 후 나는 그리스 비극의 본질, 그리고 그와 함께 헬레니즘의 수호신의 가장 심오한 현현을 좀더 가까이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왜냐하면 이제야 비로소 통상적인 미학의 미사여구를 넘어서 비극의 근본 문제를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는 마법의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는 이상할 정도로 독특한 시선으로 헬레니즘적인 것을 통찰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거만한 체하는 우리의 고전적-헬레니즘적 학문이 이제까지 주로 그림자 연극과 피상적인 면만을 보고 즐길 줄 알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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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지 않는 비극적 체념과 예술에 대한 갈망으로 전환하는 것

 

이제 우리가 그리스인들에게서 원기를 얻은 힘찬 눈으로 우리 주변에 넘쳐흐르는 그리스 세계의 가장 높은 영역들을 바라보면, 소크라테스에게서 모범적으로 나타나는 강력한 욕구, 채워지지 않는 낙천주의적 인식욕이 비극적 체념과 예술에 대한 갈망으로 전환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쨌든 이 욕구는 낮은 단계에서는 예술에 적대적이고 특히 디오니소스적, 비극적 예술을 내면적으로 혐오할 수밖에 없다. 이는 소크라테스주의가 이아스킬로스의 비극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실례를 들어 서술한 바 있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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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 앞에 서면

 

소크라테스의 영향은 그 순간까지, 아니 미래에 이르기까지 마치 석양에 점점 더 커져가는 그림자처럼 후세로 퍼져갔으며, 예술의 ㅡ 그것도 형이상학적인,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의 예술의 ㅡ 새로운 창조를 강요했고 자기 자신의 무한성으로 예술의 무한성까지 보장해주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기 전까지, 모든 예술이 호메로스에서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인들에게 내면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그리스인들이 의미하는 바는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인들에게 의미했던 바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거의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의 단계는 깊은 불만감에서 한번쯤은 그리스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쳐본 경험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 앞에 서면 자신이 이룬 모든 것, 외면상 완전히 독창적으로 보이는 것, 진정으로 감탄할 만한 것들이 갑자기 색채와 생명을 잃어버리고 실패한 모사품으로, 회화로 오그라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기 나라의 것이 아닌 것은 모두 "야만적"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저 오만한 소민족에 대해 항상 새롭게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들이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묻곤 한다. 단지 일시적인 역사적 영광, 우습지도 않은 편협한 제도, 풍습의 의심쩍은 건실성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고 심지어 추악한 악덕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민족 중에서 천재가 대중으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그런 존경과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저 민족은 도대체 누구인가?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간단히 처치할 수 있는 독배를 발견하지 못했다. 어떠한 시기, 중상모략, 분노의 독도 저 자족적인 장엄함을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스인들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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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음악을 울려라!"

 

저 폭군적 논리학자 소크라테스는 가끔 예술을 대하면서 공허감 공백감과 아울러 반쯤은 자책감, 어떠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옥중에서 친구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종종 그는 같은 꿈을 꾸었는데, 이 꿈은 항상 "소크라테스, 음악을 울려라!" 라는 말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생애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철학은 최고의 음악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면서, 어떤 신이 자신에게 저 "비속하고 대중적인 음악"을 상기시키려 하나 보다 하면서 그것을 진지하게 믿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감옥에서 양심의 가책을 덜어볼 심산으로 자신이 경시했던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심정에서 그는 아폴론에게 바치는 노래를 짓고 이솝 우화 몇 개를 운문으로 바꾸어놓기도 했다. 그를 이런 습작으로 몰고 간 것은 마신의 경고하는 목소리와 비슷한 것이었으며, 그가 마치 야만인 왕처럼 고귀한 신의 형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몰이해로 말미암아 신에게 죄를 지을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폴론적 인식이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꿈에 나오는 그 말은 논리성의 한계를 우려하는 유일한 징표다. 그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했을 것이다.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합리적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논리학자를 추방해버린 지혜의 왕국이 있지 않을까? 예술은 학문과 상관성이 있으며 혹 그것을 보완하는 것은 아닐까?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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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파괴

 

비극 속으로 한번 침투한 낙천주의적 요소는 비극의 디오니소스 영토를 서서히 잠식하고 결국 그것을 자기 파멸로, 즉 시민극으로의 투신 자살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미덕은 지식이다. 죄는 무지에서 저질러진다. 미덕을 갖춘 자는 행복한 자다"라는 소크라테스 명제의 논리적 결론만 상기하면 된다. 낙천주의의 이 세 근본 형식 속에 비극의 죽음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이제 덕 있는 주인공은 변증론자여야 하고, 미덕과 지식, 신앙과 도덕은 필연적이고 가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초월적 정의라는 아이스킬로스의 해결책은 상투적인 자동 해결사인 신을 사용하는 "시적(詩的) 정의"라는 평면적이고 파렴치한 원칙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소크라테스적-낙천주의적 무대 세계에 비해 이제 합창단과 비극의 음악적, 디오니소스적 토대 전체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그것은 우연적인 것으로, 비극의 기원에 대한 없어도 좋을 추억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합창단을 비극과 비극적인 것 자체의 원인으로 생각할 때에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소포클레스에게서 합창단을 둘러싼 당혹감이 역력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는 이미 그에게서 비극의 디오니소스적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징표다. 그는 과감하게도 합창단을 등장 인물로, 배우로 새롭게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합창단은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나와 무대 위로 올라간 듯이 보였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가 합창단에 대한 이런 견해에 찬성했을지라도, 이로써 합창단의 본질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소포클레스는 매번 자신의 연극을 상연하면서, 또 전승에 따르면 어떤 책에서도 합창단의 위치를 이와 같이 변화시킬 것을 추천했다고 하는데, 이는 합창단의 절멸에 이르는 첫걸음을 뗀 셈이 된다. 그 뒤를 이어 에우리피데스, 아가톤과 새로운 희극에서 합창단의 파멸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낙천주의적 변증론은 삼단논법의 채찍을 휘둘러 음악을 비극에서 추방한다. 즉 그것은 비극의 본질, 즉 디오니소스적 상태의 유일한 표현이며 형상화요, 음악의 가시적 상징화이며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꿈같은 세계로 해석될 수 있는 비극의 본질을 파괴한 것이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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