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 강연회날인 줄 알고 있다가 하마터면  길을 나설 뻔 했었다. 하여튼 가을에 건망증이 더 심해진다니깐. 

  일요일,이름도 낯선 6호선 광흥창역 2번 출구에서 내렸는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아 서둘러 택시를 잡고 서강도서관에 가자고 하니 기사님도 잘 모르신다며 요리조리 둘러보는데 글쎄 2번 출구 바로 앞이 목적지였다.  아까운 택시비만 나갔다. 우린 2번 출구에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 올라 오느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가까울 줄이야...어딜 가면 꼭 이렇게 한 번씩 일이 꼬인다. 

일찍 가서 좋은 자리 맡아야지 하던 야무진 꿈은 깨지고 뒷자리만 남아 있었다.  딸은 앞에 쭈~ 욱 전시된 이보나씨의 그림책을 구경하고, 난 얼른 자리를 잡았다. 뒷자리마저 놓치면 서 있어야 할 듯하여. 

 

이번에 도서실에 들어올 책도 몇 권 보인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되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외국인이 바로 이보나씨 남편분과 큰 아들이었다. 용기 내어 사진 좀 찍을까요?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맨 마지막 아들에게만 살짝 말하여 사진을 찍었다.   남편분과는 사진을 못 찍었다. 부인이 하시는 말을 워낙 열심히 들으시는 바람에 중간에 사진 찍자고 하면 방해할까 봐 꾸욱 참았다. 부인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는 게 역력히 보였다. 가족이 함께 사인회에 오셔서 인터뷰도 하시고, 진행자가 무리하게 시킨 즉석 요청(폴란드 동요 부르기)도 거절하지 않고 열심히 해 주시는 걸 보고 감동 받았다.  이보나씨 말이 가족들은 한국에 오면 열심히 관광 다니시고, 자신은 서점에 가서 한국 책들을 구경하신다고 .... 한국 그림책들은 수준이 매우 높고 볼료냐 등 국제 도서전에 나가면 정말 한국책들이 굉장히 우수하단 걸 느낄 수 있다시며 그 중 권윤덕 작가님의 <꽃할머니>와 유주연 <어느 날>을 뽑으셨다.  둘 다 나도 무척 좋아하는 책이라서 반가웠다.

 

 

 

 

 

 

 

우리나라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특히 막걸리, 소주, 김치 등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자신이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고 하셨다.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다.

 

강연회 초반에 한 가족이 낭송해주는 이보나씨의 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를 감상하였다. 끝까지 읽어 보진 못했었던 책인데, 엄마가 아끼던 식탁보에 그만 이렇게 다리미 자국을 남긴 딸이 엄마에게 야단 맞을 걱정을 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주 기발한 그림책이었다.  작가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그걸 창조적으로 해결해 나가는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고 한다. 책 내용 속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그건 비밀!  이렇게 딸의 실수와 잘못까지 창조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넉넉한 부모가 되어야 할 터인데....

 

 

  

 

두번 째로 읽어 준 그림책이었다. 상상 그림책 3번째 시리즈로 생각, 상상력, 창의력이 과연 어디서 오는 지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 과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그림책이었는데 누구나 한 번은 모두 해 봤을 질문. " 어디서 생각이 오늘 걸까?"를 진지하게 고찰해 보는 그림책이었다. 작가는 상상 그림책 시리즈가 그림이 단순하여 쉽게 보이고, 그래서 작업도 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이런 그림책들이야말로 더 생각을 오래, 많이, 논리적으로 해야 해서 더 어렵다고 하신다.  특히 단순한 형태들에 뭔가를 덧붙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용을 담아 내야 하고, 그 내용이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마저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에 몇 배 더 힘든 작업이라고 하신다. 

  

 

상상그림책 시리즈 중 나머지 하나는 바로 나에게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게 해 준 이 책이다.<학교 가는 길> 원제는 <내 발자국>이었다고... 

 

  

 

 

 

 

 

  이보나씨와 통역자 이지원님의 나긋나긋한 말이 참 인상적이다. 귓속말처럼 작게 속삭이는 것이 항상 소리 지르는 아이들과 생활하는 나로서는 참  낯설었지만 저렇게 말하는 데도 다 들리고 통하는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작은 소리로 교실에서 말하면 좋으련만 발표할 때와 떠들 때 목소리 크기가 마구 바뀌곤 하니....이보나씨는 굉장히 여성스럽고 수줍음이 많아 보이셨다.

  폴란드 작가가 어떻게 한국과 인연을 맺어 한국에서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바로 이지원 번역가님의 노력 덕분에 논장이라는 출판사와 인연을 맺어 이 곳에서 이보나씨의 그림책을 첫 출간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는 출판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다른 출판사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15권의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는데 정작 본국에서는 자신의 그림책이 유명하지 않다고....  가장 재미있게 작업을 한 그림책은 바로 <생각하는 ABC>이란다. 이번에 우리 도서실에도 비치하려고 주문을 넣었다.  먼저 출간한 <생각하는 ㄱ ㄴ ㄷ>은 전혀 한글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책인데 그만큼 작업이 어려웠지만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논장 출판사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나중에 사인을 해 주시는데 일일이 한글 이름을 그려 주시는 것을 보고 정말 감동 받았다. 나중에 사인 받으신 분들은 아마 한글 이름을 못 받으셨을 지도 모른다. 이보나씨가 너무 힘들어하셔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 딸이 용감하게 질문을 했다. 쟤가 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나 궁금해졌다. 아이가 질문을 하기 전에 이보나씨가 자신은 미술학도이지만 수학을 잘하고 좋아했다면서 예술쪽 사람들도 수학을 잘하면 좋겠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 딸이 그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 제 꿈은 예술쪽인데요 꼭 수학을 잘해야 하나요?" 이렇게 질문을 한 것이다. 장안이 웃음 바다가 되고, 이보나씨도 급히 손사래를 치시면서 " 절대 아니라고,  수학 못해도 된다고... 예술하는 사람 중에 수학 못하는 사람 많다고"  아이에게 용기를 주셨다. 만인에게 웃음을 선사한 우리 딸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이렇게 주눅 들지 않고 어디서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쭈욱 그렇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다른 분들의 질문과 이보나씨의 성의 있는 답변이 계속되었다. 오신 분들중엔 편집자도 계시고, 사서도 계시던데 일반인인 내가 당첨된 게 완전 행운 같아 보였다. 그런데 하루 지나고 나니 질문과 답변이 생각이 잘 안 난다. 메모를 했어야 했는데.... 어서 그 습관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이보나씨가 독자 모두를 공동 저자로 생각하여 이야기의 끝을 항상 본인이 일방적으로 끝맺는 게 아니라 독자도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열어 놓고 있다는 바로 그 말씀이었다. 언제 아이들과 함께 <학교 가는 길>을 읽고 발자국을 가지고 여러 가지 창의적인 생각들을 끌어내 봐도 좋겠고, <생각연필>을 읽고 연필에서 연상되는 그림을 그려도 좋겠다. 이보나씨의 말대로 공동 저자로서 이런 작업들을 함께 해 보면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어디서 오는 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사인 또한 아주 정성스럽게 해 주신 이보나씨와 함께 오신 남편과 큰 아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하고, 이렇게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신 논장과 알라딘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꼭 하고 싶다.  

딸이 가져 간 책 <마음의 집>에는 김희경 작가님의 사인이 들어 있어서 그걸 보여 드리니 매우 반가워하셨다.  

 

 질문하는  딸의 모습

 

 

 

 

한글 이름을 보고 열심히 따라 그리시는 이보나씨

 

 

  

사인 받은 후 이보나씨와 함께 

 

 

 

 

 

 

 

 

 

 

 폴란드 노래 부르는 이보나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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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27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용감한 따님!!
폴란드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해진 작가님이네요. ^^
이보나씨~ 하면 한국인 같기도 하지만요.ㅋㅋ
이분 책 4권 갖고 있는데 리뷰는 아직 하나도 안 썼네요.ㅜㅜ

수퍼남매맘 2011-09-27 13:40   좋아요 0 | URL
이보나씨 좋아하는데도 소장한 책이 고작 2권이더라구요. 앞으로 사야겠어요. 이번에 나온 책들도 관심이 갑니다. 여자의 아이의 초경을 다룬<여자 아이의 왕국>과 <생각 연필> 그리고 <천사들의 행진>의 주인공 야누슈 코르착에 대한 그림책도 준비중이래요. 조용조용 말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순오기 2011-09-28 00:20   좋아요 0 | URL
여자 아이의 왕국은 포토리뷰 쓸려고 어제 심야에 사진 찍었는데 못 올렸고...
야누슈 코르착에 대한 책을 준비한다니 출간되면 바로 사야겠네요. 좋은 소식~ ^^

희망찬샘 2011-10-0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완전 부러워요. 윽~~~ 배 아플라 해요. 그리고 이런 간접 경험도 너무 즐거워요. 너무 멋진 나들이네요. 저도 이 분 책 좀 읽었는데... 울 아들이 <<생각하는 ㄱㄴㄷ>>을 보면서 ㄱ으로 시작되는 말로, ㄴ으로 시작되는 말로 되어 있다고 놀라운 발견을 했다며 며칠 전 말해 주네요. 그 포스터(?) 우리 집에 붙여둔지 2년은 된 것 같은데... 하마터면 "야, 그걸 이제 알았냐?" 할 뻔했다니까요. "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냈어? 우리 찬이 정말 대단한데~"로 멋지게 마무리 지었지요. ^^

수퍼남매맘 2011-10-09 22:56   좋아요 0 | URL
한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저희 집에는 이 책이 없고, 이번에 도서실에 비치하려구 주문 넣었어요. 얼핏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한글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책을 쓰셨구나 생각했었거든요. 다시 보면 감흥이 남다를 것 같아요.
 

 

 

전문가들이 하는 강연회에 가 보면 독서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밑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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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1-10-0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뜻있는 강연회가 되겠군요. 음... 좋은 것 하는 곳은 다 멀다니까요. ㅜㅜ

수퍼남매맘 2011-10-09 22:53   좋아요 0 | URL
신청했다가 시상식과 겹쳐서 포기했어요.
 

와! 리뷰가 어느새 300편이 되었네. 

알라디너 중에는 1000여 편이 넘는 분들도 부지기수인 줄 알고 있지만 

고작 2년 밖에 안 된 햇병아리가 300편이 되었으니 자축한다.  

언젠가 1000편 되는 날도 오겠지? 그때까지 싫증 내지 말고 부지런히 책과 놀아야지.

300편 넘는 걸 기념으로 서재도 가을 분위기 물~ 씬 풍기게 바꿔 보았다. 

딸이 그림판으로 작업한 가을 그림으로 대문을 바꾸고, 배경은 노을을 담은 낙엽들로 꾸며 보았다. 

머지 않아 가을 대소동이 일어나겠지?   

한 살 한 살 먹어가니 가을이 점점 좋아진다.

 

오늘도 참 날씨 좋더구만 !

독감 예방 주사 맞고 방콕 하고 있다.  

주사 맞은 자리가 욱신욱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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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2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300편 자축, 함께 축하해요!
2년밖에 안 된 햇병아리였어요?
아주 오래된 알라디너로 생각했어요.^^
따님의 그림도 마치 그림책을 보는 거 같아요~~~~~

수퍼남매맘 2011-09-25 11:45   좋아요 0 | URL
정확히 말하면 2년도 채 안 되었죠. 고수 중의 고수이신 순오기님을 알게 되어 무한 영광입니다.

희망찬샘 2011-09-25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 드려요. 300편이 금방 600편이 되고, 또 1000편이 된다니까요. 저도 100편 넘을 무렵, 1000편 쓰신 고수님들 보고 나는 언제? 했는데, 그 목표를 달성했잖아요. 수퍼맘님 추격을 피해 저도 분발해야겠어요. ^^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니 마음이 쓸쓸해지면서 가을이 막 느껴지고 울적해지고... 그렇더라고요. 오늘은 정말 상쾌한 가을 날씨네요.

수퍼남매맘 2011-09-25 11:47   좋아요 0 | URL
가을 타시나 봐요. 울적해지지는 않고 이 좋은 날에 바깥 바람 쐬고 싶은데 주사 맞아 방콕하고 있으려니 답답하네요. 조금 후에는 이보나씨 만나러 갑니다. 딸이랑 함께 지하철 타고 가려구요. 사인 받을 책 3권 챙겨 넣었어요. 음! 기대 됩니다. 너무 울적해 하지 마시고, 가을 잘 나세요.
 
철학을 담은 잔소리 통조림 1218 보물창고 4
마크 젤먼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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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매일 이걸 듣고 살다가 중년이 된 지금은 매일 이걸 말하는 게 있다. 정답은? 바로 잔소리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주로 내가 하는 역할이 바로 잔소리다. 놀토인 오늘만 해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하는 일이 바로 잔소리이다.  하루라도 끼니를 굶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 잔소리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게 되는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는 주로 잔소리의 대상이 되었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역할만 바뀌었을 뿐 잔소리는 계속된다.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의 잔소리가 닮아 있는 게 신기하다. 대동소이한 32가지 잔소리 목록은 제목만 봐도 참 재미 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잔소리에 저자는 철학을 담아 잔소리에 담겨 있는 작은 뜻과 큰 뜻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32가지 잔소리를 다 읽고 나면 부모님이 하시는 잔소리가 노래 소리로 들리는 기적을 체험하지 않을려나? 그건 너무 무리인가?   

지금은 잔소리를 하는 입장이라서 이 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지만 잔소리를 듣는 대상인 수퍼남매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잔소리에 담긴 작은 뜻과 큰 뜻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들도 벌써 부모가 되어 있지는 않을런지.... 부모가 매일 하는 잔소리가 결국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줬으면 한다.

잔소리 몇 개만 소개해 보자. 

" 늘 깨끗한 속옷을 입어라" 는 잔소리는 어렸을 때 내가 상상하던 내용과 흡사하여 보면서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 잔소리를 하며 부모가 설득하는 말이란 " 만약 네가 학교 가는 길이나 집으로 오는 길에 사고라도 당하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게 될 거야. 그러면 응급실에서 의사가 네 바지를 벗길 텐데 네가 더러운 속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해 봐. 그 의사가 우리를 속옷도 안 빨아 입히는 나쁜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겠니? 그러니까 넌 늘 깨끗한 속옷을 입어야 하는 거야." 중고등학교 때 나도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면서 속옷을 갈아 입었던 생각이 불쑥 나서 웃었다. 서양의 부모들도 이런 말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다니... 하지만 응급환자의 속옷이 더럽다고 해서 치료를 해 주지 않을 리도 없고, 이 잔소리가 가지는 큰 뜻은 바로 "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도 보이는 부분만큼이나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함이란다.  

부모들이 밥상머리에서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 중의 하나인 " 채소를 먹어라" 에 담긴 큰 뜻은 " 우리가 하고 싶은 일과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고기,라면, 햄버거 등만 먹는다면 건강을 해칠 것은 뻔하다. 아이들은 이런 류의 음식을 원하지만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음식들은 아니다. 따라서 이 잔소리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과 내게 필요한 것이 일치하는 단계까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고 해도 늘 이런 일치감을 맛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특히 절제력이 부족하므로 불일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 TV를 보고 싶지만, 지금은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  이런 불일치의 순간에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 주는 게 바로 부모의 잔소리일 것이다. " 얘들아, 너에게 필요한 것부터 우선 해야지."

" 신발 끈을 제대로 매라"는 잔소리는 " 시작한 일을 제대로 끝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무슨 일이든지 '대충' 하는 것보다 '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 교실에서도 대충 하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화가 난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모자라는 상황도 아닌데 매사에 '대충' 하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제대로 즉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주로 하는 잔소리에 철학을 담아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큰 뜻을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가 매일 하는 잔소리에 이런 큰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매일매일 벌어지는 부모와 자녀의 다툼이 조금은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다. 잔소리라도 해 주는 부모가 옆에 있다는 것이 행복이란 걸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예전엔 몰랐듯이 우리의 자녀들도 현재는 잘 모를 것이다. 그래도 잔소리가 그냥 잔소리가 아니라 이런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어서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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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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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로써 모든 일을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임을 강조해왔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도 참고, 입을 닫아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고,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 따지거나 분노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훼방꾼이라든지, 매사에 딴지를 건다든지, 

사고가 부정적이라든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든다든지 등의 평가를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였다. 

오죽 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도 나왔을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은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분노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레지스탕스 출신의 94세 스테판 에셀은 현재 프랑스 젊은이들, 아니 세계 곳곳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지금이 마땅히 분노해야 함을 자신의 일생의 경험을 통해 말하고 있다.  

 

분노라는 단어가 가지는 어감이 대중들에게  부정적으로 들릴 지도 모른다.  

역자도 굉장히 고민 끝에 이 단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의 <분노>에 대한 이미지를 걱정해서일 게다.

분노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화를 참지 못하고 평정심을 잃고 폭발하는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의 분노는 개인적인 폭발이 아니라 

바로 공의적인 차원에서 세상사에 무관심하지 않고 마땅히 저항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분노하지 않을 만큼 좋은 사회이던가? 

어마어마한 사교육비, 극심한 빈부차, 엄청난 실업률, 치솟는 물가, 매일 쏟아져나오는 비리 사건 등등 

이런 것들을 보면서도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가?

스테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마음에 분노가 일지 않음은 결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무관심하다는 증거이고 

무관심이야말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최악의 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해마다 정치, 사회에 무관심해지고, 오로지 자신의 스펙을 쌓아 좋은 기업에 취직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거야말로 우리나라를 후퇴하게 만드는 지름길인 셈이다. 

자신이 살아갈 미래, 자신의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지금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분노해야 할 때 마땅히 분노하는 것이야 말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나도 젊을 때는 잘 몰랐었다. 

부모가 되어 보니 비로소 좀 알 것 같다. 

부모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야 

사랑하는 자녀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추천사를 쓴 조국 교수의 글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탄하며 자신의 말처럼 "선동질"을 해대는데 속이 다 후련하다. 

그의 글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존F 케네디가 단테의 <신곡>을 인용하여 재해석한 말이다. 

 "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  

무시무시하지 않는가?  중립, 중도라는 미명 하에 무관심하지 말라고 단테는 경고하고 있다. 

무관심했던 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뜨거운 지옥이라는 말이다.   

조국 교수는 말한다.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고 말이다.

 

그렇다. 무관심이야말로 세상을  파멸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정당한 분노가 필요한 때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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