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르 1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서원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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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읽은 미셸 투르니에. 나는 쭉 뻗었다. 모두 두 권, 6백 쪽이 넘는 분량. 얼마나 더 읽으면 여태 읽은 것이 아까워서 악착같이 끝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싶어 192쪽까지 갔다가, 한 문장이라도 더 진도를 나가면 눈알이 훅 쏟아지고 점심 때 먹은 돼지고기 김치볶음이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게 다 책이 지루해서는 아니다. 무슨 사무실 실내 온도가 27도냐고. 반팔 티셔츠에 구겨진 마 바지 입고 다니는 여름철 냉방온도가 24도이건만, (오늘은 2021년 12월 13일. 실외 최저기온 영하 11도) 스웨터에 기모바지 입은 한겨울이 27도면 어떻게 하느냔 말이지. 고온 건조한 열악한 사무실 환경에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 지독하게 철학적이고 광(빛)물리학적이고, 기독교적인, 장황한, 현학적인, 하이퍼레알리즘 적 변설에 나가 떨어졌다는 말이다. 가뜩이나 이마에 땀 흐르고, 횡경막 부근에 땀 배고, 부랄 밑에 습기 차는데 도무지 알아채지 못할,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뇌 속 백질과 회백질을 효과적으로 섞어 흔들어놓을 수 있을까 궁리하는 철학적, 신학적 변설을 늘어놓으니 어떻게 살라고. 아이고, 내가 졌다.

 

  저 프랑스 땅 브르타뉴 바닷가의 피에르소낭뜨라는 곳에 마리아 ‘바르바라’라는 이름의 여성이 산다. 상선의 이등항해사였던 첫 남편과의 사이에 첫 번째 임신을 하고, 과부가 된다. 그래 에두아르 쉬렝이란 키 크고, 몸이 날씬하며 자세가 우아하고 세련된 데다가 생기기까지 기막힌 남자와 재혼하고, 본격적으로 계속 임신과 수유의 사이클을 돌고 있었다. 마리아는 임신을 하거나 젖을 먹일 동안만 안정되고 행복해하는 유형의 여성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아이를 낳았는지, 몇 명인지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장과 폴, 일란성 쌍둥이를 낳을 때 수상쩍은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출산기능을 멈추어 버렸다.
  아,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을 읽을 때, 이런 이상abnormal 인간이 등장하면 그걸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다분하게 우화적 인간, <마왕>의 주인공 아벨 티포주 같은 특별한 천성을 가진 역할로 보아야 적절하다. 이런 특성은 마리아의 쌍둥이 막내들도 마찬가지다. 장과 폴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동시성, 쌍둥이성, 하나가 A를 생각하면 다른 하나도 동시에 A를 생각한다거나, 하여튼 원격 텔레파시 통신 비슷한 기능을 하는데, 이때 이들은 ‘아이올리스’어를 사용한다는 것도 역시 진짜 그러리라고 여기면 괜히 독자들 골치만 아프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엄마를 제외한 누구도 쌍둥이들을 구별하지 못하지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폴의 얼굴에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발적이고 단호한 모습이 어린 반면, 장의 얼굴에는 불안하고 개방적이며 호기심 많은 표정이 어렸다고 한다. 이걸 억지로 가져다 맞추면 폴은 나르치스, 장은 골드문트에 가깝다고 해도…… 되나?
  쌍둥이의 외할아버지가 이 브르타뉴 바닷가 동네에서 방직기 스물일곱 대를 갖춘 섬유공장을 하고 있다가, 외동딸 마리아가 재혼을 하고 자기도 힘이 빠지니 사위 에두아르 쉬렝에게 사장 겸 대주주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래서 여태까지는 마리아의 출산능력을 마감시키고 태어난 장과 폴, 일란성 쌍둥이들의 쌍둥이성, 특이한 능력을 위주로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가 갑자기 이들의 아버지 에두아르 집안 형제 이야기로 넘어간다.
  삼형제 가운데 첫째가 귀스타브로 렌느에 있는 대대로 살아온 집에 살고 있다. 아내와 딸 넷을 두었는데 우스꽝스러운 청교도적인 엄격함이 몸에 밴 인물로, 아내와 딸들이 자기 어머니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바람에, 어머니 바르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막내이자 셋째 아들 알렉상드르에게로 거처를 옮겼다. 알렉상드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남자 애인들과의 밀회를 즐긴다는 건 당연히 알지 못한 채.
  둘째이자 쌍둥이의 아버지 에두아르는 사업상 파리 생루이 섬 앙주 강변 아파트에 방을 하나 사놓고, 아내 마리아에게 실내장식을 맡긴 바 있으니, 은근히 파리에서 살고자 했던 것. 그러나 마리아는 집을 그럴듯하게 꾸미고는 얼른 피에르 소낭뜨로 돌아가 버렸다. 집과 아이들은 마리아에게, 섬유공장은 생산부장에게 맡기고 에두아르는 파리의 구매자에게 주문을 받기 위한 영업 사무실로 아파트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만? 절대 아니다.
  카바레의 야간흥행 마지막 순서로 등장해 신비로운 시를 낭독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플로랑스에게 홀딱 반해 아파트로 데려온 일도 있다. 플로랑스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에두아르를 몽마르뜨 언덕 가브리엘 거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데리고 간다. 창조적인 20년의 결혼생활 후에 자신의 존재가 균열이 나고 있으며, 애정에 대한 갈증, 특히 성적 갈망이 커지고 있지만 아내 마리아가 이런 방면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때가 1930년대. 열 받으신 여성분 계시면 시대를 감안해서 조금이나마 식히시기를. 그에게는 애정과 성이 삶에 대한 중요한 취향이다. 이런 인간도 있다. 그러나 마리아와 아이들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이란 것도 틀림없다.
  피에르 소낭뜨는, 일단 마리아-에두아르와 쌍둥이 장과 폴이 사는 집 ‘카신’이 있고, 도로 건너편에 생트 브리지트 수도원 건물이 있는데, 한 쪽은 장애아동복지원이 사용하고, 다른 한 쪽은 에두아르가 사장이자 대주주로 있는 직물공장이 있다. 그래서 카신, 장애아동복지원, 직물공장, 이렇게 세 가지를 합해 피에르 소낭뜨라고 한다.
  카신의 수많은 마리아의 아이들과 장애아동복지원의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갖가지 장애아, 자폐아들은 어려서부터 스스럼없이 어울려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카신의 아이들이 공장에도 자유스럽게 드나드니 복지원 아이들도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고, 직원들 역시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일종의 해방구역이랄까. 이것도 투르니에 특유의 우화적 장치라고 보시면 될 듯.

 

  근데 2장으로 넘어가면 단박에 주인공이 알렉상드르 쉬렝으로 바뀐다.
  형제들의 아버지 앙트완 쉬렝은 처음에 건설과 해체 분야의 기업으로 시작해 말년엔 직물과 기성복 중개업으로 전환하였는데, 아버지가 죽자 큰 형 귀스타브는 기업을 도시 쓰레기 회수와 정화사업으로 선회했고, 하여튼 둘째 형은 섬유업에 종사해서, 그림으로만 보면 아버지의 첫 사업은 큰형이, 말년 사업은 작은형이 각기 이어서 한다고 오해했었다.
  이러다가 1934년 9월 20일에 격렬한 가을 폭풍이 브르타뉴 지방을 강타했고, 강풍을 맞은 기중기가 추락해 3톤의 쓰레기가 귀스타브를 덮치는 바람에 한 방에 큰형이 숟가락 놓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갑자기 전 일가가 회의를 열고 난데없이 알렉상드르, 알렉시를 귀스타브의 후계자로 선임해버린다.
  알렉시는 당시만 해도 사회에서 어마어마한 지탄을 받던 동성애자. 종교와 이성애자 사이에서 그는 집행유예중인 죄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건강과 즐거운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있었다. 알렉시는 여기서 중학교 시절을 회상한다.
  렌느의 생 멜린이라는 베네딕트파 옛 수도원 안에 있던 티보르 중학교. 경이로운 권위로 둘러싸인 신비스러운 이름으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욕망과 충족을 채워준 도가니로 기억한다. 특히 플뢰레 회. 알렉시가 모임에서 가장 어리고 가장 늦게 가입해서 작은 꽃이란 의미의 플뢰레뜨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이곳에서 만난 두 명의 특이한 인물, 토마 쿠섹과 라파엘 가네사. 토마 쿠섹은 어둠에 대한 정열이 가득한 신학에 뜻이 있어서 후에 파리의 성당 신부가 되어, 밤에 상대를 찾아 공원을 배회하다 경찰에 체포된 알렉시를 석방시키는데 힘을 보태게 된다. 토마의 검은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예수에 대한 육체적, 관능적, 성적인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단다. 타인을 거부하는 암시. 일종의 폐쇄회로 속에 스스로 틀어박히는 일, 또는 사색.
  반면에 라파엘 가네사는 힌두교 우상 ‘가네사’, 풍만하고 알록달록한 동양화 속의 인물로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이며 숭배의 대상. 코끼리 머리와 네 개의 팔, 분칠하고 번민하는 눈을 하고 토템으로 쥐와 함께 다니는 신에 관심이 많다.

 

  어떠셔. 여기까지 읽으면 대단히 재미있게 다음 이야기가 펼쳐지겠다, 싶지?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앞에서 너무 많은 우화를 깔아놓아, 그걸 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미셸 투르니에 선생이, 이 다음부터 얼마나 꼼꼼하고, 촘촘하게, 마치 자디잔 저인망 그물처럼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자 하니, 재미는 다음으로 하고 사람을 잡는다, 잡아.
  하, 정말 시작은 대단했고, 클라이맥스와 결론은 모르겠지만, 전개 과정에 펼쳐지는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은 단어에 치어, 나는 항복. 백기를 높이 올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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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2-21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쌍둥이는 대체 어떻게 될까요.ㅎㅎ일단 저는 폴스타프님이 극찬하신 <마왕>부터 주섬주섬 담아놔야겠어요! 27도라니 거의 찜질방 중앙홀 정도는 되는듯 한데요?😅

Falstaff 2021-12-21 09:15   좋아요 2 | URL
옙. <마왕> 재미있습니다!
오늘도 사무실 온도 26.5 도예요. 아주 죽겄습니다. 하긴 뭐 이런 엄동설한의 염천지옥도 이번 겨울이 마지막이니 즐겨야 하겠지만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1-12-21 12: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정말 빽빽한 밀림같네요. 투르니에 소설은 한 권도 안 읽어봤지만 이상한 인간이 나오고 우화적으로 봐야하는군요.
192쪽 아깝지만 재밌는 책은 너무너무 많잖아요~~

Falstaff 2021-12-21 14:42   좋아요 3 | URL
투르니에, 좋은 작품 많아요. 골이 조금 흔들리는 것도 있고요. 이 책은 너무 흔들리더라고요. ㅋㅋㅋㅋ
아, 저도 쌍둥이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에 책을 덮어서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쿨캣님은 ㅎㅎㅎ 쌍둥이 얘기에 관심이 많으실 거 같은데요. (제가 다른 분하고 헷갈리는 건가요?) ^^;;;

coolcat329 2021-12-21 16:29   좋아요 0 | URL
네~쌍둥이나오는 소설이 흥미롭더라구요.
초보에게 투르니에 작품 추천하신다면 방드르디일까요? 마왕은 좀 어려울거 같아서요

Falstaff 2021-12-21 16:31   좋아요 1 | URL
제가 읽어본 투르니에는 만만한 게 거의 없더라고요.
전 <황금구슬>을 좀 편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왕>은 의미심장하고 재미있게 읽었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방드르디>는 읽은지 하도 오래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이 책을 계기로 투르니에를 수집하게 됐습니다. ^^

coolcat329 2021-12-21 16:39   좋아요 1 | URL
<황금구슬>도 찾아보니 쉽지 않아 보이네요. 그래도 언제 읽는다면 요 책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바람돌이 2021-12-21 15: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이 백기를 들게 하다니 어떤 의미에서든 미셀 투르니에는 대단한 작가네요. ^^

Falstaff 2021-12-21 16:0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삼실이 너무 덥기는 했어도, 아휴, 책이 보통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투르니에 한테는 계속 덤벼들 겁니다. ㅋㅋㅋㅋㅋ

stella.K 2021-12-21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재밌을 것 같긴한데 문제는 도전 의식이 생기지 않네요.
더구나 절판도 됐다고 하니 굳이 애써 찾게될 것 같진 않고.
대단한 작가이긴한데...

Falstaff 2021-12-21 16:27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끝까지 읽을 수만 있으면요. ㅠㅠ
글쎄 2백 쪽까지 나갔는데 아직도 쌍둥이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
 
도시와 개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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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장편 데뷔작. 작가 본인이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고등학교를 2년 다니다가 중퇴한 전력이 있다. 이 군사고등학교는 페루의 영웅 레온시오 프라도를 기리는 학교다. 레온시오 프라도는 쿠바와 필리핀 등지에서 스페인에 맞서 싸웠고, 태평양 전쟁에도 참가한 페루의 영웅이다. 여기서 말하는 태평양 전쟁은 볼리비아-페루 연합군이 칠레와 한 판 붙은 전쟁을 일컫는데, 이 전쟁의 결과 볼리비아가 해변을 빼앗겨 현재의 완전 내륙국가로 떨어진다. 내륙국가면서 아직도 해군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언젠가는 잃어버린 국토를 수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세상사가 너네 마음대로 되는 거니? 페루는 이 당시 전쟁 당사국이 아님에도 이웃한 볼리비아를 소위 형제국으로 알고 자국 축구국가대표팀처럼 용맹한 칠레에 맞서 싸웠다가 쌍코피를 흘린다. 패전 후에 이웃 국가가 될 힘센 나라 칠레와 사이만 멀어진 뻘짓을 해버린 꼴이니 어이없다고나 할까.
  이 군사고등학교에 입학하면 3학년을 부여하고, 5학년을 마치면 졸업을 하는 기숙학교다. 학교 안에 여성이라고는 왕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생도가 왼손으로는 주둥이를 막고, 오른손으로 앞다리를 부러뜨려 ‘절름발이년’으로 불릴 개 한 마리밖에 없다. 표지에 맹견 도베르만 세 마리가 그려져 있어서 진짜로 개가 등장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개’는 각종 약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4학년 입장에선 신입생인 3학년이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괴롭힐 수 있는 개고, 5학년은 3학년과 4학년 모두 개이며, 장교에겐 생도 모두 개라고 부를 수 있다. 교장 대령은 학교의 누구라도 개라고 말하고 호칭할 수 있는 권력이 있지만 당연히 체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이 학교에 1950년부터 52년까지 두 해 동안 다니면서 학교 내에서 온갖 폭행을 경험해 그것을 소설로 쓴 것이니만큼 내용은 사실과 가까울 것이라고 본다. 작가 서문에 요사는 어린 시절에 군사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알베르토(시인)과 재규어, 시골 촌놈 카바와 노예, 작품의 무대가 되는 알레그레 동네의 미라플로레스 사람들과 카야오에 있는 라페를라 동네 사람들에게 소재를 얻었다고 밝힌다. 이 소재들을 가공하는 재료는 청년시절의 문학적 경험으로 수많은 모험소설, 참여문학에 관한 사르트르의 주장에 대한 믿음, 말로의 소설, 읽어버린 세대의 모든 미국 소설가, 포크너에 대한 존경을 기초로 해서 작가의 환상 약간과 젊은 시절의 꿈, 플로베르의 가르침을 섞어 소설의 진흙을 반죽했다고 썼다. 세계적인 작가답게 화려하게 말했지만, 그냥 어린 시절의 경험에 소설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독서경험과 상상력을 보태 작품을 썼다는 말이다. 괜히 어려운 작가들 이름 나왔다고 쫄지 마시라. 다만 특별히 포크너와 플로베르를 거론한 것이 좀 캥기는데, 시도 때도 없고 순서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회상 장면 때문에 약간 헛갈릴 수는 있지만, 그것도 처음에만 그렇지 주욱 읽어나가면 금방 적응이 된다.

 

  이 책을 탈고하고 30년이 흘러 페루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일본계 후지모리에 이어 영광의 준우승을 차지하고, 20년이 더 흘러 노벨 문학상을 받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데뷔작이어서 그랬는지 기대가 너무 컸다. 대표작이 데뷔작인 경우가 상당히 많고, 분량 또한 서문까지 합해 6백 쪽이 넘어가는 장편이라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물론 재미…는 있다.
  우리말로 번역한 요사의 소설을 읽은 독자는 페루(판탈레온 특별 봉사대), 멕시코(세상 종말 전쟁), 도미니카 공화국(염소의 축제) 등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골라가면서 요절을 내는 요사 특유의 정치소설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페루의 수도 리마 근방에 위치한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생도들, 이들을 둘러싼 학교 내 폭력과 학교 밖 가정과 동네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일들이 뒤섞여 있어서, 정치소설이라기보다 사회소설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독자로서의 나는 남자 기숙학교, 폭력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서열집단에서 벌어지는 야만의 광기에는 이미 익숙하다. 서열집단에 끼지도 못하고 학업 성취와는 관계없이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가장 비참한 ‘노예’ 신분으로 떨어져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을 받는 현상 등도 마찬가지다. 요사는 이런 익숙한 그림에 사춘기 또는 사춘기를 갓 넘은 남자아이들의 맹목적인 사랑이란 감미료를 첨가했다. 그렇다고 남자 기숙학교의 풍경을 충격적이라거나 놀랍다거나, 아니면 신선하게 드러내지는 못했다고 읽었다. 작년 미셸 투르니에가 쓴 <마왕>에서도 작품 전체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남자기숙학교가 등장한 바 있다. 이외에도 남자기숙학교의 만인에 대한 이리 상태는 많고 많은 작가들이 이미 썼다.
  요사가 이들과 다른 점은, 다른 작가들은 주인공(들)의 성장에 한 과정으로 기숙학교 시절을 등장시키는데, 이이는 전적으로 기숙학교 시절‘만’을 대상으로 작품을 썼다는 점. 그것도 가장 폭력적인 ‘소총’을 상시 휴대하는 군사고등학교 학생들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가들보다 더욱 위험 수위가 높은 곳에서 출발한다.

 

  첫 장면은 화학 중간고사 바로 전날, 금요일 밤에 악동 넷 가운데 산골 촌놈 포르피리오 카바가 주사위를 던져 창문을 넘어 교무실로 잠입해 화학 시험지를 베껴오는 일을 맡는다. 걸리면 퇴학을 면할 수 없는 중대 교칙 위반인 건 당연하다. 카바는 성공적으로 화학 시험문제를 공책에 베껴 쓰는 데 성공하지만, 창문을 다시 넘어오면서 유리창을 밟아 깨고 만다. 이건 나중에 이들의 행위가 발각되리라는 것의 복선이고, 당연히 암시한 대로 발각된다. 왜 악동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험에 목숨을 걸까? 악동, 왕초그룹이라고 이름 붙인 재규어, 카바, 왕뱀, 곱슬머리, 네 명의 구성원은 학급은 물론이고 신입생 시절부터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폭력적인 그룹으로 감히 손댈 수 없는 언터처블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렇다고 돈이 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 이들은 시험문제를 빼내고, 그걸 같은 반 생도들에게 비싸게 받고 팔아, 매점에서 시내보다 두 배나 비싼 술, 담배를 사고, 외출할 때의 용돈으로 쓴다. 물론 이 시절을 건너온 남자들은 알겠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일 자체가 극도로 위험해서 자신들이 아니라면 감히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할 남자, 아니, 수컷다운 행동 때문이었으리라.
  반에서 몇 명 안 되는 금발의 백인인 알베르토는 ‘시인’이라는 별호로 불리는데, 아버지가 하도 바람둥이라 엄마하고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을 때 학교에 들어오게 된다. 이 학교는 완전히 문제아거나 너무 여린 성격의 아이라서, 양방향으로 성격교정을 위해 부모에 의하여 들어오는 것이 일반적이고, 알베르토와 반장(학생소대장) 아로스피데 등 몇 명은 가문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불행하게 용돈이 충분하지 못한 시인은 결국 화학의 정답을 사지 못했으나 시험시간에 노예가 해답이 적힌 쪽지를 던져줘 펼쳐보려는 순간 가장 엄격한 군인 감보아 중위에게 발각되어, 중위가 보았다시피, 아직 쪽지를 펼쳐보지 않은 시인의 시험지는 좍좍 찢어지고, 노예는 토요일 외출, 외박이 금지된다.
  노예. 애초에 군인이 될 마음이 전혀 없는 내성적인 소년. 어려서 아버지와 떨어져 살다가 나이가 든 후 합치는 바람에 집에서도 별로 친하지 않은 괄괄한 성격의 아버지는 노예 리카르도 아라나의 성격개조를 위해 군사학교에 집어넣었는데, 이웃 여학생 테레사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터. 오직 하나 의지할 사람은 테레사 한 명. 지옥같은 학창시절을 보내는 노예는 오직 하나 토요일이 되어 테레사를 만나는 꿈 하나로 버티고 있던 터, 외출 외박 금지는 불쌍한 노예 입장에선 어떤 이유에서도 다시 찾아야 할 꿈이요 로망이었다. 바로 여기서, 가장 비천한 신분의 꿈이 무너지면서, 기숙학교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고등학교의 가장 유명한 학년, 그중에서도 제일 남자다운 학급이 산산이, 아예 박살이 나고 만다.

 

  요사가 썼다. 재미있다. 다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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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2-20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저는 재미있다에 방점이 막막 찍히는지.....

Falstaff 2021-12-20 16:52   좋아요 1 | URL
바르가스 요사에 기대가 크신 분께 권하기는 좀......
제 취향엔 요사 > 로스 이긴 합니다만. ㅎㅎㅎ

stella.K 2021-12-20 1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사 님께서 정치가이기도 했군요. 몰랐네요.
근데 잘 생긴 것 같아요. 인기 많았을지도.ㅋ
저도 오래 전 <염소들의 축제>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문동에서 리뷰대회 해서 출전에서 동메달인가? 딴적 있어요.
근데 썩 재미있었던 건 아니더라구요.
그래도 리뷰대회에서 뭐라도 딸려고 온갖 미사여구를 썼을지도 모르겠네요.ㅋ
저 갠적으론 남미 소설이 낮선 걸까 싶기도 하고요.

Falstaff 2021-12-20 16:53   좋아요 2 | URL
댓글은 집에 가서.... 퇴근합니닷! ㅋㅋㅋㅋ

stella.K 2021-12-20 18:23   좋아요 1 | URL
뭐 중요한 말씀을 하실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
기대되는데요?^^

Falstaff 2021-12-20 19:50   좋아요 2 | URL
오오.... 별 거 아닙니다.
아깐 술이 급해서 말입죠. ㅋㅋㅋㅋ
제가 꼽는 최고의 요사는요, <천국은 다른 곳에>랍니다. 새물결 출판사가 찍어서 지금은 절판인데, 세상에, 절판 시킬 것이 있지 어째 이걸.....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하고 비교해도 너끈하게 카운터 블로우를 날릴 수 있는 명작인데 참 아쉽습니다.
아우, <염소 축제>도 괜찮잖아요? 문둥이들 집에서 동메달이라니, 그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죠. ^^
남미 소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걍 두드리셔도 좋을 듯한데 말입죠. 전 이사벨 아옌데 추천입니다!!!!

stella.K 2021-12-20 19:59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술!ㅋㅋㅋ
근데 나름 중요했네요. <천국은 다른 곳에>.
혹시 중고샵에라도 뜨면 손을 써 봐야겠군요.

남미 소설이 어려운 건 아닌데 저는 아직 착착 붙질 안아서 말입죠.ㅠ
자주 읽으면 좋구나 할 텐데.
알겠습니다. 기억하겠슴다.^^
 
갑사로 가는길 범우문고 219
이상보 지음 / 범우사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저 먼 먼 시절, 중학교 1학년이었을 적, 부모가 읽던 잡지쯤에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이 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멀리 대전인가 공주에서 한 밤에 택시를 타고 부모와 함께 동학사인지 갑사인지 비포장길을 달리던 기억도 있다. 그때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갔던가,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었는가도 가물가물하다. 당간지주와 남매탑 앞에서 어린 내가 차려 자세를 하고 부모와 함께 찍은 사진이 앨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흑백이었었나, 색 바랜 초기 컬러 사진이었나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 가을이었고, 산을 넘어 숙소에 도착해 우연히 만난 두 젊은 등산객이 굵직한 살모사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휘발유 버너에 푹푹 끓여 기름이 뽀얗게 뜨는 곰국을 끓였던 건 확실하다. 계룡산 남매탑 앞에서 탑에 관한 전설을 이야기해주던 이는 국문과 나와 여고에서 교사를 하던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아마 그래서 중학교 올라가 우연히 잡지에서 찾아 읽은 <갑사로 가는 길>이 그토록 오래 기억에 남았었던 건 아닌지. 수필의 내용은 다 잊고 오직 제목일지언정.
  이상보의 수필집 《갑사로 가는 길》을 본 순간 망설이지 않고 샀다. 조금쯤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여태 재미있게 읽은 수필집은 사실 몇 권 되지 않는다. 문일평이 찬란한 산문으로 만든 《화하만필》, 이어령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양주동의 《문주반생기》, 변영로의 《명정 사십년》 정도. 김소운의 《목근통신》과 이상의 《권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이 목록에 들지 않는다. 《먼 북소리》는 읽다가 버렸다는 걸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한 마디로 수필이란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갑사로 가는 길》의 기억이 워낙 추억으로 저며, 사서, 이제 읽었고, 실망했다. 그냥 기억만 하고 있을 것을.
  이상보는 1927년생이다. <갑사로 가는 길>를 발표한 해가 1972년. 나는 이 수필집에서 1970년대 이전의 수필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수필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주로 김영삼 집권 시기에 몰려있다.
  그리고 <갑사로 가는 길>. 내가 여태 가슴을 저며 하고는 했던 갑사로 가는 길은 이상보의 글 속, 동학사에서 남매탑을 거쳐 갑사로 넘어가는 길이 아니라, 야심한 밤에 택시를 대절해 거의 완전한 어둠을 뚫고 달리던 기억 속의 비포장도로였던 거다. 아마 이상보와 같이 부모와 나도 동학사에서 출발해 갑사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차라리 읽지 말 것을. 그냥 마음속에 갑사 가는 길, 이라는 하나, 가상의 글을 담고 있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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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12-17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갑사라는 절이 있군요. 찾아보니 꽤 큰 절 같은데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어머니께서 여고 국어선생님이셨군요. 폴스타프님 독서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셨을거 같아요.

근데 마음 속 추억이 변색되서 저도 안타깝습니다😢


Falstaff 2021-12-17 10:05   좋아요 3 | URL
옙. 계룡산에서는 갑사와 동학사가 제일 유명하지요.
저 시절 갑사는 담장도 없던 아주 작은 절이었답니다. 건물도 대웅전하고 그저 작은 요사체, 쇠로 만든 당간지주 정도였습니다. 지금 저도 검색해 찾아보니 많이 커졌군요.
대웅전과 지금이름으로 갑사강당이라는 건물이 흥미롭네요.
지붕의 형식이 맞배지붕입니다. 앞쪽과 뒷쪽의 기와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는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로 고려 시절에 많이 사용하던 방식으로 강건하고 우직한 느낌이 납니다. 조선으로 넘어가면 화려한 팔작지붕 형식으로 바뀌는 게 보통입니다만, 대웅전은 정유재란 이후 16세기에, 강당도 조선 후기에 지었으면서도 맞배지붕 형식을 적용했군요.
하여튼 절이란 절은 다 중수, 불사, 신축으로 화려해지는 것에 반비례해서 정감이 사라져가 아쉽습니다.

ㅎㅎㅎ 제 독서는 어머니 쪽보다 아버지 쪽에 더 영향을.... ^^;;

coolcat329 2021-12-17 10:14   좋아요 3 | URL
아 예전엔 작은 절이었군요. 갑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건 우직한 절이군요.
맞배지붕! 찾아보니 우리나라 한옥에 지붕이 여러종류가 있네요. 팔작지붕, 모임지붕 등등...
그냥 다 같은 지붕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알고 보니 너무 달라보입니다.

맞배지붕 참 심플하면 우직한 느낌이에요. 지붕공부도 재밌네요 😁

아버지께서 책을 좋아하셨군요.👍

Falstaff 2021-12-17 12:01   좋아요 2 | URL
요샌 잘 안 다니는데, 꽤 쫄쫄거리면서 다녔습니다.
옛 건물 같은 데 가면 안내판 있잖아요. 거기 보면 지붕 양식, 공포, 기둥 등등 여러 건축용어가 나옵니다. 그걸 유심히 관찰하면서 다니니까 따로 배우지 않아도 왠만큼은 알겠더라고요.
제 선친은 책을 많이 읽으셨습죠. 제 서재 타이틀 ˝책일 읽거나 술을 마신다˝ 여기까지가 늘 얘기하시던 모토! 였습니다.
술꾼에, 구라꾼이시기도 했습죠.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12-17 13:20   좋아요 2 | URL
폴스타프님이 아버지를 닮으셨군요! 저는 집안에 책을 읽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부모나 형제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앞으로는 어디 가면 안내판 좀 봐야겠네요. 어딜 가도 어디를 갔다왔는지도 모를 때도 있어요 ㅠ

그레이스 2021-12-17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학때 갔던적 있어요
계단때문에 힘들었던...
생각보다 갑사에서 받는 느낌이 없어서 실망했던...
어려서 그랬나봐요 ㅎ

Falstaff 2021-12-17 11:59   좋아요 2 | URL
<갑사로 가는 길>을 1972년에 발표했는데요, 이 작품에서도 산길에 계단이 많다고, 허벅지에 알 밴다고 툴툴거리는 장면이 있답니다. 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12-17 14: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지두 제목으로만 아는 책인데요. 유명했잖아요. 폴스타프님이 실망했다니, 지는 잊겠습니다^^;; 그나저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자냥님과 더불어 리뷰 달인이세용. 제가 엄청 샘 나하는 거 혹 아세요??? ㅋㅋ

Falstaff 2021-12-17 14:49   좋아요 2 | URL
옙. 그냥 옛날 이야기 한 편이더라고요. 이거 중고도 아니고 새 책 산 건데 말입니다. ㅋㅋㅋ
아휴, 저를 샘내시다니요. 아무 것도 아닌데요. 요즘 부쩍 비행기 많이 타고 있어서 겁납니다. ^^;;;
 
태평양을 막는 제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7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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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을 조금 넘긴, 당시 기준으로 보면 중년의 과부. 프랑스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가난했으나 공부를 잘 해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상급과정 학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도 부모가 반대하지 않았다. 졸업 후 2년 동안 북부 프랑스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899년의 한 일요일, 면사무소 유리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만다.

 

  “식민지 군대에 지원합시다.”
  “젊은이들이여, 식민지로 오십시오. 기회가 기다립니다.”

 

  포스터에는 로브그리예의 <질투>에서나 볼 수 있을 번성하는 바나나 농장에서 나무 그늘 아래 백인 부부가 편한 모습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있고, 사진을 찍을 때 미소를 지으라고 명령을 받은 것이 분명한 원주민들이 즐거운 얼굴색을 하고 분주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식민지 행에 관심이 생긴 선생 앞에 역시 초등학교 교사이며 이국취향에 흠뻑 빠져 프랑스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남자가 나타나자 즉각 결혼했다. 당시엔 십대 후반, 늦어도 이십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이기도 했으니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부부는 식민지 교사직에 지원했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넓은 영토에 교사로 임용된다.
  식민지, 식민(植民)이 무슨 뜻인가. 심을 식, 백성 민. 이것만큼 노골적인 말도 없다. 대항해 시대 이후에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신대륙의 넘쳐나는 재화를 효과적으로 가져오는 것과 과밀한 자국 내 빈곤층을 효율적으로 구제하는 일을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하여 힘 센 나라의 백성(民)을 신대륙에 심는(植) 일이었다. 이를 위하여 절대로 자기네 백성이 아닌 식민지 원주민들은 간신히 굶어죽지 않을 노예상태로 삶을 유지시켜주고, 그들이 생산하는 모든 물자, 땅에 묻혀있는 모든 자원을 모국으로 이전하는 행위가 식민통치다. 이 젊은 부부 역시 면사무소의 유리창에서 식민지로 오라는 포스터를 보고, 식민지로 가기만 하면 많은 원주민을 노예나 노예 비슷한 상태로 지배하면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한 부분인 코친차이나로 갔다. 정착한지 2년 만에 아들 조제프와 딸 쉬잔을 낳았다. 아내는 쉬잔이 생기자 교사직을 포기하고 프랑스어 개인교습을 하면서 육아에 전념한다. 때마침 젊은 아빠가 원주민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해 몇 년간 엄마의 기억 속에서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가장 좋았던 행복의 시기를 누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불행이 가족을 덮치기 시작한다. 불행은 너무 이른 시기에 아빠를 잃은 것부터 시작한다.
  가장의 무책임한 죽음. 자연사라도 처자식을 남긴 죽음은 너무 무거운 죄다.
  멀고도 먼 타국에서 아이 둘이 달린 과부가 된 어머니는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하고 있던 프랑스어 개인교습에 이어 피아노 교습까지 시작했고, 이것도 모자라 당시 무성영화를 상영하며 사이사이에 피아노 연주를 하는 에덴 시네마에 피아니스트로 취직을 했다.
  어머니는 울었다. 꼬맹이들 교습은 어떻게라도 시키겠는데 대중을 상대로 연주를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서. 다행히 극장주가 괜찮은 사람이라 시간을 충분히 주고, 게다가 거의 비슷한 곡만 연주하면 됐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무난히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 어머니는 극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만 집에 둘 수 없다는 건 핑계였고, 이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피아노 노동을 하고 있으니 잘 봐달라는 뜻이었다. 관객은 호의적이었다. 원수 같은 남편. 원수 같은 남편. 원수 같은 남편.
  이렇게 십 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아 식민지 토지국에 토지 불하신청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신청을 하고 또 2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람 평야, 수도 사이공에서 8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 매년 7월이면 남중국해, 라는 촌스런 이름보다는 태평양이라고 부르고 싶은 바다에서 바닷물이 범람해 평야에 심은 모든 작물을 쓸어버리는 불모지 백 헥타르와, 백 헥타르의 불모지를 마치 옥토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달려 있는 듯한 5 헥타르의 평지로 이루어진 땅.
  태평양은 7월이 되자 어머니가 심은 논에도 공평하게 범람해 농사를 완전히 망쳐놓았다. 이때 어머니는 희망을 본다. 방조제를 지으면 된다는 것. 마침 통나무도 도로공사를 마치고 그때 쓰던 것이 그대로 있으니 완전히 헐값에 구할 수 있고, 방조제가 완성되면 무려 5백 헥타르의 평야를 얻는다는 계산으로 지역 원주민 수백 명을 동원할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5헥타르의 좋은 땅 위에 지은 방갈로와 기타 등등을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려 기꺼이 엔지니어의 검토 없이 일을 벌이고, 수개월 동안 제방을 쌓아간다. 그러다 다시 7월. 태평양 바닷물이 범람할 시기가 오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단 하룻밤 만에 태평양은 제방을 모두 쓸어 가버렸다. 이제 원주민도 다 떠나고, 조제프와 쉬잔도 아무 의욕 없이 절망과 권태와 의욕상실에 지쳐갈 때, 어머니는 제방 건설의 꿈을 결코 놓지 않는다. 조금씩 정신이 빠지기 시작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어떻게 해서든지 작은 희망을 놓고 싶지 않은 본능일 수도 있다.

 

  없는 살림에 2백 프랑으로 말과 마차와 마구를 샀으나 말이 너무 늙었다. 마차가 있으면 조제프가 람에서 운송업으로 약간의 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말이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은 넘어버려 풀조차 먹으려 하지 않았다. 낡은 시트로앵 B.12로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달려야 하는 람까지 그런 말을 끌고 갔다 왔고, 말은 벼의 모종 위에 주둥이를 박고 있어도 너무 지쳐 뜯어먹지 못했다. 그러다가 죽었다. 불행은 계속 오는 것이니까.
  양철통 수준의 시트로앵 B.12를 타고 람의 군 회관에 도착하자 먼지 하나 없이 세차가 된 5만 프랑짜리 레옹 볼레가 서 있고, 회관 안에는 큼직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인장반지를 낀 조 씨 성의 화교가 앉았는데, 참 못 생긴 얼굴에다가 어깨도 좁고 팔도 짧고, 키도 중국인 평균이 안 되는 것 같은 인간이 최고의 여름 비단인 작잠견 옷을 입었다. 레옹 볼레의 주인. 고무농장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부동산을 사고 판 차익으로 거금을 모은 화교 부동산 투기꾼 백만장자의 아들이다.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재주도 없고, 파리에 유학을 했지만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 다시 인도차이나에 와 아버지 사업을 거드는 무능한 한량이다. 있는 건 돈밖에 없다. 이 조의 눈에 열일곱 살짜리 쉬잔이 들어온 것.
  어머니는 조를 통해 자기 희망을 이룰 기회를 엿본다. 쉬잔으로 하여금 조의 애가 타게 만들라고 하고, 조에게는 쉬잔과 자고 싶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쉬잔은 결코 조를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도 어머니의 뜻을 좇아 조에게 샤워하는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고 비싼 축음기를 선물 받는다. 조의 어머니 것이라고 하는 2만 프랑짜리 다이아몬드도 받는다.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큰 그림이 그려진 상태. 2만 프랑으로 은행 빚을 갚고, 다시 5만 프랑쯤 대출을 얻어 마지막으로 제방을 완성한다는. 누구나 알고 있다. 결코 태평양의 범람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 결국 남을 것은 완벽한 절망. 식민지 람 평야에 결국 남을 것은 원주민 밖에 더 있겠나.

 

  뒤라스는 프랑스인으로 <태평양을 막는 제방>에서 당연히 프랑스인의 시각으로 작품을 썼다. 식민지 토지국 공무원들이 식민지의 프랑스인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도 잘 보여주고, 결국 그들에게 죄를 묻는 일은 착취당한 프랑스인들과 뜻을 함께 했던 현지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도 꽤 의미가 있다.
  이런 정치, 식민주의도 정치의 하나니까, 정치적인 논의는 그만하자. 나는 책을 덮으면서 가슴 속에 태평양의 썰물이 좌악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는 자기만의 문장이 아니라, 늘 읽을 수 있는 보통의 문장으로도 뒤라스는 독자를 이렇게 쓸쓸하게 만들 수 있었구나. 절망에 대한 약한, 가없는 희망을 유지하며 늙어가는 여자의 모습에 집중해서 읽었다. 역시 “희망을 가진 사람은 불행하고, 희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더 불행”한 건가.
  8년 후 뒤라스는 역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하는 <부영사>를 쓴다. 십대 소녀가 출연한다. 무대는 바닷가가 아니라 호숫가다. 그 책도 인상 깊게 읽었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한 번 들춰봐야겠다.

 


 

앗차!
제목으로 썼으며 본문에도 있는 문장은 정호승의 시에서 따온 건데, 어느 시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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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6 0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퐐님 별다섯! 그렇다 그렇다! 제가 먼저 읽은 책 퐐님 리뷰로 보는 거 처음인데 엄청 생생해요. 저는 아니땐 굴뚝의 희망보단 정직한 절망이 더 낫지않는가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너무 열심히 살면 정직하게 절망하기가 얼마나 어렵나… 그런 생각을 하게되더라구요.

Falstaff 2021-12-16 09:10   좋아요 4 | URL
앗, 이게 처음입니까? ㅎㅎㅎ

하여튼 결론은, ˝절망엔 약이 읎다!˝ 였습니다.
독자의 가장 큰 시선은 조제프와 쉬잔을 향할 겁니다. 그건 독자 나름대로 품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뜻에서 엄마 시각으로 썼는데요, 엄마는 사실 희망을 가장한 절망에 절절하고 절절하게 빠져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절망의 시작은 웬수 같은 남편의 죽음일 겁니다.
쉬잔, 어린 뒤라스로서 충분히 실감하지 못했을 고통과 고독의 시발점. 그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라니, 참 나.

- 2021-12-16 12:02   좋아요 3 | URL
절망의 시작이 남편의 죽음이지 않았을까. 그렇게도 읽는 구나~ ^^ 역시 소설 같이 읽는거 너무 재미지다요.~~~

Falstaff 2021-12-16 12:2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이 세 식구가 내리는 행복의 정의는 중국인 조와 달리 거의 전적으로 돈에 달려 있습지요. 조제프가 조한테 행복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얘기하잖아요.
그러니 안정적 수입이 갑자기 끊긴 아빠의 죽음이 절망의 시작이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꼬박꼬박 저축해 둔 돈까지 병치레로 다 날렸다면 아이고....

잠자냥 2021-12-16 1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암튼 전 뒤라스 작품 중 이 작품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요!

Falstaff 2021-12-16 11:11   좋아요 3 | URL
솔직히 뒤라스한테 거장이니 대가니 하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오직 제 생각입니다. 행운의 손이 뒤라스를 쓰다듬어 인플레이션 된 명성을 즐기고 있으니 저승에서나마 기분 좋을 듯합니다. (다시 강조. 오직 제 생각입니다.)
습작하는 지망생들이 (진짜 습작으로) 이이의 작풍을 사용/참작/참고/모방해 단편을 써보는 정도로는 아주 적당할 것 같기는 합니다만.
저도 뒤라스 작품에 별 다섯 개 줄 수 있는 건 이 책 말고는 없습니다.

이런 댓글 잘못 쓰면 코피 터지는데.... 흑흑.....

stella.K 2021-12-16 15: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웅~ 제목 좋네요. 시인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요?ㅠ

Falstaff 2021-12-16 20:02   좋아요 2 | URL
ㅎㅎㅎ 시인은 별자리를 타고 나야 합니다!

stella.K 2021-12-16 20:26   좋아요 1 | URL
아멘! ㅋㅋ

쎄인트saint 2021-12-16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1-12-16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thkang1001 2021-12-16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 2021 서재의 달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얄라알라 2021-12-16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엠블렘을 어딘가에 마구 감춰놓으셨음이 분명

폴스타프님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12-16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달인 축하드립니다. 실제 생활도 달인 포스가 느껴집니다~!!

Falstaff 2021-12-16 20: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만장하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실 달인, 이게 혜택 가운데 1년 동안 무조건 플래티늄, 죽여주거든요. 요즘 기념품은 별거 없어요. 걍 다이어리 하나, 캘린더 준다는데 모르겠고, 예전에 (전에도 받은 적이 ㅋㅋㅋ 있답니다) 비하면 그저 흉내내는 수준입니다.
근데요, 솔직히 달인...되려면 책 많이 사야 하니까 저절로 플래티늄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하여튼 이런 이벤트 해주는 알라딘이 고맙기는 합니다.

독서괭 2021-12-17 10:49   좋아요 1 | URL
폴님 축하드립니다~ 역시 엠블럼 어디 숨겨놓으신 거죠? 절대 하나뿐일 리 없다..
저도 그 생각 했는데, 플래티넘 서비스 좋다고 해도 어차피 지금도 구매실적으로 플래티넘인데, 의미가 있을까-^^;; 내년엔 좀 덜 사고 많이 읽어볼까? 싶지만 가능할런지 모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12-16 2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리뷰 읽으니 이 소설이 다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식민이라는 단어가 참 아프고도 질깁니다^^
리뷰의 달인이십니다**

Falstaff 2021-12-16 20:30   좋아요 2 | URL
아휴, 소쿠리 비행기 탔다가 떨어지면 을매나 아픈데 이리 띄워주십니까. ^^;;

그레이스 2021-12-16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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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해 읽다가 중도작파한 게 세 작품이다. 셋 다 12월에 나왔다. 연말을 참 아름답게 맞는구나.
폭탄 맞아버렸다. 135쪽에서 항복. 개의 썩은 시체같은 냄새가 나지만 날 것에 소금과 올리브유만 뿌려도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그물우산버섯일 수는 있겠지. 그러나 시식을 하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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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5 16: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뭔데 이렇게 웃기죠. 저 핫도그 먹다 더럽게 흘림 ㅠㅠ 폴스타프님 연말 액땜이라고 생각하시고 로또라도 하나 번호는 1 3 5 골고루 넣어서요 ㅎㅎ ~

Falstaff 2021-12-15 18:56   좋아요 2 | URL
에효, 정말 로또 한 번 사야겠습니다. 이거 영 쫄려서 말입죠. ㅋㅋㅋ

coolcat329 2021-12-15 1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저도 왜 이리 웃기는지요 🤣

Falstaff 2021-12-15 18:56   좋아요 3 | URL
흑흑... 재미나셨어요? 전 화딱지가 와장창, 속으로 잠자냥님 백자평을 안 읽은 죄다, 이랬는데요. ㅋㅋㅋㅋ

청아 2021-12-15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56페이지까진데 제가 다 속상하네요 폴스타프님 대신 한잔 해야겠습니다ㅋㅋㅋㅋ😆

Falstaff 2021-12-15 19:19   좋아요 2 | URL
에효, 제가 벌써 마셨습니다요. 딸꾹!
퇴근이 다섯 시라서리, 동태탕 2인분 포장해 가서 벌써 한 병 꿀꺽, 해잡솼답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마음이 느므 고맙습니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