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왜 하지? - 꼼꼼하게 들여다본 아홉 개의 수업 장면
서근원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바디는 판소리를 스승이 가르친 그대로 익힌 것이고, 더늠은 제자가 더 늫-은 것이다. 원본의 복원 면에서 바디가 훨씬 낫다면, 새로운 창작이란 면에서 후자가 유리하겠다.

이 책은 초등 교사로 근무하다 사표를 내고 공부를 계속하는 작가의 뼈저린 수업 관찰 기록이다. 우리 교육(초등편)이라는 '불온한(?)' 잡지에 연재된 것을 책으로 엮은 듯 하다. 난 중등 책자는 자주 보게 되지만, 초등 이야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듯이 생각해 왔다.

나도 서울에서 중학교 교사로 발령 받아서 5년 반, 부산의 남자 중학교 교사로 4년 반, 여자 중학교 교사로 1년 반, 남녀공학 일반계 교사로 4년 반을 근무하고 이제 공업계 고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는 십육 년 동안, 많게는 주당 24시간의 수업을(특활과 학급회 빼고), 적게는 14시간의 수업을 했고, 특히 고등학교에 와서는 특기적성, 보충학습, 특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끊임없이 수업을 해 왔다.

그렇지만, 수업을 왜 하는지... 에 대해서 고민을 깊이 한 것은 몇 해 되지 않았다. 수업은 맡기니까 하고 있었고, 나의 수업의 목표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중학교에서는 교육개혁을 추진한 이후로 고등학교 입시가 내신제로 바뀌었고,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사라져서 수업에 몰두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고 할 수 있다. 직장은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 체제로 들어섰고, 컴퓨터를 활용한 수업, 기자재의 활용, 학생 중심의 수업이 <열린 교육>의 이름으로 우리를 짓밟았다. 여유있던 시간에 일본어도 공부하던 교사 생활이 연구학교 중심, 업무 중심으로 돌아서는 시발점이 된 1996년, 그 후로 9년간 나는 나를 잃고 살았던 것 같다.

그나마 일반계 고교로 옮긴 후에는 수업이 재미있었다. 나는 수업을 왜 하지? 하는 물음에 그저, 아이들이 열심히 들으니깐, 더 충실한 내용을 들려 주기 위해 교재를 편집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나름대로 몇 가지 수업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내 지난 십육년의 수업의 <화두>라면, 재미있는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처음 수업을 하던 1989년에는 세상이 참 차가웠다. 발령받은 지 넉 달 만에 해직될 뻔도 했다. 그 후 징집 영장이 나와 군대로 도망하고 말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간은 경직된 사상을 토로하는 열변형 수업이 되기 일쑤였다. 그 땐 그나마 젊었고 아이들이랑 친했으니 불평의 이야기를 덜 들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수업에서 아이들이 졸거나 학습 내용이 재미없던 시간들을 지나면서, 아이들이 나를 쳐다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후로 나는 서서히 교실에만 들어서면 코미디언이 되어 갔다. 자연스럽게 <지위 거래>를 통해 자주 나는 낮아졌고, 수업의 질과는 상관 없이 수업에서 아이들이 등 돌리는 일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이 <즐겁게> 수업하도록 <이야기>를 혼자 꾸며내고, 그림도 그려 보이고,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을 창안한 것이 아직도 내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고개를 박고 잠만 자진 않도록 한 원동력이 된 듯 하다.

이 책에서는 교육 개혁 이후 학교에 몰아닥친, 행동주의 수업 연구, 절차적 지식을 중시하는 학생 중심의 수업 연구 활동으로 흐르고 있는 <좋은 수업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교실의 수업을 아홉 장면 서술하고 있다. 참 마음 아픈 현실이다.

철학이 없는 교실. 삶이 없는 교실. 교실에는 국가의 명을 받아 학생을 지도하는 국가공무원으로써의 <교사>가 있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남을 짓밟기 위해 경쟁하는 <학생>이 있으며, <하면 된다> <2호선을 타자(서울의 유명 대학들이 2호선 주변에 있다는...)>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이런 급훈이 내려다 보는 파리한 형광등 불빛 밝힌 교실에는 <경쟁과 살기>가 등등하다. 이 책에 등장한 초등 교실에서도 9년 전의 <교육 개혁>의 무지갯빛 미래를 위해 희생되었던 교실의 살육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공교육"이라 함은 <왜 하는가> <어떤 인간을 기를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러자면 여건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 를 총체적으로 고민하는 국가의 거대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거대 시스템이 올바로 설계, 유지, 보수 되기 위해서는 <철학적 청사진>과 <국민적 의견의 통합>, <예산의 지원> 등의 각종 <프로그램>이 올바로 기능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쟁체제가 몰고온 교육개혁은 외국의 결과만을 도입한 <교육 방법, 공학>의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였고, 그러한 방법만 도입한다면 결과는 <선진국>으로 나타날 것이라 착각하였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학교에 삼천만원을 들여 교무실에 칸막이를 하였고(이에 칸막이 회사만 돈벼락을 맞았다.), 모든 학교의 교실에 42인치 프로젝션 티브이를 넣어 주었고, 펜티엄급 컴퓨터를 전격적으로 설치하였다.(그 설치가 급속히 완료된 해는 97년도로 대통령 선거 직전이었고, 당연히 그 기종은 일률적으로 삼성이었고, 삼성은 엄청난 돈을 벌어 이모 후보에게 밀어주었을 것이다.) 지금 각 학교의 42인치 티브이는 비오는 날 전체 조회 관람용으로 쓰이고, 월드컵 축구 중계용으로 쓰인다. 아, 학년말에 교사들이 정신없이 바쁘면 비디오를 보기도 하고, 체육 시간엔 간이 탈의실용 벽면으로도 쓰인다. 그 때의 컴퓨터가 지금은 모두 쓰레기가 되어 버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 하는 작업들은 각 학교에 오천만원씩 줘서 도서실을 <정보 종합 열람실>로 만들려 한다. 도서실에 컴퓨터를 좀 넣고, 시설을 개선해서 도배를 다시 하고, 책상을 다 내다 버리고 새 것으로 교체하면 <정보가 종합적으로 열람되는 도서실>로 개선된다.

공교육이 무너지는 이유는 <사교육>에 있지 않다. 공교육이 무너지는 이유는 <부모들의 잘못된 교육열>에 있지 않다. 공교육의 붕괴 이유는 <철학>의 부재에 있고, <청사진>의 부재에 있고, <고민>의 부재에 있고, <고민할 시간>의 부재에 있다. <공학>이 철학의 위에서고, <시범학교, 연구학교, 수업연구대회, 각종 경진대회, 교사연구대회>등 단시일내에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결과들을 뽑아내는 연구들이 <청사진>의 위에 오르며, <남을 짓밟고 승진에 눈먼 사욕>이 <고민>의 위에 서고, 학교장은 <돈>에 욕심을 부리다간 잘리게 생겼고 교사를 통제할 힘은 전혀 없는 <경영권이 전혀 없는> 전문 경영인으로 투덜거리기만 하는 학교에 미래는 없다.

그러나 학교에 교육이 없을 수 있나? 눈을 초롱거리는 아이들이 있고, 그 눈을 외면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있고, 서로 생각이 많이 다르더라도 학교라는 제도 내에서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 교육은 느리지만 숨쉬고 있고, 화산재가 덮어버려 불모의 땅으로 변한 듯한 잿더미에서도 싹이 트듯이 사랑이 있는 것이다. 수업은 교육의 가장 주된 형식이다. <교육과정>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 중 가장 주된 것이 <수업>이란 이야기다. 물론 수업을 통해서도 '암시적'으로 <교육과정>을 강조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수업을 통해 교육과정의 긍정적 측면을 배울 수도 있고, 암시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내면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문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수업의 기본은 무엇인가.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학교급별에 따라서 어떻게 달리 운영해야 하는지... 문제도 아닌 것 같은 것이 곰곰이 들여다보면 문제란 것을 깨닫는 것이 <기본>을 익혀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난 십여년간 <바디>를 익힌 선생이었다면, 이제 <더늠>을 향한 몸짓을 익혀 나가리라... 생각하는 봄방학의 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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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데, 어젠 우연히 맞춤법 프로그램을 보았다.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맞춤법을 맞추라고 하면서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들을 출제하던데...

과연, 이들은 맞춤법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희한한 맞춤법(꾀죄죄하다 같은)을 왜 묻는 것일까...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면서도 혼동되는 것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밤을 새워, 희한하다. 헷갈린다. 금세, 오랜만에, 이따 보자, 백분율, 비율, 출석률, 초점... 이렇게 많이 쓰는 단어들 말이다.

세계 여러 나라(약 200개국) 중 맞춤법이란 특이한 <법>이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럼 그 나라들은 어떻게 문자 언어를 통일 시키고 있을까? 그들에게는 계속 다듬어져 나오는 <사전>이 전부다. 영어 맞춤법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건 맞춤법이 아니라, 문법과 사전에 나오는 말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맞춤법이란 음성 언어의 <표준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어법에 맞도록 표기하게 하고 있다.

영어에도 color 도 색깔이고, colour도 색깔이다. 미국에서 쓰기도 하고 영국에서 쓰기도 한다지만 엄격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거다. 그런 걸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야말로 맞춤법은 <그때 그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절대적으로 옳다고 우길 수는 없는 그런 것. 세종대왕도 전혀 몰랐던 것. 실수 투성이인 인간이 만든 것 말이다.

표준어를 적는다는 것도 문제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사이에는 <교양있는 사람>이란 계층의 기준과, <두루 쓰는>이란 사회성의 기준과, <현대>라는 시대적 기준과, <서울말>이라는 지역의 기준이 엄밀히 적용되는 것 같다. 그러나 교양있는, 두루 쓰는, 현대, 서울의 기준이 엄밀한지 아닌지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서울에 근무하는 삼성물산 성대리는 교양이 있다고 볼 수 있나? 서울은 어디까지인가. 종로만 서울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당동까지 서울이다. 그럼, 과천은 마냥 경기도인가? 경기도 넘버 붙인 자동차들이 아침이면 까마득하게 남태령을 넘어오는데...

한글 맞춤법은 <받침>이 있는 특이한 문자구조인 우리 언어에 독특하게 필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이 <가진 자>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 적 2에서 멋지게 쓰인 말이 있지 않은가. <법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한글 맞춤법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미를 정확히 드러낼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전자 세상에서 <안냐세염. 오랜마니네염.. 그럼... 20000 ㅃㅃ2...~~~휘리릭~~~>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구두 수선공 아저씨가 <열락처 010-$$$-****)라고 적었다고 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에 맞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교양>과 <지식>의 폭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양있게 보이려는 글에서는 최대한 맞게 적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적 재산이 될 저서에서는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좋다. 알라딘에 오르는 글들에서도 한글 맞춤법에 틀리는 경우들이 제법 있다. 내 눈에는 그런 게 보인다. 국어 선생이 갖는 직업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중에 특히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의 글에서 맞춤법에 틀린 글자가 있으면 괜히 <알려 드리고> 싶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교양과 지식을 가르치는 분들이니까...

정말 많은 분들이 틀리는 몇 가지만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겠다.

1. '며칠, 몇 일'을 어떻게 구분할까? 정답은 무조건 <며칠>만 맞다. <몇 일>도 맞을 것 같지만, <몇 년 몇 월 며칠>이 맞다. 정 못믿으시겠다면 초등학교 2학년 수학 교과서의 달력 가르치는 부분을 참고하시길...

2. '할께요. 할께'는 틀린 표현이다. '할게요, 할게'가 맞다. 도와 줄께요, 도와 줄께. 기다릴께... 모두 틀렸다. 도와 줄게요, 도와 줄게, 기다릴게... 가 맞다.

3. 사전에 찾아보면, <삼가하다>는 말은 없다. <삼가다>만 맞다. 삼가해 주십시오는 틀렸다. 삼가 주십시오가 맞다.

4. 다르다와 틀리다는 뜻이 다르다.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쌍둥인데도 둘은 참 틀리게 생겼죠?> 이런 말을 우린 잘 쓴다. 다른 것은 인정하는 범위이고, 틀린 것은 인정할 수 없는 범위다. 서울말과 경상도 말은 참 다르다. 그러나 둘 다 아름다운 말이다. 서울말과 경상도 말이 틀리다면, 경상도 말이나 서울말 중 하나는 죽어야 되지 않겠나?

5. <위험이 있습니다.>와 <위험이 있슴>, <위험이 있읍니다.>와 <위험이 있음>은 어떤가. '-습니다'의 소리가 나는 종결 어미는 무조건 '-습니다'로 통일. '있습니다. 먹습니다. 죽습니다...' <있읍니다>는 벌써 십육년전에 죽어버린 말이다. 하긴 이십 년 전 책에 보면 그렇게 적혀 <있읍니다.> <있습니다>로 통일되다보니, <있슴>도 이런 꼴로 통일되었다는 '유추 해석'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 경우는 명사형 어미<-음>이 붙은 것이므로 <-슴>이라고 적으면 안 된다.

그 외에도 밤을 새워도 강의할 수 있지만...

그럼, 한글 맞춤법이 헷갈리면 어떻게 할까? 내 제자들은 휴대폰으로 바로 문자를 날린다. 가증스런 것들. 사전 찾아보면 될 것을... 사전을 열심히 찾아 보시라... 한글 맞춤법을 공부할 수는 없을까? 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참아 주시라.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상)의 부록으로 한글 맞춤법이 수록되어 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열어 보시라. 곧 잠이 쏟아질 테고, 눈이 초점을 잃을테니깐... 사전은 반드시 89년 이후에 편찬된 것이어야 한다. 컴퓨터를 사용하시려면, <국립국어연구소>에서 물어보시든지, <국립국어연구소> 국어사전에서 검색하시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맞춤법에 틀려도 사실, 공식적이지 않은 문서 또는 메일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맞춤법에 맞지 않더라도 뻔뻔스럽게 자꾸 적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헷갈릴 때는 빨리 사전을 찾아볼 수 있는 위치에 국어사전 한 권 쯤 준비하면 좋겠다. 국어 교사인 나로서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에 힘을 써야 겠지만, 일반인들은 <작은 관심과 국어 사전>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게 되는 분들께 꼭 권한다.

<작은 관심과 국어 사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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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5-02-20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보니 상당히 일리있는 글이군요. 정말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강요되던 '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_^

글샘 2005-02-21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제 석사학위 논문 요지랍니다. 전에 어떤 학회 교수님들 앞에서 이 논문을 발표했다가 잡아먹힐 뻔 했습니다. 마치 매국노 보듯이 보더군요. 그 분들이 과연 저 '법'을 얼마나 꼼꼼하게 살피셨을지... 저는 아직도 이 법에서 우리가 빨리 정신적으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 우리글 <사랑>과 한글 맞춤법 사이의 <거리>를 인정해야 한다고요... <변화>를 <사랑>의 반대로 보면 안 될 거 같애요.

비로그인 2005-02-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훌륭한 논문을 이해못하는게 교수란 말씀이지요...~ 한자를 안써서 논문처럼 안보여서 그런가...? 아~~~ 알았다..~! 영어를 좀 써줘야 되는건데...
영어 원서도 참고서적으로 넣고 그랬어야 했는데...
원서를 안봐서 그렇구나...^^

글샘 2005-02-2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논문 얘기 하니깐, 오늘 그러고 보니 대학원 졸업식 날이었네. 언제 가서 졸업장이나 찾아와야겠다. 글고, 우리 논문은 영어 원서 같은 거 잘 안 본다. 내 지도교수는 미국파긴 하지만, 그래서 우리 맞춤법에 낯선 사람이기도 했지.

비로그인 2005-02-2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졸업은 축하해요~^^* 글구 국어선생님이 영문원서 보면 그게 한국인가...?^^

하늘바람 2006-04-17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갔답니다

진주 2006-04-1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방에서 구닥다리 생각을 가진 채 서서이 늙어가는 교양없는 저'는 늘 표준말의 정의에 대해 불만스러웠죠. 부르조아란 말을 갓 배웠을 땐 표준말이 그러하다고 대입시킬 정도로요.
그리고 표준말이란 것도 말 그대로 '표준'이란 것 뿐인데 우린 그동안 억울하게 강요를 당해 온 것도 사실이네요. 제 키가 한국여성의 표준 신장에 미달되는 작은키이지만 아무 탈 없이 지금까지 잘 살아 왔거든요? 서울말을 탯말로 삼고 있지 않는 한, 나는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구사할 것이며 교양없어도 내 나름대로 세상에서 인정도 받고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거든요? 표준말은 표준말일 뿐이다! ㅋㅋㅋ(글샘님 덕분에 시원하게 소리칩니다 헤헷)

글샘 2006-04-1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한하군요. 일년도 넘은 뻬빠를 두 분이 코멘트 다시다니...
하늘바람님께서 퍼가셔서 진주님이 보신 듯.ㅋㅋ
 
길보다 멀리 기다림은 뻗어있네
조향미 / 내일을여는책 / 1994년 11월
평점 :
품절


 

조향미, 길보다 멀리 기다림은 뻗어 있네


조향미 선생님이 쓰신 첫 시집일게다. 남편을 잃고 허허로운 마음을 시편들로 옮긴 것들이 많고,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다 틈틈이 적은 가슴 아픈 마음들을 잘 표현하고 있는 시도 있다.


‘생채기 위에 소금 뿌리듯한 김소희 새타령’이 들리고, ‘산굽이 물굽이 끝나지 않은 길을 지향없이 따라가는 이생강의 대금 산조’가 심금을 울리는 시편들은 읽는 마음조차 시리다.


‘밤깊어도 차마 닫아 걸지 못하고 그대에게 열어둔 외진 마음의 스산한 문 한 쪽’으로 드러낸 외로운 마음은, ‘허덕이며, 아득한, 막막한, 긴긴 장마 같은’과 같은 언어들이 주는 쓸쓸함을 품고 있고, ‘끊어졌다, 사라지고, 떠나간다, 어두워지리, 썩어가리’와 같은 술어들로 마감된다.


산다는 건 ‘기다리는 것과 견디는 것’으로 풀 만큼 한스럽던 세월을 살아낸 글들 속에, 아픈 개인과 아픈 사회가 아픈 아이들의 눈망울이 다 있었다.


선생이란 저렇게 아픈 눈망울과 함께 있을 수 있어야 하는 운명이란 생각이 드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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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처럼 부지런하게

가 아니라

개미처럼 가볍게

개미처럼 느리게

개미처럼 서럽도록

멈추지 못하고

이 길 저 길로

줄지어 때로 홀로

언제 무자비한 발굽 아래

짓눌릴지 모르면서

때로 예감하면서


<조향미, 길보다 멀리 기다림은 뻗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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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임 통신 2004 - 졸업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물 위를 걷는게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게 기적이다


안녕, 숙녀들. 선생님이다.

벌써 졸업이다. 너희를 만난 첫 날, 첫 담임 통신의 마지막에서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정말 좋은 학급을 맡아서 고마웠다고 졸업식장에서 인사하고 싶다고 했던 말.


우선, 졸업을 축하한다.

지난 7월부터 합격이 확정된 친구들부터, 아직도 미정인 친구들까지, 고등학교 12년간의 모든 교육과정을 졸업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우선 진학이 확정된 친구들에게 마지막 잔소리 몇 마디.

1. 즐거운 대학 생활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너희가 꿈꾸는 꽃미남 선배도, 낭만적 사건들도 가만히 앉아서 너희를 기다리진 않는다.

2. 대학생의 특권인 학교 도서관을 제발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이용하기 바란다. 내가 대학 졸업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것이 그거다. 대학 도서관에서 숙제밖에 안한 거.

3. 늘 진로를 생각하며 생활해라. 청년 실업 백만 시대에 아무 생각없이 살다 보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대열에 합세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아직 진학이 확정되지 않은 친구들에게 잔소리 몇 마디.

1. 불합격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기 바란다. 주변 사람들 보기 부끄럽다거나, 진작에 좀 더 열심히 할 걸, 내지는 좀 더 낮은 대학에 지원할 걸… 하는 일체의 <죄책감>을 버리고,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모든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얻기를….

2. 19일부터 추가모집 하는 대학들도 있으니 진학사 홈페이지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다시 도전할 친구들은 수시에도 한 번 지원해 보고, 선생님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연락하기 바란다.


자. 이제 일 년동안 을근들근 싸웠던 선생님과도 작별이다. 마지막 잔소리 몇 마디를 하자.


마지막 편지의 제목을 뭐로 할까… 궁리를 하다가,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게 기적이다.’로 정했다. 땅 위는 아무나 걷는 건데 말이야. 사람은 쉽게 남의 멋진 모습을 탐내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살지. 욕심만 부리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기 쉬운 것이다.

너희가 달나라로 여행을 떠났다고 치자. 그런데 비행선이 고장나서 귀환이 불투명하게 되었다. 산소는 이틀분밖에 남지 않았고…. 그러면 그 때, 가장 소중한 것이 뭘까. 빌게이츠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사장? 유수한 기업의 두뇌로 불리는 명예? 그 때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과 우리가 마음껏 숨쉬는 공기일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리석게 과거나 미래에 집착한다면, 현재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가는 우를 범하기 쉽단다.


그리고, 할 말은 많지만, 인생은 이렇게 살아라… 하는 것을 주절주절 말해 볼게.

한 번이라도 더 웃고, 친구와 시간을 더 보낼 것. 즐겁고, 보람차게, 의미있고도 평화롭게,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긍정적으로, 낭만적이고 적극적으로, 늘 젊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살고, 맛있는 걸 즐기고, 건강하고, 남을 도와주는 여유를 갖고, 질적으로 높게 살고, 자존감(self-esteem)을 갖고, 활력이 넘치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늘 겸손할 필요는 없고, 어차피 정답은 없는 것이고, 내가 좋아야 하고, 늘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별에 상처받지도 말고… 늘… 마음 공부를 할 것. 매 순간 최선을 다할 것. 밥을 먹을 때는 온몸이 밥이 되어 밥을 먹어라!!! 지금(now), 여기(here)에서 행복을 즐기지 않으면, 어디에서도(no-where) 행복은 찾을 수 없다.


오늘은 졸업식 날이다. 오늘은 졸업의 날을 마음껏 즐기기 바란다.


해주고 싶은 말은 넘치도록 많지만, 한마디로 지난 1년 너희와 함께여서 진정 행복했다. 그리고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기도 하고, 우연히 만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날 때,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벌써 겨울눈이 새싹으로 변해가는 이월에…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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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2-1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숙녀들~~멋진 졸업식 말씀입니다.글샘님의 숙녀들이 부러워지는군요...

글샘 2005-02-18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숙녀들이 졸업을 했습니다. 까닥하면 울 뻔 했습니다. 종례를 다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크게 하고, "자, 이제 돌아가세요. 가서 엄마랑 맛있는 자장면 사 먹도록..."하면 아이들이 우르르 나가고, 몇몇은 "선생님, 사진 찍어요."하면서 교탁으로 몰리게 마련인데, 희한하게 아이들이 미동도 않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쉬워하는 눈빛들이고, 이렇게 끝내는 것이 뭔지 실감나지 않는 눈빛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래라도 같이 하나 하고 마칠까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애들 자꾸 쳐다보면 내가 먼저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그러면 또 우리반에 잘 우는 혜림이랑 근영이랑 세령이랑 눈물 바다를 이룰 것 같았지요.
그래서 내가 먼저 나가려고 하면서, 나중에 놀러 오라고 했더니, 언 놈은 울고, 몇명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사진 찍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참 정이 많은 녀석들이었는데, 몇 명이나 놀러 올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죠. 졸업하는 날은 항상 허전한 담임입니다. 고요히 나를 돌아보면서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2005-02-25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