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부터 1870년 사이에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대륙으로 매우 성공적으로 확산되었다. 서유럽 국가들은 선도국을 따라잡았을 뿐 아니라 이후로는 세계의 첨단기술을 진보시키는 혁신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북아메리카도 19세기에 산업화되었고, 곧 이 혁신 클럽에 가입했다. - P66

서구 선진국들은 더 높은 임금이 노동절약적인 기술의 개발로 이어지고 이 기술을 사용하면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상승하는 발전의 궤적을경험해왔다.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된다. 오늘날 가난한 국가들은 엘리베이터를 놓쳐버렸다. 이들 국가에서는 임금이 낮고 자본비용이 높아서, 낡은 기술로 생산을 해야 하고, 따라서 소득이 낮다. - P82

그리고 석탄과 상업 때문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는 캘리포니아 학파의 주장은 올바른 것이다. 아시아의 역사에서 주목할 점은 그러한 촉발 요인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 P88

지금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농업의 고용이 압도적이고 이는 다른 가난한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곧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19세기에 가난했던 몇몇 국가들은 표준전략을 따르고 또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을 통해 빅푸시를 실현하여, 20세기에는 훨씬 더 잘살게 되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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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역사인가 - 린 헌트, 역사 읽기의 기술
린 헌트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국내판 제목을 보면 한 눈에 E. H. 카의 저작,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제는 "History: Why It Matters"이다. 대충 "역사: 왜 중요한가" 정도?


먼저 책의 저자부터 소개해보자. 저자 린 헌트는 다양한 저작을 쓴 역사가이며 책 앞날개가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문화사, 젠더사, 역사 기록학에 정통한 역사학자이다.. 국내에 소개된 린 헌트의 저작으로는 『인권의 발명』, 『역사가 사라져 갈 때』와 같은 저작들이 있다. 특히 『인권의 발명』은 최근에 교유서가에서 재출간되었다. 그외에도 저작은 많으나 대개 품절이나 절판이다. 도서관의 힘을 빌려야 할 듯 하다.


이 책에서는 여러 질문거리를 던지고 그 질문에 답변할 방법을 살펴볼 것이다. 역사란 정의상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지 확립된 도그마가 아니기에 이 책이 모든 골칫거리를 말끔히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역사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를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 P10

 

이 책은 현재 (미국) 역사학계의 현 실태와 주요 이슈들을 짚어내는 책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1장 역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이유', '2장 역사적 진실을 찾아서', '3장 역사의 정치', '4장 역사의 미래'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지금 시대가 거짓말이 쉽게 신빙성을 얻는 시대라 언급한다. 역사적 논란의 대상 중에는 대개 기념물이 있다.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역사 교과서를 놓고서도 어느 지점을 수록하고 강조할지를 두고 전쟁이 벌어진다.


2장 역사적 진실을 찾아서에서는 역사적 진실이 사실과 해석의 맞물려 이루어지는데, 이 두 축이 항상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은 잠정적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저자는 역사를 '진실한 이야기'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문학예술로 본다. '이야기'에는 사실에 관련된 일련의 해석에 의지하는 문학적 재구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차가 있다면, 과거의 진실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해석의 변동성은 역사적 진실에 의구심을 초래한다.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하므로 객관적 서술은 불가능하다. 일관성있는 서술을 통해 논리적이며 밀접한 관련 증거를 인용하고, 증거에서 비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서양의 근대 역사학은 민족주의, 유럽우월주의에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유럽중심주의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정신은 유럽만의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중국과 아랍의 역사 서술 전통에서도 확인되는 점이다.


3장 역사의 정치에서는 역사학이 엘리트의 역사학에서 점차 변화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1870년대 역사는 정치사 위주에 과거 엘리트의 역사 였으나 여성, 소수인종, 원주민, 서민 계층 백인이 역사학계에 진출하게 됨에 따라 역사 과목의 민주화가 일어나고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져 정치사 위주에서 사회사, 경제사, 1980-90년대에는 문화사, 2000년대에는 다양한 접근법이 모색되게 되었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학계는  라틴아메리카, 아시아계 인구가 급증한 덕분에 세계사와 국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다만 국사의 대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역사는 여전히 국민 단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역사는 독재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고 기억을 통제하려 할 때 역사학 교육을 받은 학자들이 돌파구를 마련해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4장 역사의 미래에서 저자는 역사의 역할이 변화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와 관련해 정체성을 지니며, 동시에 세계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에는 미래를 향한 의제가 있고, 오늘날의 문제를 바라볼 관점을 제공한다. 그 점에서 저자는 역사에 자체적으로 윤리가 있다고 본다. 이어서 저자는 세계사의 시간에 접근하는 관점을 두고 앞선 전형의 사례를 찾는 접근 방식, 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진보를 투영하는 방식, 지구의 역사를 모든 차원에서 살피는 전지구적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마지막은 저자가 창안한 용어이다) 저자는 지구의 역사에 관심을 두면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서사에서 배제된 집단에 관심을 기울이면 익숙한 이야기가 해체되고 새로운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저자는 최근 역사학계의 세태에 관해 경고하는 점이 있다. 이처럼 넓은 시간을 바라보아야 함에도, 많은 역사학도들이 현재와 가까운 비교적 짧은 시간만에 관심을 기울이는 "현재주의"가 득세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주의는 필요하긴 하나, 과거를 현재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는 우리 기준을 과거에 적용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새로운 전망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역사학자들의 관심도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각과 디지털 역사 등 새로운 분야가 출현하면서 역사는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고 그 미래가 불러일으키는 변화의 혜택을 입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며, 미래가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어떤 예측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반면 과거는 불완전하게라도 파악할 수 있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호기심과 앞서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배우려는 의지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2,000년 전 활동한 로마의 정치인 키케로Cicero는 이렇게 설명했다.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무지하다면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의 삶이 역사의 기록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엮이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 P166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추구하는 바는 명백하다. 현재 역사학계는 갈등과 논란 속에 갇혀있고 저자는 이 점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역사를 두고 전쟁에 가까운 진영간의 갈등이 벌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 그 자체의 특성, 역사적 진실은 정해진 도그마가 아니라 늘 잠정적이며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미국의) 역사학계에서 일어난 변화가 가져온 접근 방식과 기존 역사 서사의 해체, 그리고 앞으로 역사가 나아갈 미래를 그려낸다. 이 책은 2010년대 후반 역사학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는지, 201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주는 '역사학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저자인 린 헌트가 미국의 역사가인 만큼 미국 역사학이라 지칭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상당히 어려운 주제를 다룸에도 간략히 설명하는 점에서 대가로서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점도 있다.


지금 시대를 보고 있으면 저자의 말대로 역사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임을 알 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런 역사학의 최전선에 서야할 전문 역사학계는 미국에서 조차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한국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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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는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경제사의 주제는 애덤 스미스의 위대한 저작의 제목인 ‘국부의 본질과 요인(국부론)‘이다. 국부의 요인을 경제학자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경제 발전 이론들에서 찾지만, 경제사가들은 역사적 변화의 동적인 과정에서 찾는다. 경제사가 던지는 근본적 질문—왜 어떤 나라는 부자이고 다른 나라는 가난한가?—이 다루는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된 이래 경제사는 특히 흥미로워졌다. 50년 전 그 질문은 ‘산업혁명은 왜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는가?‘였다. 그러나 중국, 인도, 중동에 관한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 문명들의 내재적인 동학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경제 성장이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왜 유럽에서 (p. 9) 시작되었는지 물어보아야만 한다. - P8

오랜 과거의 소득에 관한 데이터는 정확하지 않지만, 1500년경까지 국가 간 번영의 차이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차이는 주로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항해하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래 나타났다. - P9

높은 임금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교육을 확대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역설적으로, 최저생계 수준은 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경제적 동기를 제거한다. 하루의 노동으로부터 더 많은 산출을 얻어내야 하겠지만, 이 경우 노동이 너무 값싸서 기업들이 굳이 생산성을 높일 기계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최저생계 수준은 빈곤의 덫이다. 산업혁명은 바로 높은 임금의 결과였다. 산업혁명은 높은 임금의 원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 P24

세계는 왜 점점 더 불평등하게 되었을까? 지리, 제도, 문화 같은 ‘근본적 요인‘과 ‘역사의 우연‘ 모두가 역할을 했다. - P26

제도, 문화, 지리는 언제나 경제성장의 배경에 숨은 요인이었던 반면, 기술 변화, 세계화, 경제정책은 불균등 발전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 P29

산업혁명(대략 1760년부터 1850년까지)은 세계사의 전환점이었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급격한 단절이 아니라 앞장에서 논의한 초기 근대 경제의 전환의 결과였다. - P44

기술 변화가 산업혁명의 동력이었다. 증기기관, 면방적기와 면방직기 그리고 나무 연료 대신 석탄을 사용하여 철강을 제련하는 새로운 과정 같은 유명한 발명들이 나타났다. 또 모자, 핀, 못 등 그다지 첨단은 아닌 산업에서도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킨 갖가지 단순한 기계가 등장했다. - P45

제국주의는 고임금 경제의 기초였고, 고임금은 다시 노동을 절약하는기술 변화를 촉진하여 경제 성장을 가져왔기 때문에 노동자들도 제국주의로부터 이득을 얻었다. - P47

가장 강력한 변화는 도시화와 상업의 발전이었다. 이로써 읽고 쓰는 능력과 계산력이 더욱 중요해져 대중의 지식이 발전했다. 18세기에는 장인, 기능공, 상점주인, 농부의 아들 대부분과 노동자의 아들 일부가 몇 년 동안의 기초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전례가 없을 만큼 대중들이 신문을 읽고 정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P49

결국 노동이 비싸고 자본이 싼 곳에서 기계를 사용하면 이익이었는데, 영국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기계가 이익이 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이다. - P54

산업혁명의 최대 업적은 18세기의 발명들이 이전 세기의 발명들처럼 일시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18세기의 발명들은 계속되는 혁신의 물결을 촉발했다. - P59

증기력은 다양한 용도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일컫는 범용 기술의 사례였다. 다른 범용 기술은 전기와 컴퓨터 등이다. 범용 기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 기술은 발명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야 경제 성장에 기여를 할 수 있다. 증기력도 마찬가지였다. 뉴커먼의 발명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난 1800년이 되어서야 증기력은 영국 경제에 아주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교통과 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결국 그 잠재력이 실현되었다.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생산성 상승의 절반은 증기기관 덕이었다. 이러한 장기적인 이득이 경제 성장이 100년동안 지속된 중요한 원인이었다. 또다른 원인은 여러 산업 분야에 과학이 더 많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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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끝과 시작 -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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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본서는 크게 4부로 구성된다. "1부 책을 어떻게 읽을까"는 '책에 접근하는 방식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2부 어떻게 쓸까"는 '서평의 여러 형식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3부 시대를 읽는 주제 서평들"은 '근대와 정치, 그리고 인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아주 긴 서평_ 《장미의 이름》읽기로 이루어진다.


각 장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1부에서 저자는 어떻게 책을 효과적으로 읽고 이해할 것인가, 그 방법들을 몇 가지 설명하고 그에 중점을 맞춘 서평을 제시한다. 2부에서는 서평의 종류, 형식, 책 한 권에서 특정 내용만 뽑아 쓰는 '주제 서평', 여러 권의 책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 일차 문헌에 대한 해제로서 '역자 후기', 테제가 있는 '논고'에 관해 설명하고 1부처럼 각 하부 주제에 알맞은 예시로서 저자가 쓴 서평이 제시된다. 3부에서는 동양, 서양을 아우르면서 근대와 정치,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에 맞춰 저자가 쓴 서평들이 전개된다. 3부에 수록된 서평들은 근대에서 시작해 정치에 이르고 이어서 인간에 이르는 구성을 보인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서평의 의미를 간단히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책 읽기의 목적은 지식 획득이다. 지식 얻기는 단순한 지식 획득이 아니라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논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즉 자기화를 의미한다. 자기화를 할 수 있도록 책을 잘 읽으려면 책을 읽을 때 남에게 설명할 것을 전제로 하고 책을 읽어야 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자연히 서평쓰기로 이어지며, 서평을 쓴 책에 한해서는 자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서평을 읽고 그 책을 이해하거나 읽는 계기가 된다면 책읽기가 자기화를 넘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읽기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책읽기, 서평쓰기, 서평읽기는 하나로 묶이는 행위이다. 저자는 이같은 책읽기-서평쓰기-서평읽기가 반복되면서 책읽기를 통한 지식 탐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파한다.(pp. 9-10.) 


이 책을 두고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메타 서평집'이라 자평한다.

그간 나는 몇몇 매체들에 서평을 기고하기도 하였으며, 책 읽는 방법과 책을 소개하기 위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책에 실린 서평들은 이런 과정에서 사용하거나 강의를 하기 위해, 읽은 책들을 되새기려고 작성한 서평들이다. 그런데 이 서평들을 늘어놓고 나니 나의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하기에는 서평들 각각의 글을 어떤 목적에서 썼는지, 왜 그렇게 썼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조금은 무미건조해 보였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는 방법이나 서평 쓰는 방법을 간략하게 알려 주면서 그 방법을 실행할 예시로서 내가 쓴 서평들을 읽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하였다. 서평 읽기를 통해 책읽기와 서평 쓰기 방법을 익히는, 일종의메타 서평집인 셈이다. - P11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책읽기의 방식이나 서평쓰기의 방식은 여타 실용적인 서평 지침서들에 비해 내용이 간결하고 압축적이다. 바꿔 말해, 저자가 생각하기에 책 읽기와 서평쓰기의 핵심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으며, 저자 본인의 서평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책 읽기, 서평쓰기의 방식의 실제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타 서평 지침서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책이다. 이 점에서 저자의 표현을 빌려 '메타 서평집'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저자가 이 책에 수록한 서평들은 마지막 부록으로 수록된 《장미의 이름》 읽기를 제외하면 모두 비문학 서적들이다. 《장미의 이름》 읽기 역시 읽다보면 문학 서평이 아닌 비문학서평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편, 본서에 수록된 서평은 적어도 이 글을 쓰는 필자 입장에서는 이 책에 수록된 서평만을 통해 책을 접한 만큼, 수준이 높다고 느껴진 지점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 특히 《장미의 이름》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이 책의 부록으로 수록된 아주 긴 서평_《장미의 이름》 읽기를 읽으면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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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의 역사 - 각주는 어떻게 역사의 증인이 되었는가
앤서니 그래프턴 지음, 김지혜 옮김 / 테오리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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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각주의 역사』(Les Origines Tragiques de L'érudition)는 미국의 역사가 앤서니 그래프턴의 저작으로, 전문서적을 읽다보면 본문 아래 깨알같이 놓인(어떤 때는 본문 절반 가까이 잡아먹기도 하는) 각주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저자인 앤서니 그래프턴에 관해 간략히 알아보자. 역자 후기에 따르면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프린스턴 대학 역사학과에 현재까지도 재직중이다. 프린스턴 역사학과는 "신문화사"를 주도한 주역들, 로렌스 스톤, 내털리 데이비스, 로버트 단턴이 머물던 곳이었다. 역자에 따르면 이 같은 신문화사의 주된 흐름이 '아래로부터의 역사'라고 간략히 소개한다. 앤서니 그래프턴은 이런 흐름에서 다소간 거리가 있었으나, 역사서를 밑에서 받쳐주는 각주의 역사를 다루면서 '밑'을 포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문을 설명하기에 앞서 본서의 독특한 이력을 잠깐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은 원래 "독일 각주의 비극적 기원"으로 독일에서 먼저 출간된 후 영어판, 프랑스어판으로 번역되었다. 


이제 이 책의 본문을 살펴보자면, 크게 7장의 본문과 1장의 에필로그로 이루어진다. 1장에서는 역사학자가 과학자만큼 연구를 충분히 했다는 근거로서의 각주에 관해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어지며 저자는 각주를 기점으로 고대/근대의 역사가 구분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고대의 산문은 기억에 의거해 자료를 언급하지 않은 반면 근대 역사학에서 각주는 권위와 진실성을 주장하는 수단이다. 2장부터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서 랑케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랑케는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고 새로운 연구 관행을 창조하며 1차 사료의 수색과 이용을 연구지침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 랑케가 근대 역사학의 기초라고 할 각주에 관해서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저자는 거꾸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랑케 이전에 각주를 활용한 지적 시조들을 하나하나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랑케의 지적 시조라 할만한 이들은 적지 않다. 여기에는 계몽사상가, 교회사가, 호고가가 있으며, 특히 17세기에는 역사학과 인문학을 폄하한 데카르트에 맞선 피에르 벨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 같이 거꾸로 거슬러가는 역사적 여정 속에서 저자는 랑케 이전 기나긴 근대적인 비판적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과정에서 랑케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신화가 벗겨지고 각주와 비판적 부록을 도입한 인물로 새롭게 재조명된다.


이 책은 말하자면 '역사학'에서 각주의 역할과 의미를 추적하여, 랑케가 근대 역사학의 효시라는 신화를 깨뜨리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아포리즘을 하나 빌려오자면 할아버지(랑케 이전 각주를 다양하게 활용한 역사가들)에 기대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랑케)를 살해하는 아들(앤서니 그래프턴)이라는 구도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랑케를 폄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랑케에게서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신화를 벗겨내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목이 혼동을 줄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각주의 역사』라는 제목은 첫눈에 보기에 마치 이 책이 모든 분과학문에서 사용되는 각주를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책의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으며, 책을 펼쳐 목차를 살펴보면 랑케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가는 '역사학'에서의 각주만을 다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좋은 제목을 고민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지점이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된, "독일 각주의 비극적 기원"은 오해를 피하기에는 좋겠지만, 이 책을 집어들게 할 만큼 매력적인 제목처럼은 느껴지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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