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역사 속 위인들의 전기를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롤모델이 생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이 자수성가한 인물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때 유행했던 말 중에 하나가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있었죠? 지금도 보면 많은 청소년들이 닮고 싶어하는 유명한 인물들이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만큼 많은 노력을 통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었겠죠? 그냥 단순히 허황된 꿈만 가지고 있다거나 요행을 바라고만 있으면 안 되겠죠? 때로는 부단히 노력하고 자신만을 꿈을 위해서 도전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성공으로 가는 길을 잘 못 선택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룬다거나 성공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더 위대해보이고 존경스러워보이는 것 아닐까요? 아마도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나 비법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성공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 성공으로 이르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아 그 길을 따라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에서는 국내 굴지의 기업인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의 일대기가 실려있어 꿈을 이루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아요. 특히나 많은 시련과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용기를, 도전정신을 일깨울 수 있을까요? 요즘 서점에 가면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나와있고 꿈을 가져라, 꿈을 향해 도전을 하라는 조언들이 수없이 많지만 실상 책으로만 너무나 좋은 글귀로만, 생각으로만 나열되어 있다면 마음에 와 닿는 감동이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누군가가 살아온 인생을 통해서 체득한 귀중한 지혜가 녹아들어 있는 소중한 조언이라면 마음 속에 감동이 느껴질 것 같아요.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를 원하는데 제목에서 보면 이름보다는 꿈을 남겨라고 이야기하고 있네요. 아마도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 꿈을 향해서 도전하다보면 자연히 이름이 남지 않을까 싶네요. 한 시대를 살면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고 시대를 변화시켜 나간 그의 꿈이 너무나 멋져보이는 것 같아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수많은 장애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용기와 도전정신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꿈도 남지 않을까요?
책벌레라는 있었지만 도서관 벌레는 글쎄요? 아무튼 도서관 벌레인 두 아이의 이야기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요즘 부모님들의 관심은 온통 자녀의 교육이야기 뿐이죠? 실제로 가계지출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교육비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그만큼 부모님들의 열정이 있기에 요즘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똑똑한 것 같더라구요. 그러니 그런 아이들이 서로 경쟁을 하려고 하니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아이들이 위인전이나 명작이야기를 읽어야 할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 산수 문제 하나 풀기 위해서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씨름을 하다보면 정말이지 놀고 싶고 책이라면 아마 넌저리가 나지 않을까도 싶어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게 바로 이 책 도서관 벌레와 도서관 벌레가 아닐까요? 예전에는 도서관이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의 놀이에 더 정신이 없었을 텐데 요즘에는 집 근처에 도서관도 많고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도서관들도 많이 생겼더라구요. 그래서 정말이지 마음만 먹으면 아이들이 언제든지 찾아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런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는 것을 알 수 있더라구요. 사실 학교를 마치면 학원으로 전전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도 없을뿐만 아니라 책이 꼭 공부를 위한 도구로만 전락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책이라는 것이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되는데 마치 편식하는 아이들처럼 몸에 좋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동수의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1등이 되기위해서 문제집만 보는... 오로지 정답을 맞추기 위한 책 읽기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비단 아이들만은 잘못은 아닌 것 같아요. 경쟁을 부추기는 부모님과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책을 싫어하는 동수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도서관 벌레를 보면서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고 책이 주는 진정한 가치를 알아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식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 나가는 지혜를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요.
몽해항로? 꿈 속의 바다를 여행하는 길이라는 뜻인가? 몽해란 흑해를 말한다고 하네요. 왠지 푸른 바다와는 상반되는 우울하고 슬픈 죽음의 바다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어쩌면 우리의 인생 또한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시 뿐만 아니라 소설, 방송 진행 등 다방면에 걸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장석주 시인의 열 네번째 시집이라고 하네요. 몽해라고 하는 흑해가 아마 우리들의 삶의 종착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꿈 속이야말로 우리들의 생각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꿈은 언젠가는 깨어나게 되겠죠. 그러면 아무리 멋진 꿈이라고 해도,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꿈이라도 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이렇게 아웅다웅 살고 있지만 결국은 죽음이라는 숙명을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죽음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마치 한 낮의 꿈 같다는 생각 말이죠. 때로는 죽음을 통해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깨달게 되는 것처럼 아이러니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일면 평범해 보이는 일상들을 담고 있는 시 같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삶이 가지는 유한성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결코 죽음이 가지고 있는 검고 어두운 분위기의 시가 아니라 어둠을 통해서만이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죽음을 통해서 삶을 더 밝게 부각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죽음 또한 거부하고 피할 수 없은 것이기에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가 가지고 있는 함축성을 생각해볼 때 누군가에게는 시를 통해서 삶의 어두운 면이 부각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밝은 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것은 시를 읽고 있는 독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겠죠. 무한하지 않고 유한한 것이기에 더욱 더 소중하고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요? 우리들의 인생은 과연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한 척의 배일까요? 아니면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배일까요? 인생에 있어 저마다의 항로가 있겠지만 누구나 만나게 되는 거친 풍랑을 지혜롭게 헤쳐나갔으면 해요.
아마 수많은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보는 책이 성경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그 방대한 분량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유들로 인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매년 새해가 되면 성경 완독을 계획하지만 어느새 흐지부지 되어버리더라구요. 아마도 매일 매일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은데 성경도 읽으면서도 동시에 영어공부도 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문득 들게 되네요. 사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그리 쉬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한글로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무슨 영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했지만, 저자가 꽤 유명한 영어강사인 문단열 선생님이더라구요. EBS에서 방송할 때 자주 본 강의도 있고 해서 아마도 쉽게 풀어서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번에 본 책은 신약편이네요. 아무래도 구약보다는 신약이 좀 더 현대에 가깝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영어성경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한 것은 아니고 핵심구절을 뽑아서 한글과 영어를 동시에 볼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더라구요. 특히 영어 성경 구절에 대해서는 문법도 같이 있어 영어 공부도 할 수 있고 말이죠. 아무래도 공부라는게 언제 어디서든 시간이 남을 때 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성경의 분량에 비해서는 어떻게 보면 초라해보일 수도 있지만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와 부피가 마음에 들어요. 다르게 생각한다면 정말 한 자, 한 자 전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아마도 그렇다면 책을 읽는게 아니라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려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작은 에세이처럼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그 문장을 영어로 다시 한 번 보면서 공부가 아닌 재미있는 놀이 또는 좋은 책 한 권 읽는 기분으로 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디서든지 휴대하고 다니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볼 수 있다는 게 작은 책만의 장점이 아닐까 싶네요. 성경을 통해서 마음의 양식과 영혼의 위안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영어를 통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노력이 없이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죠.
유토피아라고 하면 토머스 모어의 공상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잖아요. 작가의 의도는 당시 유럽에서도 특히 영국의 사회현상을 비판한 것이지만 이상한 나라 유토피아 즉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말은 '아무데도 없는 나라'이지만 휴머니즘 정신을 반영하고 여러가지 사회제도나 풍속 등으로 누구나 꿈꾸고 살고 싶은 나라가 된 것 같아요. 비단 이런 서양의 유토피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홍길동전의 율도국이라든지 안평대군이 꿈 꾼 몽유도원도 등 말이죠. 하지만 제목이 조선인의 유토피아라는 건 왠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토피아면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서양인의 세계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조선인의 이상향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나름의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살아가지만 조선시대에는 어떤 이상향을 꿈꾸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무릉도원.. 아마도 조선시대에는 신분의 차이가 있고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억압이 없고 땀 흘려 열심히 일한만큼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꿈꾸던 세상이 아닐까요? 정말 유토피아는 꿈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정말 아무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존재한다면 그건 유토피아가 아닌 것 같은 아이러니함은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굳이 있지도 않는 유토피아를 찾으려고 하지말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우공이산이라고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하나씩 모여서 결국은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