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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내 얼굴 ㅣ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스타가 되지 않아도 스타 하나씩 갖고 있는 것이다. 내 별이 저 우주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듯이, 내 열정도 깊은 속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을
테다. (140쪽, 「스스로 반짝이는 별」중에서)
한때는 어리석게도 짧은 글을 쓰기 쉬운
글이라 여겼다. 낙서나 메모가 아닌 주제가 있는 짧은 글의 위대함을 몰랐던 거다. 그래서 작가의 산문집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유머에 감탄하고 놀란다. 내게는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것으로 알려진 소설가 김종광의 『웃어라, 내 얼굴』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하게 쓰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20년 내공이라는 게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구나. 작가에게
글은 매일 먹는 밥처럼 확인할 수 없는 공기 같은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이 한 권의 책을 만든 산문이 1500개의 그것에서 추리고 추린
것이라니.
이 책은 생활밀착형 에세이라 하겠다. 진실로
그러하다. 특히 1부 ‘가족에게 배우다’로 묶은 글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가족을 발견하는 독자는 나뿐이 아닐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작가가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노고에 대해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쉽게 떨어진 단추에 대한 추억이나
일을 끝내고 구멍이 난 양말이나 찢어진 아이의 옷을 꿰매주던 어머니의 바늘을 이야기할 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서로 다른 옷에서 떨어진
단추를 모아놓은 통, 체했을 때 소화제가 아닌 바늘로 손을 따주던 기억이 입체적으로 살아나 내 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런가 하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 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서 나는 작가의 아내처럼 은행 대출을 생각했다. 웃음이 나면서도 아, 그놈의 대출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하고 서글펐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그 시절을 반추하는 모습도 아련했다. 연필을 쥐고 글씨를 그리며 배우는 모습이나 나쁜
시력이 고스란히 유전되어 안경을 쓰고 힘들게 숙제를 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아이 덕분에 주말마다 밖으로 나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즐겁다.
2부 ‘괴력난신과 더불어’에서는 신변잡기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경탄할 만한 사유가 담겼다.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사탕에 대한 글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사탕은 어린아이를 병원에 가게 만든다. 사탕은 청년을 사랑에 빠트린다. 사탕은 장년을
위로한다. 사탕은 늙은이의 친구가 된다.’ (「사탕」중에서) 사탕이라는 사물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 작은 사탕에 그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니. 나는 과연 사탕에 대해 뭐라고 쓸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3부 ‘무슨 날’은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다양한 날에 대한 글로 엮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실시하는 선거가 있는 날에는「벌금」이란 제목으로 투표를 독려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영어로 쓰인 간판, 상품에 대해 속상한 마음이 더욱 크게 와닿는 한글날에는 「우스운 날」이라는
제목으로 토로한다. 작가가 거론한 날들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어떤 날은 그저 공휴일만 내게 다가왔고 어떤 날은 그런 날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책마다 내 집착이 묻어 있다. 책 한 권을
꺼내면 그 책의 내용은 가뭇해도 그 책을 소유하게 되었을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술 마시고 연애할 때는 하나도 아깝지 않던 돈이 왜
책 살 때는 그렇게도 아까웠던지 모르겠다. (211쪽, 「계륵」중에서)
소설가라면 책과 글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4부 ‘읽고 쓰고 생각하고’는 그런 글들이다. 이 땅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운명과 자신의 책이 좀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기를 바라는 솔직한 바람이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 바람이 이뤄졌다는 글을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책을 정리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나도 매번 고민하다. 읽지도 않은 책, 읽었으니까 더 소중한 책,
이러저러한 제목을 달고 내 곁에 머무는 책이 있는데 명색이 작가는 오죽할까.
한 줄 한 줄 써가면서 내면의 응어리나,
자유의지를 끄집어낸다. 내면의 응어리를 분쇄하고, 자유의지를 마음껏 실현한다. 그러니까 글은 내면의 해우(解憂)인 셈이다.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칭찬을 못 받아도, 상을 못 타도, 아니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고 혼자만 읽고 보아도, 즐거운 일이다. 누구를 위해서 아니라, 자신을 위해
쓴 것이고, 쓰는 자체가 즐거웠던 것이다. (290쪽,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중에서)
나는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읽은 책에 대한 글, 혹은 짧은 메모 비슷한 생각을 쓰기도 한다. 어느 시절에는 나만의 문장을 갖겠다고 벼르기도 했다. 이런
에세이를 읽으니 더 많이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작가의 글처럼 어떤 보상이 없더라도, 누군가 읽어주는 이가 없더라도, 쓴다는 게 중요하다.
일기처럼, 편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