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소년 비룡소 걸작선 19
팜 무뇨스 라이언 지음, 피터 시스 그림, 송은주 옮김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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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터 시스의 그림이 정말 아름다와서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다. 350쪽 넘는 책이긴 하지만 글자 크기가 큰 편이고,곳곳에 피터 시스의 아름다운 그림이 들어 있어서 고학년어린이들이 읽기에 그렇게 힘든 책은 아니다. 그러니깐 너무 쪽수가 많다고 지레 겁먹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칠레의  거장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쓴 책인데 굳이 말하자면 성장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파블로 네루다는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군사 정권에 시로 맞서 항쟁하기도 하였고,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등 정치 활동도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엔 파블로 네루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책에 나온 어린 시절을 보면 그렇게 병약한 네프탈리가 어떻게 그런 신념을 가지고 군부에 대항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책을 끝까지 다 읽어 보면 네프탈리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인물로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아주 의지가 강한 자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병약하고, 가녀림에도 불구하고 폭군인 아버지에 맞서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꿈을 이뤄 스스로 별이 된 것처럼 지금도 칠레인들 마음 속에서 커다란 별처럼 빛나고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 시절로 들어가 보자.

 

철도 노동자이면서 가족에겐 폭군이나 다름 없는 아버지, 마음은 착하지만 남편을 거역하지 못하는 힘 없는 새어머니,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워야 하는 로돌포 형,순진하고 귀여운 여동생 로리타와 함께 미래의 꿈이 시인인 공상가 네프탈리가 살고 있다. 또래 친구들보다 병약하여 학교에 잘 나가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사물을 관찰하고, 제 눈에 신기한 것들을 수집하고, 낱말을 주어 담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네프탈리. 그런 네프탈리를 볼 때 마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쓸모 없는 녀석"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 폭군인 아버지 밑에서 그런 자녀들이 태어났는지.... 아버지는 그저 명령하고, 강요할 뿐 아내나 자식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가족이란 그저 자신의 대리만족을 채워줘야 할 존재일 뿐. 하지만 여리디 여린 새순 같은 네프탈리는 그런 아버지를 견딘다. 그게 참 대단하다. 불면 날아갈 것 같고, 아버지의 호통 한 번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네프탈리는 아버지의 그 모든 걸 묵묵히 참아 낸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은 여름 휴가 때 극에 달한다. 여름 휴가 하면 낭만적이고, 즐거운 일들이 그득할 것 같지만 네프탈리와 로리타에겐 전혀 반대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아버지의 스파르타식 교육이었다. 수영을 전혀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작정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 들어가서 알아서 수영을 하라는 것을 지겨볼 때는 진짜 아버지 맞나 싶을 정도로 분노가 일었다. 애들이 수영을 배우기도 전에 파도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는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을  절망과 위험에 빠뜨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인정할 수 있나 싶었다.독재자나 다름 아닌 아버지 밑에서 그래도 네프탈리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더 건강하고 강인해 보였던 로돌프 형은 노래를 포기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직업을 택하지만 병약하기 짝이 없는 네프탈리는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 꿈을 이룬다. 이는 사람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보여진다. 비록 네프탈리가 아닌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으로 시를 발표하긴 하였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 꿈을 이뤘다는 것이 정말 가치로운 게 아닌가 싶다.

 

읽으면서 내내 폭군같은 아버지 때문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 아버지의 왜곡된 사랑을 견뎌 내고 결국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주옥같은 시로 우리의 심금을 울려 주며, 꿈을 꾼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지 몸소 알려 준 공상가 네프탈리, 위대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늦었지만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꿈 꾸는 자는 진정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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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4-26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정말 좋았어요.
읽고 나서 며칠은 그 속에 잠긴 듯했어요.
파블로 네루다의 성장기를 보셨으니 스카르메타가 쓴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보면 좋을거에요.
우편배달부는 아들을 낳아 '파블로 네프탈리~~~~~ '라고 이름을 짓지요.^^
http://blog.aladin.co.kr/714960143/2801277


수퍼남매맘 2012-04-25 14:57   좋아요 1 | URL
정말이에요. 며칠 동안 네프탈리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순오기님이 추천하신 책 접수합니다. 방금 님 서재에 다녀왔습니다. 영화 " 일 포스티노" 였군요. 이 영화 오래 전에 봤지만 정말 감동적이었거든요. 민음사 책 집에 많으니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꼭 챙겨서 읽어보겠습니다.
 

이 그림책을 며칠동안 읽은 것 같다.

그림책도 이렇게 글밥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그런 그림책이다.

아들이 골라왔는데 완전 글씨가 많아서 허걱 하였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할 순 없지. 엄마 자존심이 있지.

그래서 매일 조금씩 읽어줬다.

어젯밤 드뎌 다 읽었다.

 

바솔러뮤라는 약간 어리숙하지만 착한 소년에게 일어난 기상천외한 일

그것은 바로 모자가 벗어도 벗어도 다시 생겨 난다는 것이다.

임금님 행차 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야 하는데 벗어도 모자가 다시 생기는 바람에

궁궐에 잡혀가 사형에 처하게 되는 위험을 맞게 되는 바솔러뮤.

모자 좀 안 벗었다고 사형까지 시키다니.... 임금 보다 그 옆에 있는 어린 대공이란 녀석이 더 얄밉다.

바솔러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491번째 모자부터는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난 읽어주느라 그 작은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아들이 먼저 발견하고 엄청 자랑질을 해댄다. 지가 먼저 발견했다고 말이다.

그 자랑질에 맞장구를 팍팍 해줬다.

그래야 다음 번 책 읽을 때도 유심히 잘 보겠지.

 

지난 번 <갈색 아줌마의 생일>책도 대박 글씨가 많았는데 이건 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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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2-04-2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어요. 읽기 힘들었고, 큰 느낌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수퍼남매맘 2012-04-28 22:27   좋아요 0 | URL
진짜 글씨가 많더라고요. 왜 바솔로뮤에게 그런 신기한 일이 벌어졌는지 잘 와닿지가 않긴 하죠.
 
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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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지인들이 좋다고 하셔서 구매를 하여서 읽어 보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던가! 나의 첫 느낌은 기대만 못하다는 거였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책이 동화책인 이상 어린이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먼저 올라온 리뷰들을 대충 읽어 보면 어린이 독자들보다 엄마 독자들의 마음을 더 움직인 듯 하여 보인다. 대부분 엄마로서의 초심을 잃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한 리뷰들이었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 엄마 " 로서의 역할을 되돌아 보며 많은 반성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어린이 독자 또한 엄마들처럼 엄마의 역할을 되짚어 보고, 자녀들의 역할 또한 반성해 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직 수퍼남매와 반 아이들에게 읽어 주지 않은 상황이라 어린이 독자들의 반응을 잘 모른다. 그냥 내 주관적인 느낌이 이 책은 어른 독자들에게 더 인기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현수는 왜 엄마가 없을까? 하는 설명이 없이 초반부터 엄마 장난감을 갖고 싶어한다는 설정부터 나오기 때문에 현수가 왜 엄마를 갖고 싶어 하는지  현수 마음이 되어 보는 게 쉽지 않았다. 나 같은 독자는 왜 현수는 아빠하고만 사는 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 답을 알 수 있는 장치가 없다.  현수는 왜 생명장난감인 엄마를 사고 싶어했을까? 같이 놀아 주고, 집에서 기다려 주고, 비 오면 우산 갖다 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서일까? 아님 할아버지에게 말한 대로 안아 주고, 책 읽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그런 엄마가 필요했던 걸까?  현수가 초반에 엄마를 갖고 싶어하던 이유와 중반부에 나오는 이유는 내가 보기엔 같아 보이지 않아현수의 입장 되어 보는 게 더 어려웠다.  현수의 상황이 좀 더 세밀하게 설명되어졌다면 현수가 엄마를 갖고 싶어하는 마음에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수가 조립하면서 손가락을 찔러 피가 나는데 피 한 방울이 엄마의 심장 언저리에 떨어져 닦기도 전에 번지는 장면이 나온다. 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복선이라고 생각했다. 피를 나눈다는 그 설정으로 인하여 이 생명장난감 엄마는 그냥 장난감이 아니라 현수와 피를 나눈, 따듯한 심장을 지닌 진짜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이 독자들이 이 장면을 암시라고 기억하고, 나중에 엄마가 마음을 가지고, 미소를 갖게 되는 것을 이것과 자연스럽게 연결지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하였다.

 

가족이 함께 읽으면서 엄마, 아빠의 역할, 자녀의 역할에 대해서 함께 자신의 생각들을 나눠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은 드나, 과연 엄마들에게 반성하는 마음을 주는 것처럼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실마리를 제공할 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별이 되는 소년>이란 책을 함께 읽어서인지 감동이 반감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별이 되는 소년>또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쓴 책인데 디테일이 살아 있고, 주인공 네프탈리에 몰입되는 느낌이 강한데 거기에 반해 <엄마 사용법>은 뭔가 약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마 이 책만 따로 읽었다면 나 또한 분명 지금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을텐데... 그러니까 어떤 타이밍에 읽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그래도 대충 딸아이게 스토리를 말해 주니 읽고 싶다고 하는 걸 봐서 아이들도 좋아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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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2-04-24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느낌이 다르다니까요. 우리 가족은 아빠빼고 읽었는데, 셋다 모두 열광했어요. 찬이도 너무 잘 읽었고요. 저는 최근에 읽은 책 중 으뜸으로 친답니다. 사람마다 다른 느낌 한 번 더 접수합니다. <<별이 되는 소년>> 한 번 살펴봐야겠어요.

수퍼남매맘 2012-04-24 07:15   좋아요 0 | URL
남에게 최고인 책도 나에게는 별로일 때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있는 것 같아요. 리뷰에도 썼지만 이 책만 읽었으면 아마 더 좋아했을 것 같아요. 같이 읽은 책이 너무 훌륭해서.... 이러다 희망찬샘도 <별이 된 소년>에 실망할 지도....
 
그림 형제 동화집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40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이옥용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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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교를 위해서 동화책 한 권을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그림 형제 동화집>이었다. 그런데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 아이들 책 치고, 너무 잔인하다" 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태교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중간쯤 읽다가 책을 덮고 말았다. 그러니까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읽다가 그 때 기억이 새삼 나서 빙그레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 때는 그저 "잔인하다. 더 이상 못 읽겠다" 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번엔 왜 그림 형제의 동화가 잔인할 수 밖에 없는지 깨닫게 되는 것 까지 나아갔다. 그동안 나의 독서 여정에도 나름 진보는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옛 성현들은 같은 책이라도 여러 번 읽으라고 하셨던 것은 아닐지.

 

  우선 그림 형제의 동화집은 그들이 창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독일에 전해지고 있던 우리나라로 치면 전래 동화를 모은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안데르센 동화집은 안데르센의 창작 동화이지만 그림 형제의 동화는 동화를 채집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안데르센상'은 있어도 '그림 형제상"은 없는게 아닐까?

 

 처음에 그림 형제는 어머니의 소망 대로 법학도의 길을 걸었다. 당시 독일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처럼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여러 개의 봉건 영주들이 나누어 지배하는 소위 영주국가였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과 더불어 독일에서 본격적인 통일 논의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차츰 게르만 민족 정신이라는 것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민족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문화적으로도 같은 민족으로 하나라는 생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림형제가 있는 법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독일 법학 분야도 독일 통일을 위해 하나라는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독일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성문법인 독일 민법이 필요하다는 것엔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 성문법을 어떻게 만들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이것은 티보와 사비니의 논쟁으로 집약되어 나타났는데 그렇게 티보는 로마법을 그대로 독일 민법전으로 쓰자고 주장했고 사비니는 법은 민족정신과 더불어 태어나고 발전하고 죽는 것이니 법과 민족정신은 별개일 수 없으며 따라서 독일 민법엔 로마법이 아니라 독일 고유의 법전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그 논쟁에서 사비니가 이겼고 때문에 독일 법학은 독일만의 고유한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히 그림 형제 또한 그를 위해 노력했다. 말하자면 '그림동화집'은 바로 그러한 그림 형제가 독일만의 고유한 법을 만들기 위한 노력 가운데 태어난 산물이었다는 얘기다.

 

 사비니는 민족정신은 언어와 이야기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고 그림 형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독일만의 고유한 민족성을 살피려면 무엇보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담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독일만의 고유한 정신을 찾기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민담을 모았던 것이다. 그렇게 모은 86편의의 이야기를 그들은 결국 <어린이들과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옛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내게 되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생각한 독일 민족 정신의 정수 같은 것을 모은 것이었다.

 

 그래도 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이야기가 잔인한 것일까? 

 

 알아보니 이는 당시 독일의 상황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기근과 전염병으로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때문에 많은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 무엇보다 잔혹함이었고 바로 그러한 보통 독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받았던 느낌이 그대로 그림 형제의 동화에 투영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림 형제 동화들에서 '먹는다'는 것이 그리도 자주 반복되고 먹을 것이 부족하자 가차 없이 아이들을 숲에 버리는 <헨젤과 그레텔> 처럼 반복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도 바로 드러나는 것 같다.

 

 한편, 그토록 잔인하고 잔혹한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음흉한 계략이나 고난과 맞서 싸우다 끝내 승리하는 것을 보면 그림 형제들은 비록 그러한 삶일 망정 그래도 뭔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했던 것 같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염원했던 독일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그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정신 역시도 주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그림 형제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새삼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들을 모아서 펴내시는 한국 작가님들 생각이 났다. 아마 그 분들의 마음 또한 그림 형제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옛 이야기를 모아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펴내시는 그 분들 역시도 결국은 우리들에게 정말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주려는 것이 아닐런지 깨닫는다.

 

 이 책에는 모두 12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요술식탁과 황금당나귀와 자루 속에 든 방망이>라는 이야기이다.  재봉사인 아버지와 세 아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우유를 주는 염소 한 마리가 있었다. 세 아들은 그 염소에게 풀을 배불리 먹이고 집에 데려오는데 배불리 먹은 이 염소는 집에만 오면 풀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통에 아들 셋은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집에서 쫓겨 난다. 아버지는 나중에 이 염소가 거짓말을 한 걸 알고 후회를 하지만 이미 아들을 몽땅 내친 후였다. 한편 쫓겨난 아들 셋은 각자 수련을 하고 나서 신기한 물건들을 스승님께 하사 받고 자신을 내쫒은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에 나쁜 여관 주인에게 속아 다시 한 번 고초를 당하지만 막내 아들의 지혜로 여관 주인을 골탕 먹이고, 형들이 받은 신기한 물건들도 되찾아 온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가 특히 의미심장한 이유는 산업혁명 때의 독일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염소에 의해서 쫓겨나는 세 아들은 제1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목축지가 대량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농민들과 무척 닮아 보인다.

 

 

 

 

- 1차 인클로저 운동 당시를 나타내던 그림. 이렇게 경작지가 대부분 목축지로 바뀌게되자

 농민들을 어쩔 수 없이  자기네 고향에서 쫓겨나 도시로 몰려가게 된다. -

 

 

 그렇게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갔고 거기서 이제까지의 농업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들을 익힐 수 밖에 없었는데 이야기 역시도 그것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세 아들이 각각 수제자가 되어 한 가지 기술을 익히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기술을 익히더라도 농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공을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중간에서 그들의 이익을 가로채는 자본가가 있어서 그들이 일하는 만큼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확히 과도한 노동에 비해 받는 임금은 턱없이 적었던 당시 독일 산업 현장을 그대로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즉 아들들의 신기한 물건을 가로채는 여관 주인이 바로 그러한 악덕 자본가들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당시 독일인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로 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를 참 많이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러는 빵으로 상징되는 식량 비축을 통해서 더러는 금화로 상징되는 많은 돈의 축적을 통해서 벗어나려 해보지만 이야기에 따르면 다 실패했던 것 같다. 막내 아들이 보여주는 방망이는 아마 그들의 최후 방법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 처럼 오로지 방망이가 상징하는 무력 저항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놀랍게도 <요술식탁과 황금당나귀와 자루 속에 든 방망이> 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당시 독일의 농민들 그리고 도시로 몰려든 농민들의 애환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림형제 동화집에 실린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갖가지 경험과 생각들을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로 변형한 것이었다. 이렇게 유럽의 역사를 알고 읽게되니 그림형제의 동화가 전혀 새롭게 읽힐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브레멘 음악대는 당시 영주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이 외세의 위협에 제대로 대항하려면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되듯이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도 그냥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당시 나라의 역사나 상황을 공부하고 난 뒤 들려주면 훨씬 더 풍부하게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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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헴! 아저씨와 에그! 아줌마
박미정 글.그림 / 계수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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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헴" 아저씨와 " 에그" 아줌마는 제목에서부터 감탄사가 나오는 걸로 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일 거라는 기대감을 준다.

언제나 " 에헴" 거리며 빈둥대는 아저씨와 그런 아저씨를 보며  혼자서 온갖 일을 하면서 " 에그 " 한탄을 해대는 부인이 어느 날 내기를 한다. 바로 둘 중에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송아지를 돌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내기. 아줌마는 빈둥대는 남편을 보면 울화통이 터져서 자신이 먼저 말을 걸 것 같아 아예 마실을 나가고, 혼자 남은 남편은 거지가 찾아와서 말을 걸자 부인이 수를 쓰는 줄 알고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거지는 " 웬 떡이냐?" 하며 부엌에 가서 음식을 다 먹어 치우고, 다음에는 이발사가 와서 아저씨의 머리를 싹둑싹둑 자른다. 그래도 역시나 부인이 수를 쓴다고 생각한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어서 방물장수 노파가 나타나서 아저씨가 여자인 줄 알고 온갖 분칠을 해 대고.....마지막 도둑까지 아저씨에게 말을 걸어도 요지부동인 아저씨. " 아저씨, 그만 정신 차리세요. 도둑이 다 훔쳐가요." 도둑이 보물을 다 훔쳐가도 여전히 아줌마가 변장한 것이라고 생각한 아저씨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저런 저런!!!

 

한편, 친구 집에 놀러간 아줌마는 자기 집 송아지가 대문을 박차고 뛰쳐 나가는 걸 보고 송아지를 붙잡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고, 남편은 귀신처럼 분장을 하고 있고,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 난리가 났는데도 아저씨는 아저씨를 걸쳐간 거지, 이발사, 방물장수 등이 아줌마였다고 말하고. 이를 본 아줌마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도둑을 찾아 나선다. 생활력 강한 아줌마는 과연 도둑을 찾아 보물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일생의 도움이 안 되는 남편의 못된 습관을 이 일을 계기로 고칠 수 있을까?

 

페르시아 민담이 무지 재미있어서 우리 나라 옛이야기로 각색하였다는 작가의 말에 페르시아가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많이 달라지긴 하였지만 남편들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부인들만 죽어라 일 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으니- 아니 아직도 이렇게 부인만 열심히 집안 일을 하는 곳도 많다고 한다-그런 시대를 지내 온 여성들이 이 책을 보면 속이 조금 시원해질 수도 있겠다.  방물 장수 할머니가 여잔 줄 오해하고, 남편에게 덕지덕지 분칠을 해 놓은 모습은 개그 콘서트 " 감수성"의 오랑캐를 연상시켜서 웃음이 키득키득 나왔다. 집안을 거덜낸 남편과 도둑을 찾아 나선 용감한 아줌마의 티격태격 싸우는 이야기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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