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열정을 말하다 인터뷰로 만난 SCENE 인류 1
지승호 지음 / 수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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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 한국영화가 55% 상영되었다. 헐리우드가 맥을 못추는 곳은 드문 현상인데...

올해는 왕의 남자와 괴물에 힘입어, 77%를 넘었다는 말을 한다. 대단한 한국 영화다.

그 힘의 근원이 어디인지, 그리고 한국 영화가 왜 갑자기 품질이 좋아졌는지... 지승호가 인터뷰를 했다.

이제 '지승호'란 이름은 <성실하고 풍부한 내용의 인터뷰>의 대명사가 된 듯 하다.

그저 유명인을 만나서 허접한 일상사를 늘어놓은 여성잡지의 인터뷰를 읽고난 느낌이 시내 밥집 가서 후다닥 점심 한 끼 때우고 이도 못닦은 찝찝한 기분이라면,

지승호의 인터뷰를 읽고난 느낌은, 분위기 있는 정식집에서 정찬을 맛보고 후식까지 깔끔하게 먹고도 느긋하게 앉아서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정담을 나누고 난 느낌이다.

괜히 이 감독들과 친해진 느낌이 든다. 사실 나는 유명한 영화, 흥행작만 보기 때문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이 책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봉준호와 류승완 정도였다.

한국 영화가 지금처럼 잘 나가는 이유가 뭘까?

이 책을 읽고 그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한다. 하나는 <학연>이 파괴된 곳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세대 교체에 어렵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꼴통들이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 감독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차츰 시스템을 만들고 하는 것을 읽으면서 한국의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아직도 77%라는 수치는 수치에 불과할 뿐이고, 촬영 현장의 열악함을 끝도 없이 지적된다.
시스템의 부재와 영화 배우나 과장된 광고에 의한 인기도는 아직도 한국 영화가 풀어야 할 과제다.

톱스타가 아니더라도 성공하는 동막골, 왕의 남자가 좋은 징조이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돈 아깝다는 더러운 기분은 상당히 날려준 것 같다.

황정민의 연봉 300만원 받으면서도 행복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영화판이 얼마나 열악했던지를 대변해주는 명언으로 남았다.

취향이 분화된 듯 하지만 소신 없이 입소문을 타고 극장을 찾는 관객의 허접합을 탄식하기도 하고,
스크린 쿼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외제차 타는 넘들의 밥그릇 찾기로 매도하는 무식한 한국인들에게 쓴소리도 날린다.

인간의 영혼을 바꿀 수 있는 감독은 존경스럽지만, 인간의 기분을 바꿀 수 있는 감독은 좋아할 만하다... 던 김지운 감독의 말은 매일 수업을 하면서 수업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내게 큰 화두를 던져 준다.

등화관제 되어 버린 어두운 한국에서 언제 범인을 맞닥뜨릴 지 모르는 공포스런 상황을 맞는 여중생같은 심정으로 영화를 만드는 외로운 감독들. 그들에게서 희망을 읽었다.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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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교사는 이렇게 가르친다
제임스 M. 배너 주니어.해럴드 C. 캐넌 지음, 이창신 옮김 / 풀빛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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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앞에 선 지 벌써 17년하고도 반이 넘었다.

학교도 다섯 번째 옮긴 셈이고, 아이들도 숱하게 만났으며, 끝도 없이 많은 수업을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수업에 대해서, 아이들과의 만남에 대해서 결론은 없다.

매 시간 수업은 어렵고, 한 아이 한 아이 만나기는 쉽지 않다.

수업은 준비해 간 자료를 풀어 버리는 일방 통행이 아니기 때문이고, 아이와의 만남도 문화 전달자로서 주고 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엔 항상 다양한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반응한다. 떠들고, 장난치기도 하고, 눈을 피해 즐기는 놈도 있고, 온갖 고민으로 죽을 상을 한 아이도 있다.

한 마디로, 내가 준비해 간 수업을 열렬히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는 한 두명에 불과하다. 그 한 두명은 개인적으로 나를 좋아하거나, 나의 수업 방식에 매료되어(어디 가나 이런 비정상적인 1%는 있게 마련이다.ㅋㅋ) 또는 성격 형성이 잘못 되어 무조건 수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이다.

특히나 이 땅에서 국어 교사를 한다는 것은, 특정한 정체가 없는 일이어서 좋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문법만 가르친다면 딱딱할텐데, 문학도 가르치고, 언어학도 가르친다. 그렇지만, 잡다하게 가르치다 보니 솔직히 전문성이 떨어지긴 한다.

담임으로서, 교과 담임으로서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지극한 즐거움이면서,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담임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얼마나 할 일이 적은지 모른다. 비담임의 가장 큰 홀가분함은 딸린 아이들이 없다는 데 따른 해방감이다. 담임은 일단 담당한 서른 몇 명(내가 처음 담임한 아이들은 56명이었다.)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때문에 상담할 일도 많고, 잡무도 그만큼 늘어 난다.

이 책은, 이런 총체적 난관에 빠진 교사들에게 위로가 되어 준다.
그래, 너만 그런 곤란을 겪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교사는 이런 다양한 것들에서 곤란을 겪을 수 있어.

안나 카레리나에 '행복한 가정은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이유가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수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교사마다, 수업마다 다르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가 다 갖춰져야 하지만, 한 가지만 결핍되어도 불행한 가정이 되어 버리듯이,
성공한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출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만 결핍되어도 실패한 수업이 되기 쉽다.

교사는 지식만으로, 인격만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 교사는 인격, 마음, 정신과 관련된 자질을 남김없이 동원하여 아이들과 만나게 됨으로써 갖가지 곤란함을 겪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싫증은 열정만큼이나 전염이 강하다.

내가 힘들어 하면 주변의 아이들, 교사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겠는가.

학생의 학습은 <지식은 배우기 힘들고, 더 이상 혼란을 잃으키지 않을 때가 되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나중에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길 수 있고, 지식을 얻으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사고 방식을 발견하며, 지식이 없을 때보다 더욱 활기차게 살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도와주어야 할 부분이다.

교사의 권위는 인격을 구현한 것이고, 자기를 인식하고 자신감이 표현된 것이다.
훌륭한 교사/학교와 평범한 교사/ 학교의 차이는 학생의 포부를 얼마나 키워주느냐에 따라 구별된다.
가장 무너지기 쉽고 일단 획득하게 되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요소가 교사의 권위라는 것이다.

교사는 도덕적이어야 한다.

요즘 세상에서 비판을 받는 교사들은 도덕성에서 무너졌다고 보면 된다.
이 책에서 지적했듯이, 교사의 도덕성을 함축하는 말이 <부모처럼>이다. 부모의 특징은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말이다.

수업의 질서도 중요하고, 교사의 상상은 필수적이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훌륭한 가르침 뒤에는 학생을 향한 교사의 포부가 깔려 있다.

교사를 신뢰하는 학생은 자신의 능력도 신뢰하면서 성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교사에게 친구처럼 선생님처럼 벗이 되어 주는 책이다.

내가 하고 싶은 하소연을 다 이해해 주고 있으며,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다 포함하고 있다.
특별한 이론적 배경을 내세우고 있진 않지만, 교사여서 겪었던 갖가지 피로함을 위무해 주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내가 교사라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책이다.

교대나 사대에서 교사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 또는 교직에서 어렵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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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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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2년에서 95년까지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의 실체를 이적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고라즈데는 이름만 안전지대지, 전혀 안전하지 못한 지역이었다.

조사코는 거기 네 번이나 가서 양심의 기록자로서 취재를 한다.

팔레스타인이 널리 알려진 비극이라면, 보스니아는 알려지지 않은 비극이다.

잔혹한 그림들을 보노라니, 한국 전쟁때 자행된 살육들이 오버랩된다.

동부 무슬림들에 대한 인종 청소는 바로 이웃 사람들인 세르비아 반군에 의해 이루어진다.

종교가 다르다고 이적지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을 도륙하는 행위는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전쟁이 나고, 광기가 지배하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극히 인간적인 행동이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동물의 세계에선 볼 수 없는,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만행이 것이다.

만행이란 말도, 오랑캐나 저지르는 행위란 비속한 뜻으로 쓰이지만, 아무리 영장류니 만물의 척도니 꼴깝을 떨다가도, 전쟁이란 상황에서는 사소한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이웃을, 민족을 살육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옆에서 죽음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오로지 먹고 살아 남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보스니아의 고라즈데...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에서 보여주었던 것 이상의 추악한 인간사를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시기에 인간의 인위적인 자비나 도덕을 전면적으로 거부했던, 그래서 짐승처럼 자연만이 최고라던 노자나 장자의 <부쟁>의 철학은 피흘리는 이웃을 보고는 누구나 절감하는 생각들이 아닐까?

인간만이 사과 하나
반으로 쪼개
나눠 먹을 줄 안다...고 인간을 긍정한 김남주씨도

결국 인간에 의해 감옥에서 날을 지새다 병을 얻어 죽고 말듯이,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종족이 된 오늘날, 이런 책을 읽는 일은 마음 아프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는 일은 비극을 막는 최소한의 양심을 일깨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조 사코, 만화로 일깨운 그의 저널리즘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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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눈썹에 종을 매단 그대는 누구인가 - 삶의 등불이 되는 고전의 지혜, 장자 철학 우화 3
윤재근 지음 / 나들목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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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된 책들의 주제는 단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그걸 찾아보자.

눈썹에 종을 매달고, 일 분에도 몇 번씩 눈을 깜박여야 하는데, 계속 종소리가 뎅~뎅~ 울리면서 우리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고 있다.

그대는 누구인가... 하고 실없는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장자다.

장자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다. 변죽을 울리고 독자에게 알아서 핵심을 파악하도록 말한다.
그것이 장자를 읽는 재미고, 장자의 위험성이다.

몸을 편하게 하가. 마음을 온전히 하라.

세상 만사 시비에서 벗어나서 조용히 살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나를 고집하는 것을 벗어나라는 말을 하면서, 나를 잊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끊임없이 나는 어디서 왔으며, 이 순간에 어떻게 살 것이며, 어디로 가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게으르게 대답하는 사람의 삶이라고 할 것이다.

행복하고 싶다는 의욕에서 우러난 구호가 야망과 성취욕의 굴레에 묶여 불행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을 본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보면서 쓴 장자란 텍스트는, 미국 일국주의의 횡포에 휩쓸려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현대에 읽어볼 법한 고전이란 생각이 읽을수록 강하다.

나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도, 부처님도, 알라도 아니다. 바로 나다.

나만이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나를 온전히 하느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것도 나이며,
내가 부처임을 깨닫고 성성적적하게 사는 것도 나임이다.

무위는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에서 빌려가고 돌려줄 뿐.

진리는, 도는, 세상 만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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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가 전해주는 마음의 열쇠 뼈
이외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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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는 내 맘 속에서 기인이었다. 머리와 수염을 기른 '도인'같은 풍모와 왠지 센치하면서 알듯 모를듯한 소설이나 글들. 그래서 이외수를 읽고 싶은 호기심과, 세상에서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는 얄궂은 멸시가 공존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돌아 본다.

모든 가치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얼마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인지를...

이외수의 두뇌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산문들이 가득하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 훈훈한 차 한 잔 들고, 창가에 나앉아 빗소리 들으며 읽는다면 참 그럴싸하게 마음을 울릴 글들로 가득하다.

마치 불경을 읽는 듯이, 성경을 마주한 듯이, 그렇지만 종교적으로 지나치게 경건하지 않게...

시인의 가슴으로 마주한 세상의 씁쓸함, 쓰라림, 비탄을 뱉어내고 있다.

만약 그대 눈에 미운 것이 보이면, 그대 스스로 그 속에 들어가 보도록 하라. 참으로 미운 것은 하나도 없다.

결혼해서 애 길러본 사람만이 아이들을 제대로 본다는 말이 있다. 개인차야 있겠지만, 사람을 기른다는 일은,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일 것이다. 미운 것은 하나도 없다.

슬픈 날, 술푼 날... 만사가 슬프고, 그래서 술이라도 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죽어서 식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것이 될 수 없다면, 그래서 굳이 동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절대로 사람으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어두운 이불 속을 길고 지루하게 기어다니는 한 마리 외로운 이 또는 햇빛 좋은 날 금빛 물결 일렁거리는 맑은 연못 속을 헤엄치는 한 마리 거머리, 그런 것으로 태어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 그는 지렁이가 사람보다 낫다고 한다. 지렁이가 만드는 것은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옳은 소리다. 인간은 지렁이, 아니 무엇보다 지구에 악이 되는 존재니깐. 그리고 지렁이는 나처럼 먹이 때문에 자존심을 버릴 필요는 없기 때문에...

언제나 젖어 있으라. 땅이 마르면 물이 고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마르면 사랑이 고이지 않는다는 사실.

천상 예술가인 그는, 아름다운 말과 선율과 색채를 창조하는 예술가가, 사람의 깨어진 머리를 꿰매거나 콩팥을 떼어내고, 사람 뼈를 덜그덕거리는 의사나, 죄인들을 다루는 법관들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을 혐오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완성된 작품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세상의 천대, 몰인정에 눈물흘린다.

인간은 이제 모든 것의 천적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는 인간이 인간에게까지 천적이 되어 있는 형편이다.
먹이 사슬의 최상층은 인간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만물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망쳐가는 혐오스런 인간 존재에 대하여, 그러나 또한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가치있는 인간 존재에 대하여 그의 탐색은 폭넓고 겸허하다. 이외수가 드디어 도사가 되려나 보다. 좋은 일이다. 그가 도사가 되어 만물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런 이들을 아는 것만으로도 나는 영장에 가까운 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악한 천적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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