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다.  이때 누가 마이크를 잡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분위기를 망치는 이가 있다.  분위기 망치는데 일조하시는 분은 소위 말해 `음치'과에 속한다.  음의 높낮이, 템포의 빠르고 느림, 박자의 엇나감, 음색의 고움과 거침 등이 노래방 가수와 음치를 나뉜다.    문제는 음치과에 속하는 분들이 대개 자기 몰입형이란 것이다.  주위의 고통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흥에 겨워 노래하기 마련이다.   

노래 잘 못하는거야 사는데 지장이 없다.  노래 부를 기회도 그리 자주 찾아오진 않는다. 외국 사람들은 특히 사람들앞에서 노래 부르길 더 꺼려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매우 용감한 편에 속한다. 잘 부르건 못 부르건 함께 어울린다는것에 미덕이 있다.  음치가 노랠 못해도, 분위기를 깨도, 미움받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언치'라는 다소 낯선 용어를 들어보았는가?   언어의 활용이 미숙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말치(말을 잘 못하는 사람)' 나 `글치(글을 잘 못쓰는 사람) 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소설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 나오는 용어다.  노래 못하는 사람을 `음치'라 한다면 언어 활용이 서툰 사람을 `언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 사용에 지장이 있다면 노래 못 부르는 문제보단 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현대인에게 글쓰기 능력은 학생이나 직장인 모두에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는 두툼한 두께만큼 언치들의 의지가 될법한 듬직한 글쓰기 책이다.  저자 이름이 몹시 생소하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지은 소설가이자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는 전문가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고백한다.  `나도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좋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말도 한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좋은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전문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며 유수한 문학상까지 받으신 저자님이 지금 글쓰기의 공포로 이 책을 잡은 독자들을 희롱하는가?  아니겠지, 이건 겸손함이다. 겸손은 원래 미덕아닌가?  잠시 마음이 심란하다.   그러나 이 두툼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야 저자의 고백의 진의를 깨닫게 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는것.  등단 수년차의 작가에게나 글쓰기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당신에게나...

왜 글쓰기가 어려운가?  우린 글쓰기를 하나의 기교나 기술로 알고 있다.  이 당혹스러운 착각을 분명하게 짚어주고,  수정할 근거를 제공해 준 것은 이 책이였다.  글쓰기는 연습과 노력의 산물이란 고정관념때문에 기교나 기술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글에는 삶이 담겨 있고, 거기거 끌어올린 `새로운 진실'이 녹아 있다는 의미에서 글쓰기는 깨달음이며, 철학이다.  깨달음과 철학에 이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평생을 수행해도 불가의 스님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오직 깨닫기 위해 고통스런 수행을 지속하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당신의 이웃은 기교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도를 터득해서 먼저 사물을 다르게 인식하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 자신의 성정을 갈고 닦으면 문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글쓰기란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훌륭하고 모범적인 사람이나 번듯한 생각에 대해 표현하는 작업이 아니다. 불완전하면 불완전한 대로 바로 자기 자신의 느낌,정서,생각, 상상력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작업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실질적 정직'이야말로 글쓰기의 `첫 단추'인 것이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p.62

작가가 지적하는 `실질적 정직'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준을 말한다.  우리가 한 편의 글도 창작할 수 없는 것은 먼저 이 정직이라는 눈으로 세상의 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자신과 세상을 보려면 먼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대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듯, 우리는 솔직히 생각하는 것을 글로 풀이하지 않는다. 마음속의 숱한 장애물들이 정직한 자아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글이 왜곡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언어 능력이 풍부한 성인이 쓴 글보다 초등학생의 글이 더 낫게 보이는 이유를 저자는 이 `실질적 정직'의 문제에서 찾는다.   

"이렇듯 정직하고 진솔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면 그것으로 작품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비유나 수사는커녕 철자법조차 갖추지 못해도 좋은 것이다. (...) 매끈하지 않지만 한 구절이라도 살아서 반짝이는 문장이 좋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p.65-67

노래방에서 노랠 부를 기회만큼 이젠 글을 쓰는 일이 범상한 이들의 일상이 된 시대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이 서점가에 넘쳐나고 있다.  글쓰기 책 몇 권만 읽으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도는 누구나 감잡을 수 있다.  글쓰기 책에서 강조되는 것들도 대부분 기술적인 면에 치우치곤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쓰는 자의 자세다.  마인드가 중요한 것이다.  글은 때로 흉기가 될 수 있다.   직업적 글쓰기에 능숙한 기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왜곡과 편파 보도에 능숙한 언론인들은 글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곤 한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는 글쓰기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와 기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내려한 책이다. 책의 중심부는 창작 위주의 첨삭과 합평 강의가 주를 이룬다.  이 부분은 읽기에 따라 지루할 수 있다.  수많은 예문과 저자의 친절한 고쳐쓰기 해설이 반복된다.  일반적인 글쓰기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루는 글쓰기의 철학과 자세라 일컬을만한 부분은 독창적이며, 재미있고, 깊이가 있다.  따로 떼어내 읽어도 좋은 글쓰기론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여타의 글쓰기 책과 구분되는 <글쓰기 공작소>만의 `고갱이'이라 부를 만 하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우리들의 소심하고, 게으른 습성 하나를 질타한다.  "우리의 글쓰기 역시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늦은 것일 수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쓰고 성찰하는 우리 각자의 행동이 언제나 가장 빠른 길이다."(p.384)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 일에는 누구나 일가견이 있다.  그러나 글쓰기에 있어선 미루기야말로 최대의 적이다.  오늘 쓰지 않으면 내일은 더 잘 쓰지 못할 것이다.  

글쓰는 이에게 독서는 약이자 독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워가 <인생론>에서 독서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적었다.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사고의 원천이 완전히 고갈되었을 때에만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러나 독서를 하기 위해 자신의 강력한 사상을 내동댕이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식물 표본첩을 보기 위해 또는 동판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구속되어 있지 않은 자연으로부터 도망치는 것과 같다."  <쇼펜하워 인생론>, 육문사, 김재혁 옮김 

나또한 마찬가지다. 서평이라고 끄적거리는 몇 편의 글 빼곤 글을 도무지 쓰지 않는다. 아니 쓸 만한 용기가 없다.  미적거리다 언제나 눈길을 돌리는 곳은 빼곡히 들어찬 책장의 서적들이다. 저 책들을 다 읽으면 뭔가 나또한 자유롭게 쓸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낸지가 오래전이다.  그러니 독서는 글쓰기의 도피처가 될 수 있다는, 쇼펜하워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 책을 읽을때마다 깨닫는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지금 바로 써보라.   "행동이 최선의 방법이니까"



2009.7.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09-07-1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대로 지르게끔 하시네요~.ㅎㅎㅎ
마지막 사진도 멋져요~.^^

개츠비 2009-07-13 22:32   좋아요 0 | URL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입니다. 지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