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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 자기치유와 자기돌봄을 위한 자기관계 심리학
문요한 지음 / 해냄 / 2022년 6월
평점 :
자기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해법은 자기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삶의 동반자로서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돌봄'이다. 우리는 흔히 돌봄을 나약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마치 아이들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평생 동안 돌봄을 필요로 한다. 고통은 삶의 일부이며, 우리는 취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신체적 돌봄과 함께 정서적 돌봄도 필요하다. 나아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가도록 관계를 돌보는 것도 필요하고, 활력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영혼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돌봄은 전인적이고 총체적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돌봄이란 한마디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9
당신은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자존감도 높아지고 성격도 좋아지고 친구도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자기 부족함 때문에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자아상 때문에 자기 부족함에 집착하는 것이다. 내면화된 못마땅한 시선'을 거두어내지 않는 한 내적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자신을 끝없이 몰아붙인 결과가 자신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뜨렸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삽질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이 질문을 맞닥뜨릴 것이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이러한 고질적인 자기비난의 습성을 약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진실뿐이다. 자기비난은 문제나 결점을 실제보다 확대 시키고, 미래로 확장 시키고, 문제를 존재와 일치 시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자기비난이 들리면 우리는 무엇보다 진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말 그런가?'를 물어야 한다. '내가 정말 실패자인가?''정말 해도 안 되는 것인가?''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는가?''나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가?'라고 말이다,
자신에 대한 느낌과 생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은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리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제 이 질문을 당신에게 드리고자 한다.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이 질문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57
게다가 실제 부모들이 자기 고통과 불행을 자녀들 탓으로 돌린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너 대문에 내가 못살겠다''넌 왜 사람을 힘들게 하니!''넌 매사 거짓말이야''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도대체 넌 누구 닮아서 그 모양이야' 하는 말들은 고스란히 아이의 마음속으로 내면화 된다. 이는 신경학적 손상을 초래한다. 각성조절, 감정조절, 충동조절의 창이 협소해질 뿐더러, 면역력, 수명, 인지기능 전반을 떨어뜨린다. 특히 자율신경계의 조절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가장 원시적인 자기보호시스템인 '부동화'를 자꾸 초래하게 된다. 작은 위협만 가해져도 얼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패턴은 고정화되어 이후 비슷한 자극에도 쉽게 얼어붙어 버리게 된다. 74
원초적 수치심, 신경증적 죄책감, 근본적 무력감은 아동기에 부정적 경험을 겪은 사람들의 핵심 감정이 된다. 일반적인 감정은 어떤 자극과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 비해 핵심 감정은 자극과 상황에 상관없이 마음의 바탕을 이룬다. 핵심 감정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올라온다.
그러므로 이들은 핵심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나는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모든 게 나 때문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어떤 경우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술이나 게임 같은 중독으로 빠져들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역으로 타인을 깍아 내리고 자기가 우월하다는 나르시시즘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79
많은 경우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타인으로부터 학인 받으려는 인정 강박을 지니게 된다. 이를 위해서 '나는 ~해야 한다''혹은 '나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높은 기준과 지나친 당위를 만들어 낸다. 당위란' 당연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일수록 당위적 사고가 많다. 즉,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거나 도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이는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향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강한 사람, 똑똑한 사람, 사랑 받는 사람,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 독립적인 사람 등 자기 실재 보다 과장된 이상적인 자아상을 좇는다. 이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래야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80
내적 안전기지가 형성되지 않은 채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마음이 허하고 자꾸 흔들린다. 밖으로도 안으로도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애착 손상이다 고통 속에 혼자 방치되었거나,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돌봄을 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때 이르게 누군가를 돌봐야 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그 공허감 때문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거나 다른 사람을 잘 챙기거나 많은 성취를 이루려고 애를 쓴다. 133
그러나 의지력 훈련에 있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의지력을 길러내는 정말 중요한 기회이다 의지력 훈련이란 계획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이를 알아차리고 다시 행동으로 돌아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즉 꾸준히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재시도 능력'을 높이는 것에 목표를 둔다. 187
그것이 꼭 칼로 자해하는 것과 같은 노골적인 자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은밀한 자해를 동반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움직이다 잔 부상을 입고, 이를 거칠게 닦고, 안 좋은 자세로 계속 생활하고, 아무 음식이나 먹고,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잠을 안 자려고 애를 쓰고, 아파도 병원을 안 가는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이루어 진다.
이들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생활에 질서가 없고 삶을 가구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한 자신의 안 좋은 생활 습관 때문에 또다시 비난을 하게 되지만 사실은 자기 비난에 걸맞은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왜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갈까? 정말 그렇게 비난할 만큼 잘못이었을까?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정말 친절이나 위로를 받을 만한 자격도 없어서 일까?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처음부터 '나쁜 사람' 혹은 '잘못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기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존재여서가 아니라 자기를 잘못된 존재로 느끼게 된 잘못된 경험 때문이다. 220
아픔은 보편적인 1차적 고통을 말한다면 괴로움은 주관적인 2차적 고통을 말한다. 1차적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거나 비난에 휩싸일수록 2차적 고통은 커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친절을 통해 1차적 고통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2차적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자기 친절은 힘들었던 수많은 날들을 견뎌온 나에게, 그리고 앞으로도 힘든 삶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응원이자 예의이다. 자기 친절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고통에 힘들어하는 자기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그 결과일 뿐이다. 이렇게 자기 친절의 마음이 조금씩 스며들면 '내면의 관찰자'와 함께 '내면의 벗'으로 자리 잡는다.227
이는 모든 변화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뉴욕주립대학교와 피츠버그대학교의 중독 연구자들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절주를 하지 못하고 과음을 했을 때 어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관찰했다. 알다시피 술을 많이 마신 사람들은 그다음 날 두통, 구역질, 피로감 등으로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이들의 불행은 숙취로 끝나지 않았다. 전날 많은 술을 마신 것 때문에 자책하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일수록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저녁에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일이 벌어졌다. 죄책감이 더 많은 음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236
다시 말해 즐거움은 도파민만 분비되는 것이라면, 기쁨은 도파민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함께 분비되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순수한 쾌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쾌감과 쾌감이 섞여 있거나 혹은 불쾌감을 거치고 난 뒤의 쾌감을 말하는 것이다. 단, 그 불쾌감이란 억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겪는 불쾌감을 말한다. 272
중독은 기쁨이 결핍되고 즐거움이 과잉된 상태를 말한다. 그렇기에 중독의 회복은 쉽지 않다. 중독의 회복은 단지 중독의 대상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쁨의 회로를 복원 시켜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자기 돌봄은 이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기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균형을 맞추는 기술이 바로 자기돌봄이다. 274
이 행복감을 느끼려면 '자기 밑천'을 잘 이해해야 한다. 자기의 강점과 욕구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할 때 기쁨을 느끼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자기를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배움을 통해 그 밑천을 가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밑천을 갈고 닦는 것이 일이 될 수도 있고 여가 활동이 될 수도 있다. 277
'괜찮아'라는 위로에서 시작된 자기돌봄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라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다름 사람과 경쟁하거나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다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삶이다. 아프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활기 있는 삶을 사는 것이며,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늘리는 것에 있다. 마음을 배터리라고 비유 한다면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활기를 느끼고 배터리의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답은 도전이다. 이 도전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우리를 강하게 하는 좋은 스트레스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나쁜 스트레스와 좋은 스트레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삶의 활력은 늘 스트레스를 필요로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잘 분비되어야 우리는 삶의 활력과 적정 각성 상태를 인지할 수 있다. 아드레날린이 담당할 수 없을 만큼 분비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분비되지 않는 것 또한 문제이다. 그것이 바로 '권태'라는 감정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권태는 우리가 쉽게 간과하지만 맹독성의 감정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삶이란 긴장만 하는 삶도 아니고 이완만 하는 삶도 아니다. 긴장과 이완이 잘 순환될 때 삶의 활력은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인간은 아무런 노력이나 어려움 없이 쉽게 얻는 쾌락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위해 스트레스와 노력을 통해 얻어내는 기쁨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다. 282
아동기의 과도한 스트레스는 신경학적 손상을 초래하고 자기조절 기능을 크게 저해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소한 자극에도 강렬한 스트레스 반응이 유발된다. 이는 쉽게 극복 되지 않는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다그칠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기르듯 수많은 기다림과 이해심 그리고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지만 분명 아이는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간다. - P31
그 대표적인 자기반성의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과 후회, 자책감이다. 자책감이나 부끄러움은 수치심과 다르다. 자책감과 부끄러움은 자기가 한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자기 ‘존재‘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그렇기에 자책감과 부끄러움을 통해 우리는 자기 행위를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수치심은 자기반성 시스템을 작동 시키는 것이 나라 자기비난 시스템을 작동 시킨다. 개선으로 이어지는 반성이 아니라 문제를 심화시키는 비난으로 치닫는다. 이는 수치심이 맹독성의 감정인 이유다. 수치심은 자기돌봄과 자기친절의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다. 자기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자신을 돌볼 수 있겠는가? - P63
그러나 아이는 이러한 감정을 양육자에게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발달상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도 부족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사랑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상대를 증오하면서 의지할 수 있겠는가! 상대가 밉고 분하고 슬프지만 그 파괴적인 마음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아이는 자신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를 거부한 것은 자기 때문이고, 심지어 부모가 싸우는 것 역시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P72
중요한 것은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다시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치도 분열도 아니다. 통합일 뿐이다. 자기돌봄이란 바로 자기의 모든 부분과 관계를 맺고 연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 P86
진정한 지기친절은 그때 나타난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을 때, 갑작스럽게 몸이 아플 때, 예기치 않는 불행이 자기를 덮칠 때 우리는 자기와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 P142
누구나 뜻대로 되지 않는 삶과 함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을 느끼면 연결감이 끊어지고 보편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원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 혼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 혼자뿐이라는 느낌‘을 가장 큰 고통으로 느낄 만큼 뼛속 깊이 사회적인 존재이다. - P148
치유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기 보다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자기 생각이나 관점에 사로잡혀 상황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이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재구성 혹은 재평가라고 한다 이는 부작용 없는 안정제와 같다. - P154
이렇게 관찰의 힘이 커지면 일상에서 나를 관찰할 수 있다, 자기 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틀로 바라보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찰의 힘이 길러지면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가까워진다, 덜 흔들리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관찰하는 마음이 길러지면 우리는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 할 수 있다. - P205
물론 이렇게 반성한다고 해서 바로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오래된 문제일수록 바로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개선에 대한 관대함이다. 자기에게 불친절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큰 결심을 통해 한꺼번에 바뀌어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포기하지 않고, 조바심을 내지 않고,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다. 자기관찰자가 되어 삶을 돌아보고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 이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어른들의 존재 방식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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