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나는 몇몇 매체들에 서평을 기고하기도 하였으며, 책 읽는 방법과 책을 소개하기 위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책에 실린 서평들은 이런 과정에서 사용하거나 강의를 하기 위해, 읽은 책들을 되새기려고 작성한 서평들이다. 그런데 이 서평들을 늘어놓고 나니 나의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하기에는 서평들 각각의 글을 어떤 목적에서 썼는지, 왜 그렇게 썼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조금은 무미건조해 보였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는 방법이나 서평 쓰는 방법을 간략하게 알려 주면서 그 방법을 실행할 예시로서 내가 쓴 서평들을 읽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하였다. 서평 읽기를 통해 책읽기와 서평 쓰기 방법을 익히는, 일종의 ‘메타 서평집‘인 셈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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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란 기본적으로 "책을 읽은 사람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책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함께 주관적 평가를 제공하는 글이다. 만일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서평을 대하는 경우에는 전문가의 또 다른 견해를 통해 그 책에 대한 이해(理解)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좋은 서평은 어떤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그 책에 대한 배경 지식을 제공해 줌으로써 편안한 독서로 안내한다. 나아가 해당 책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독자로 하여금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게 한다. - P113

서평은 대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책을 소개하는 부분과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책을 평가하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먼저 책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주로 저자를 비롯하여 줄거리, 글의 구성 방식, 표지와 삽화 및 사진을 포함한 편집 디자인의 특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는 책 내용이 다루는 주제가 무엇이며 어떤 점이 매력적이거나 문제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타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서평을 쓰는 사람에 따라 책에 대한 평가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 P114

이상과 같이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서평이란 특정 도서에 대한 주관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평가와 의견 개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과 독자들의 선입견을 자극하거나 독서에 간섭할 정도로 깊이 있는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맞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평은 기본적으로 "비평인 동시에 책에 대한 소개"라는 하나의 길로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평으로만 일관하거나 줄거리 등 책에 대한 소개로만 이루어진 것은 진정한 의미의 서평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곧 비평과 소개가 적절히 어우러진 글쓰기야말로 서평의 경지에 한 걸음 다가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잘 쓴 서평은 결코 ‘개인의 소감‘으로 끝나지 않고 서평자가 경험한 책 읽기의 진수를 통해 독자들을 독서의 세계로 안내하는 나침반이 되곤 한다. - P116

"서평이란 서평자의 전문지식 및 학문 수준과 경향을 바탕으로 특정 도서에 대한 가치 평가와 비평을 도모할 목적으로 서술, 비판, 해설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독서 욕구를 자극하는 한편, 바람직한 독서환경 조성에 기여하고 문화성과 공공성을 실현하는 글쓰기로서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 P117

서평은 보통 서술적(敍述的) 서평, 비판적(批判的) 서평, 해설적(解說的) 서평으로 나눌 수 있다. 서술적 서평은 책의 내용과 구성 등에 대해 비평 없이 저자의 주장을 사실 그대로 서술하는 서평이다. 비판적 서평은 서평자가 자신의 학문적 판단이나 경향, 전문지식에 근거하여 책의 내용과 구성에 나타나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주저 없이 비판하는 서평이다. 해설적 서평은 책에 대해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정확한 의미 파악을 전제로 어려운 내용이나 용어를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어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理解)를 돕는 서평을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구분이 서평마다 명확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이러한 세 가지 성격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다만 어느 하나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것을 중심으로 나눈 분류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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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사회는 죽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미국이 유럽을 대신해서 서민들이 동경할 만한 귀족 사회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공황 때문에 이제는 그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가엾은 내 조국은 손도 못 쓰고 중산층 사회로 전락하고 있지요. 글쎄 지난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택시 기사가 나한테 형제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걸더군요. 믿어지십니까?" - P335

나는 더 이상 엘리엇을 비웃을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도 가엾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류사회는 그의 인생의 전부였고, 그런 의미에서 파티는 숨구멍과도 같은 것이었다. 파티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은 모욕이요,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치욕으로 여기던 그가 나이를 먹으면서 필사적으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P336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 교활한 마귀는 또 한 번 예수에게 가서 이렇게 말한 거야. ‘만일 네가 치욕과 불명예, 태형, 가시면류관,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면 너는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한 인간이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예수는 지고 말았어. 마귀는 옆구리가 아프도록 웃어 댔지. 사악한 인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범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 P347

나는 조금 전에 머릿속에 떠올랐던 뜻밖의 발상으로 생각을 돌렸다. 그러고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기독교가 일으킨 잔인한 전쟁들과 박해, 기독교도들이 기독교도들에게 가한 고문, 몰인정, 위선, 편협 등을 보면서 마귀는 흡족한 얼굴로 손익을 따져 보고 있지 않을까? 인류에게 죄의식이라는 쓰디쓴 짐이 지워졌다는 사실, 그 죄의식 때문에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 컴컴해지고 잠시 스쳐가는 이 세상의 쾌락들에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마귀는 킬킬거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아무리 마귀라도 인정할건 인정해 줘야지.‘ - P349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공포를 안고 살다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폐쇄공포증이나 고소공포증 같은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 심지어는 삶에 대한 공포, 그런 것들이었어요. - P407

"우연히였죠.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간의 유럽 생활 끝에 치러야만 했던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인도에 간 건 쉬고 싶어서였어요. 너무 공부만 파다 보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졌죠. - P409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광경을 직접 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죠. 그러다가 죽은 사람을 제 눈으로 직접 보게 됐어요. 수치심이 밀려들더군요."
"수치심?"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수치심, 그 친구는 저보다 서너 살 위였는데, 정말 정력적이고 용감한 사람이었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혈기왕성하고 선량하던 사람이 애당초 살아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엉망진창의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린 겁니다." - P416

그래서 끊임없이 자문했죠.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어차피 내가 살아 돌아온 건 단지 운이 좋아서였잖아요. 그래서 제 삶을 십분 활용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죠. 그 전까지 저는 신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때부터 신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 P417

수사들이 암송하는 주기도문을 듣고 있으면 저들은 어떻게 한치의 의심도 없이 꾸준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아이들이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한테 양식을 달라고 간청하는 것 보셨습니까? 아이들은 아버지가 당연히 먹여 줄 거라고 믿잖아요. 아버지가 음식을 준다고 해서 고마워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죠. 오히려 낳아 놓고 제대로 못 먹이거나 안 먹이면 우린 그런 사람을 비난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물질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할 준비가 안 됐다면 그들을 창조하지 말았어야죠." - P421

어차피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한 존재잖아요. 인간을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했다면 그건 하느님이 그것을 의도했기 때문이겠죠. - P423

선량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대체 악은 왜 창조한 겁니까? - P423

그보다는 이 세상을 창조하진 않았지만 악행을 발견하면 최선을 다해 바로잡는, 인간보다 훨씬 더 선량하고 현명하고 위대한 신을 믿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죠. - P423

"윤회가 세상의 악에 대한 설명이 되는 동시에 그것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우리가 겪는 나쁜 일들이 전생에 지은 업보라면 그저 단념하고 견뎌 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서 선을 추구하면 다음 생에서는 고통이 줄어들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자신이 겪는 악이나 불행은 비교적 쉽게 견딜 수 있죠. 약간의 강인함만 있으면 되니까요. 반면,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들, 종종 너무나도 부당하게 보이는 일들은 더 받아들이기가 힘들죠. 그런데 그것이 과거의 업보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애석한 마음도 들고 고통을 분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겠죠. 그게 마땅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그에 대해 분개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 P437

양초에 불을 붙이고 (p. 440) 그 불꽃에 정신을 집중시켰어요. 그러자 얼마 후 그 불꽃을 통해 저편에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의 형상이 보이는 겁니다. - P440

얼마 후 그들은 전부 사라졌죠. 1분 후였는지, 5분 후였는지 아니면 10분 후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밤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고 양초의 불꽃만 남았어요." - P441

자아는 피조물이 아니라 영겁토록 존재해온 것이기 때문에, 마침내 일곱 가지 무지의 베일을 벗게 되면 다시 처음 상태, 즉 무한의 상태로 돌아가죠. 바다에서 증발한 물이 소나기가 되어 웅덩이를 이뤘다가 개천으로, 시내로 흘러 들잖아요. 그런 다음 이리저리 굽이치고 돌멩이와 나뭇가지에 부딪치며 산골짜기와 넓은 평원을 지나 강으로 흘러들고, 마침내는 처음 있던 곳, 즉 끝없는 바다에 도달하죠. 그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P444

"설탕을 맛보고 싶긴 해도 설탕이 되고 싶지는 않다? 결국 개성이라는 건 자아의식의 표출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영혼은 개성의 흔적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완전히 씻어 내지 않으면 절대자와 하나가 될 수 없죠." - P444

"실재라고 할까요? 사실, 정확히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무엇이 아닌지만 말할 수 있죠. 그건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인도 사람들은 그것을 브라만이라고 부르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 만물에 내재되어 있지만 동시에 만물이 의존하는 대상, 사람도 아니고 사물도 아니며 원인도 아니죠. 속성도 없고요. 항구 불변도, 가변도 초월한, 전체이자 부분이고 유한하면서 무한한 (p. 445) 존재예요. 시간에 따라 완성되지도, 완벽해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영원하죠. 그것은 진리이자 자유입니다." - P444

제 안에 있는 에너지가 분출구를 찾고 있는 느낌이었죠. 세상을 등지고 은둔 생활을 하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보다는 세상 속에 살면서 이 세상의 만물을 사랑해야 할 것 같았어요. 만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신을 말입니다. 그 환희의 순간에 제가 정말 절대자와 하나가 되었던 거라면 그리고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그 무엇도 저를 건드릴 수 없다는 의미였죠. 이생의 업(業)을 모두 이루고 나면 더 이상 윤회해선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자 당혹스럽더군요. 저는 몇 번이고 다시 살고 싶었죠. 어떤 종류의 삶이든, 아무리 많은 고통과 슬픔이 따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 P460

제가 주장할 수 있는 건, 절대자가 이 세상에 그 자신을 현현했을 때 선과 악이 본질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거예요. 지각변동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공포가 없었다면 히말라야 산맥의 장관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의 장인들은 얇은 도자기로 예쁜 모양의 꽃병을 만들어 거기에 아름다운 디자인을 넣고 멋지게 색칠한 다음, 완벽한 광택을 추가하죠.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병도 그 본질적인 속성 때문에 쉽게 깨질 수밖에 없어요. 바닥에 떨어뜨리면 산산조각이 나고 말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도 오직 악과 결합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 P462

"이봐, 자넨 늘 돈이 있었지만 난 그렇지 않았어. 돈은 나한테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줬거든. 그건 바로 자유지. 돈이 있으면 못마땅하게 구는 사람한테 언제든 꺼져 버리라고 말할 수 있잖아. 그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자넨 모를 거야."
"하지만 저는 꺼지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데요. 설사 그런 사람이 생겨도 은행에 잔고가 없다고 못하지는 않을 겁니다. 선생님한테는 돈이 자유를 의미하지만 저한테는 속박이 될 뿐이죠." - P469

그러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엘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 P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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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독해란, 독자가 개별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이해하여 선택적으로 회상하고(미시 과정), 절이나 문장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거나 추론하고(통합과정), 회상한 아이디어를 중심 내용으로 조직하거나 종합하고(거시 과정), 필자가 의도하지 않은 정보를 추론하고(정교화 과정), 독서 목적에 맞추어 이러한 과정을 조절하는(초인지 과정)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동시에 일어나며, 항상 다른 과정과 상호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 P70

하이퍼픽처(hyper-picture)는 텍스트에서 사운드, 이미지, 동영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형식을 가리킨다. 나아가 이는 동영상에서 동영상으로, 정지화상에서 동영상으로 이동하는 텍스트로서 근본적으로 ‘읽기‘ 형식의 붕괴를 예고하는 것으로, 하이퍼픽처 시대의 독서에서는 문자의 상대적 중요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텍스트의 구성 요소가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처리됨으로써 문자는 그동안 지배적인 의사표현의 도구에서 보조적이거나 잔여적인 것으로 남게 될 우려가 크다. - P74

앞서 살펴본 독해에 관한 정의를 다시 정리해 보면 "독해란, 독자가 개별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이해하여 선택적으로 회상하고(미시 과정), 절이나 문장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거나 추론하고(통합 과정), 회상한 아이디어를 중심 내용으로 조직하거나 종합하고(거시 과정), 필자가 의도하지 않은 정보를 추론하고(정교화 과정), 독서 목적에 맞추어 이러한 과정을 조절하는 과정이다. 이 모든 과정은 동시에 일어나며, 항상 다른 과정과 상호작용한다"라고 할 수 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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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구의 술고래한테서,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냉소적인 사내의 입에서 사물의 궁극적인 실체니, 신과의 합일에서 오는 행복이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 걸 듣고 있으니 정말 묘한 기분이었어요. 전부 처음 듣는 얘기들이라 흥분도 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죠. 뭐랄까, 칠흑처럼 깜깜한 방에서 홀로 잠이 깨어 누워 있는데 갑자기 커튼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들어온 기분이 들었어요. 그 커튼만 열어젖히면 찬란한 새벽의 넓은 벌판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 P176

그는 무(無)에서 무가 나올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이 세상은 영원성의 현사(顯示)라고 말했어요. 게다가 이런 말도 했어요. 선(善)뿐만 아니라 악(惡) (p. 177) 역시 신의 직접적인 현현이라고. - P176

그날, 그때 걷던 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제 발자국 소리와 이따금 농가에서 들리는 수탉 울음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어스레한 회색빛이 대기에 맴돌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먼동이 트고 해가 솟아오르자,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하고 싱싱한 푸른색이 넘치는 들판과 숲들과 밀밭이 상쾌한 아침 햇빛 속에서 빛났어요. - P192

이사벨의 오빠들은 둘 다 멀리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엘리엇은 아무리 지루한 여행이 되더라도 결혼식에서 조카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기 위해 시카고로 가야만 했다. 그는 프랑스 귀족들이 단두대에 오를 때도 화려하게 차려입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일부러 런던까지 가서 새 모닝코트와 보랏빛이 도는회색 더블 조끼와 실크해트를 장만했다. 그리고 파리에 돌아간 얼마 후에 나를 초대해 그것들을 보여 주었다. - P194

"그 녀석은 지저분하고 옹졸한 속물일 뿐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고 경멸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속물근성이에요. 나 아니었으면 지금쯤 형편없이 빌빌거리고 있을 높이 원! 그 녀석 아버지가 뭐 하는 줄 아세요? 사무실 가구 따위나 만드는 가구장이래요, 가구장이." - P203

그때부터 엘리엇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최고급 요리사를 불러왔고, 얼마 후 그의 집에가면 리비에라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평판이 자자해졌다. 집사와 하인에게는 어깨에 금줄 장식이 달린 흰색 제복을 입혔다. 그는 최대한 후하고 성대하게 손님들을 대접하되, 고상한 품위를 지키기 위한 한계선은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P207

내가 엘리엇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감탄한 점은, 그가 신분 높은 인사들을 대할 때 우아함과 예의를 한껏 갖추면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가르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독립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P208

그래서 그레이 본인도 걱정스러운가 봐요. 일을 하고 싶어하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직 오라는 데가 없으니까 괴로운 모양이에요. 남자라면 당연히 사회에서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마치 팔리지 않는 상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p. 233) 든다고 괴로워하거든요. - P232

성적인 열정 없이 사랑이 존재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 간혹 열정이 죽은 후에도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 일테면 애정이나 온정, 혹은 취향이나 관심사의 공유, 아니면 습관 등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야. 그중에서도 습관일 가능성이 높지. 평소에 밥 먹던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지듯이 성관계도 습관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어. 물론, 사랑이 없어도 욕망은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욕망하고 열정은 엄연히 다른 거야. 욕망은 성적 본능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라구.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다른 기능과 똑같은 거지.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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