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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혜능 평전
이은윤 지음 / 동아시아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선 불교가 세계적인 조명을 받는 이 시대에 혜능만큼 연구 대상인 인물도 드물지 않을까?
그래서 혜능 스님의 평전을 읽으려고 했다가, 이 책은 평전에서는 조금 벗어난 연구서란 느낌을 받았다. 혜능 스님이 워낙 오래 전의 인물이라, 그 인물의 면면을 전기로 써 내자면 문학적 형상화가 필요한 부분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이 책은 좀 딱딱한 느낌이 심하다.
그래도 혜능 스님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워낙 많았기에 너무 딱딱한 부분은 건너 뛰어가면서 5/6 정도를 읽은 느낌이다.
인도에서 넘어온 불교가 지나치게 법식에 얽매인 수행에 집착하고, 고도의 배움에 매달리는 것을 일거에 격파하고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라는 즉심즉불의 생각을 퍼뜨린 스님. 마오쩌뚱까지도 혁명적 불교관이라고 극찬한 인물이다.
그 분의 언행이 기록된 육조 단경을 지금 읽고 있는 금강경 이야기 뒤에 공부할 목록으로 넣어 둔다.
이전의 고통스런 수행을 폐하고, 진정한 수행이란 찰나에 직관적으로 자신의 본성이 가지고 있는 유무 초월의 속성을 깨달아, 사물과 현상을 고저, 장단, 명안, 생사로 구분하는 사고 방식과 주관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이른바 <분별심>을 제거하는 것이란 말씀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인도 불교의 권위적, 우상 숭배의 경향을 탈피하여 무애자재한 직관적 관조를 강조한 면에서 현대의 문화 예술적 가치를 드높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쌀을 다 찧었느냐!는 스승님의 말씀에,
방아는 다 찧었지만 아직 쌀 속의 뉘는 고르지 못한 상태란 대답을 하신 말씀과,
선도 악도 생각지 말라. 그럴 때 어떠한 것이 그대의 진정한 모습(本來面目)인가.
바람이 움직이나, 깃발이 움직이나, 너의 마음이 움직일 따름이다. (風幡問答)
이런 말씀들로 유명하지만, 그 마음의 경지를 가늠하기는 힘든 일이다.
선.(禪)이란 글자는 물려준다는 글자인데,
생존 의지가 심령 의지에게 자리를 내 놓은 것이고,
외물에 대한 연구를 내심에 대한 연구로 전환하는 것이며,
동물적 삶을 정신적 여유로 변화시킨다는 말이란다.
단경의 구석구석에서 권위적, 우상적 종교의 모습을 혁파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일체중생실유불성. 모든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
不落二邊 不二法門 둘로 나누는데로 떨어지지 말라.
出沒卽離兩邊 출몰즉리양변. 중도를 가리키는 금강경을 귀의경으로 삼은 이 말씀은, 나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나를 우주의 창조자로서 부처를 구하는 마음까지도 버린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심신 탈락의 초절대자로 읽는다.
이 책의 내용에 비해 오자가 제법 눈의 띈다. 앞 부분에선 그저 읽다가 237쪽 유종원의 강설에서 만경인종멸의 滅자를 灰자로 쓴 것은 성의 부족으로 비친다. 이런 사소한 잘못은 책의 신뢰성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린다. 251쪽의 혜흔본을 혜은본으로 적은 것 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